Part 2. 오피서들의 칼리토토 타이밍(feat. 경기 오피서)
칼리토토은 또 다른 여행
오피스의 나른한 오후가 지나간다. 10분 정도 남았다. 오늘 할 일은 대충 다 한 것 같다. 팀장님도 자리에 없다. 선임들도 각자 뭘 하고 있다. 누가 뭘 더 시키지는 않겠군. 옆팀 담당자의 메신저는 꼭 이때 온다. 일부러 보지 않는다. 이럴 때는 안읽씹이다.
슬슬 책가방 싼다. 그전까지 의자에 누운 듯이 기대앉아 있던 자세가, 칼리토토 3분 전에는 바뀐다. 다리 한쪽은 책상 옆으로 삐져나온다. 엉덩이는 의자에 반쯤 걸쳐 있다. 로그아웃을 준비하는 오피서들의 본능이다.
칼리토토도 타이밍이다. 6시 땡! 칼리토토 시이작!
00초가 되자마자 컴 끄고 뛰쳐나가면서 가방을 멘다. 엘베를 더블 트리플 클릭 연타로 누른다. 눈은 엘베 올라오는 숫자를 애타게 쳐다본다. 타자마자 뒤따라오는 누구를 기다려 줄 여유 따위는 없다. 닫기 버튼 연타!! 1층에 도착하자마자 달린다! 남은 시간 4분! 엇! 횡단보도 빨간 불! 초조하다. 초록불이 들어오는 순간! 또다시 달린다! 버스가 이미 들어와 있다. 10m만 더! 더!
근데.. 어? 버스 간다. 가는 버스의 뒷모습을 야속하게 쳐다본다. 망연자실하게 버스정류장에 앉아 다짐한다. '내일은 5시 59분에 엘베를 미리 눌러놓고 다시 돌아와서 칼리토토하면 6시 딱 맞겠군..'
경기 오피서가 칼칼리토토하는 건 눈치 없이 일찍 가고 싶어서가 아니다. 버스 시간 때문이다. 치열한 하루를 보내고 다가오는 칼리토토 시간. 버스 시간부터 검색한다. 짐을 미리 싼다. 남은 시간 7분. 7분 안에 버스 정류장에 도착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다시 40~50분 기다려야 한다. 비 오는 날 버스 놓치면 금새 거지 몰골 된다.
이들이 6시가 지나도 가지 않을 때가 있다. 이때는 대체로 여유롭다. 왜일까? 버스시간에 변동이 생긴 거다. 미리 나갈 필요가 없다. 그런 날은 6시 반에도 나가고 그러는 거다. 오피스 서비스 타임을 실행한다.
서브웨이 족의 칼리토토 상황도 그닥 다르지 않다. 지하철은 시간도 짧고 잘 오지 않냐구? 잘 오긴 한다. 문제는 칼리토토 오피서들이 역에 모두 몰린다는 것이다. 역까지 한 번에 내려가지를 못한다. 그래서 두 대는 그냥 지나친다. 그다음 지하철을 타면? 여기저기 낑겨서 억지로 꾸역꾸역 밀어서 구겨 탄다. 이때 휴대폰을 손에서 떨어뜨리면 줍다가 쓰러지던가 못 일어난다. 휴대폰 액정에 금가 있는 사람들 태반은 출칼리토토 중 떨어뜨린 거다.
칼리토토길 지하철 안은 무슨 봉지 안에 콩나물 대가리들 잔뜩 차 있는 것 같다. 인심 좋은 시장 할머니가 가장 쪼그만 검은 봉지에 안 그래도 가득한 콩나물을 한주먹 더 넣어 꽉꽉 눌러 채워준 그런 느낌이다. 매 정거장이 지날 때마다 한 움큼씩 더 넣어준다. "괜찮다니깐요! 그만! 그만!" 서브웨이 마켓은 서비스 인심이 후하다.
이런 사태를 예견한 머리 좋은 경기 오피서들은 지하철 역 상황을 주시하고는 칼리토토 전략을 수정하기도 한다.
'흠.. 사람들이 평소보다 많다. 지하철 3대 지나칠 각이군.. 이럴 때는 요 앞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더 가서 옆동네 7호선을 타면 더 쾌적하게 빨리 갈 수 있지.. 후후..'
그렇게 발 빠른 종종걸음으로 애써 버스를 한번 더 타는 수고를 한다. 근데 버스가 막힌다. 이런. 내려보니 옆동네도 상황은 똑같다. 젠장. 그냥 기다리다 탈 걸 그랬다는 후회감이 밀려온다.
칼리토토의 일상이 전략이 된다는 건, 이미 일상이 헬이라는 소리다. 긴 여행길을 맞이하는 오피서들은 운동화를 따로 준비하기도 한다. 굽 있는 힐. 플랫 슈즈조차도 이들에게는 HP를 깎아먹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가끔 야근에 걸리면 저녁은 패스한다. 지금 밥이 문제야? 집에 못 가게 생겼는데.. 무조건 빨리 끝내야 한다. 그럼에도 다 끝내지 못할 각이 보이면.. 그때부터는 휴대폰 연락처를 뒤진다. 서울 사는 친구 누가 있더라. 칼리토토 장소가 변경된다. 가장 만만한 건 서울에 자취하는 친구다. 후보 3명 정도는 항상 염두에 두고 있다. 경기 오피서의 다음 날 옷이 같은 이유는 바로 그럴 때다.
