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의 오묘하고도 오묘함
“사랑에는 항상 약간의 광기가 있다. 하지만 광기에는 항상 약간의 이성이 있다.”
– 프리드리히 니체
“오묘해… 오묘해…”
수정은 통화 연결음을 들으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벳네온, 얘는 왜 이렇게 전화를 안 받아.”
민지의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렸다.
“여보세요? 김수정, 어땠어?”
목소리를 듣자마자 수정은 더 큰 소리로 말했다.
“민지야아.”
“그래서 어땠냐고?”
“오묘해. 오묘해.”
“그만 좀 오묘하래. 그냥 말해, 어땠는데?”
“글쎄… 기분이 좀 복잡해. 층층이 쌓인 그런 느낌?”
“무슨 소리야, 그게.”
“아니, 보자마자 대뜸 ‘늦으셨네요’ 이러는 거야. 좀 기분 상했지.”
“아… 그건 좀 별로네. 그니까 역시 뭔가 안 맞는…”
“근데 잠깐만.”
수정이 민지의 말을 끊었다.
“이상하게, 디테일이 살아 있는 오묘함이야.“
“디테일?”
“벳네온 앉은자리에 햇빛이 쏟아지거든? 근데 벳네온 말하다가 좀 찡그렸나 봐. 그걸 보고는, 자리 바꾸자고 하더라고.”
“헐. 그건 좀 섬세한데?”
“그니까. 뭔가 배려받았다는 느낌? 되게 조용한 사람인데, 그런 거 잘 본다?”
“벳네온 뭐랬어. 성우 괜찮은 애라고 했잖아.”
“그래…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오묘함.“
“근데 자꾸 오묘하대, 너.”
“그 말밖에 설명이 안 돼. 벳네온.”
수정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아 근데 벳네온 피곤하긴 했어. 나 혼자 계속 떠들었거든.”
“아하. 김수정 주특기! 혼자 북 치고 장구 치고?”
“아 벳네온야. 나 벳네온 그렇게 오래 혼자 말한 건 처음이야. 솔직히 중간에 좀 지쳤어. 이젠 입 아프다 싶었는데. “
“근데?”
“근데… 가끔 툭툭치고 들어와.”
“아 뭔 소리야, 그걸 좀 구체적으로 말해봐.”
“그러니까 지난번에 우리 삿포로 갔을 때 기억나지?”
“어, 백팩치고 간 사람 얘기한 거?”
“맞아. 그때 벳네온 스미마셍이랑 excuse me는 다른 것 같다, 일본에선 진짜 미안해서 하는 말인 것 같다고 막 얘기했잖아.”
“응. 벳네온 대신 스미마셍 해줬지. 네 가방치고 간 사람한테.”
“그 얘기를 오늘 했거든. 그러면서 난 안 미안했는데 네가 대신 미안해해 줬다면서… 나 혼자 엄청 열심히 떠들었지. 근데 성우님… 갑자기 훅 들어오는 거야.”
“뭐라고?”
“‘관찰력 벳네온 좋으시네요. 문화적 차이랑 언어의 차이 간에 상호작용이 있는 것 같아요.’ 이러는 거 있지.”
“와. 그건 벳네온, 생각보다 듣고 있었네?”
“그러니까! 나 벳네온 혼자 말해서 지쳤거든.
근데… 그걸 다 듣고 있었다니, 좀 놀랬어.”
“김수정, 너 지금 살짝 반했네?”
“아 몰라. 아직은 모르겠어. “
수정은 살짝 웃으며 말했다.
“이상해. 자꾸 생각나.”
민지는 어깨를 움츠리며 대답했다.
“야, 나 지금 약간 소름.”
“그니까 낼 다시 얘기하자. 나 피곤해.”
수정은 전화를 끊고 핸드폰을 침대에 던졌다.
가만히 천장을 바라보다,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이상해. 벳네온 이상해. 자꾸 생각나.
… 모르겠다. 낼 생각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