회식 때 10시가 다가오면 불안해진다. 지하철 막차 시간을 떠올렸는가? 아니다. 막차 시간을 따지는 건 초보 경기 칼리토토들이나 하는 짓이다. 막차 믿고 까불다가 환승 끊겨 서울 한복판에서 미아가 된다. 지하철과 환승, 버스의 콜라보를 모두 계산해 가능한 모든 시나리오를 떠올린다. 보통 10시에는 어떻게든 자리를 떠야 한다. 그럼 12시~12시 반 사이 도착할 수 있다. 그렇다. 어릴 때도 없던 통금이 알아서 생기는 것이다.
회식 끝나고 함께 있던 동료에게 전화가 온다. 잘 들어갔냐고? 이제 자려고 누웠댄다. 이럴 수가! 같이 회식하고 같이 빠이빠이했는데. 뭐? 자려고 누웠다고? 이런. 난 아직 환승 한 번에 버스 한번 더 남았는데. 치사한 서울 칼리토토 같으니.. 부.. 럽다..
이러니 회식 후 HP의 회복력도 더디다. 서울 칼리토토는 이튿날 오후 살아나는 반면, 경기 칼리토토는 하루가 더 필요하다. 그리고 HP 풀 충전은 70%까지만 가능하다.원래 경기 칼리토토의 배터리는 100%가 없다.
모르겠다. 경기 칼리토토는 어디서든 잘 수 있다. 피곤에 쩔어 지하철에서 잠이라도 자면.. 아. 아니다. 그냥 눈이 감긴다. 수동태다. 자다가 옆에서 누가 어깨라도 기대서 2 정거장 정도 가면 밀쳐야 되나 가만있어야 되나 고민되기 시작한다. 그러다 잠들어 가끔 종점까지 간다. 기관사가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쳐다보며 깨워준다. 나와서 헤맨다. 이 역이 어딘지. 다시 반대편에서 타면 되겠군. 반대쪽 지하철을 기다리면.. 역무원이 셔터 내린다고 나가랜다. 떠밀려 나가 보면 까만 밤에 난생처음 보는 동네의 광경이 펼쳐진다. 여기 어디예요??
그게 2호선이면 누가 깨워주지도 않는다. 이따금 자다 눈을 뜨고 내렸는데 시간이 많이 가 있다. 이상하다. 10시에 타서 5 정거장 왔는데 왜 12시 반 도착이지? 자다가 서울 한 바퀴 순환하고 그다음 턴에 도착한 거다. 일단 여기까지는 잘 왔는데, 내려보면 이제 버스가 끊기고 없다. 어떻게 집에 온 지 잘 모르겠지만, 다음날 일어나 보면 충격적인 택시비 내역을 볼 수 있다.
한때 재택근무의 최대 수혜자들이었다. 경기 오피서들도 이제 충분히 살 만해졌다고 생각했다. 길바닥에서 까먹는 5시간을 생각하면 재택근무로 한두 시간 더 야근해도 오히려 이득이라 생각하던 이들이다. 그러나 그마저 회사가 걷어차 버렸다. 차라리 이들에게 재택 시켜주고 일을 더 주면 손해 보는 마음 없이 그냥 할 텐데. 아닌 거 같으면 밸런스 투표 해 보자. 둘 중 뭐 할래?
경기 칼리토토 밸런스 투표
하루 한 시간 더 일하고 재택 하기 VS 정시에 오피스 출칼리토토하며 일하기
이후 이들의 걸음걸이는 다시 빨라졌다. 기본이 축지법이다. 서울 오피서들의 달리기보다 빠르다. 이들은 일기예보를 습관적으로 검색한다. 다시 하루를 심호흡하며 준비하는 오피서들. 매일 반복되는 하루의 시작과 끝도 쉽지 않다. 경기 오피서들의 오피스 게임은 기본 난이도가 두 배다.
그렇지만 현명한 경기 칼리토토들은 길바닥에서의 몇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는다. 온라인 강의를 듣는다. 글도 쓰고 다양한 소통도 한다. 생각나는 아이디어도 정리한다. 드라마도 속 편하게 끊김 없이 정주행 한다. 혹시나 휴대폰 놓고 온 날은 이들에게 가장 험난한 날이다.
괜찮다. 평소 스치고 지나가는 풍경들을 감상한다. 강물은 고요하다. 빌딩은 높이도 서 있다. 참 멀리도 돌아서 왔구나. 무심코 지나치는 풍경들도 다시 보면 새로울 때가 있다. 같은 공간에 있는 다른 사람들의 표정들, 웃음 번지는 표정, 근심 어린 표정, 지친 모습, 거울 보고 옷매무새를 다듬는 이들, 저마다의 칼리토토길, 하루를 마치고 돌아가는 많은 사람들을 마주한다. 저들의 하루에는 무슨 일들이 있었을까?
하루의 긴 여행길이 없다면 보고 느낄 수 없는 광경들일 것이다. 경기 오피서들의 칼리토토길은 생각하기 따라 아름답다. 그렇다. 그러하다. 후후..
근데.. 칼리토토길 할 거 다 했는데, 이제 더 할 것도 없는데, 왜 아직도 도착을 안 하는 거야?!!
P.S. 경기 오피서들의 전략적 칼리토토을 응원합니다!
자! 오늘도 칼리토토 땡치면 다들 뛸 준비 됐지?
칼리토토 여행길에 읽기 좋은 책 : 오피스 게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