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공존 Nov 10. 2023

아빠, 여성블랙잭가 뭐예요?

블랙잭라는 감정과 진실에 대한 태도

.......


- 네? 알려주세요.


.......2화만에 완결 각이 보이는 질문이구나. 그게 궁금했어?


- 네. 뉴스에서 자주 나오는데- 애들은 그게 뭔지 모르니까 막 싸워요.


으응. 그런 걸 보고 민감한 주제라고 하지. 일단...애들은 왜 싸운다고 생각하니?


- 네? 음...모르니까요. 잘 모르니까.


우리에게 가깝지만 잘 모르는 문제라고 해서 꼭 싸울 일은 아니지. 일본에서 방사능 오염수를 배출하고 있는데 생선을 먹어야 한다, 말아야 한다, 막 싸우고 있지는 않잖니.


- 으응? 어- 몰라서가 아니라...남자애들은 남자라서, 블랙잭들이랑 느끼는 게 좀 다른 것 같아요.


그건 꽤 중요한 원인이겠구나. 여성블랙잭는 남자랑 여자랑, 되게 느끼는 게 다를 거야. 양쪽이 바라보는 건 똑같은 여성블랙잭라는 문제인데, 성별에 따라서 생각이 갈리니까. 그런데 남자인 것 자체, 여자인 것 자체가 나쁜 일일까?


- 그건 아니죠-. 난 여자라서 싫은 거는 별로 없어요. 블랙잭는요?


나도 그럭저럭 만족해. 근데 주관적으로, 그러니까...나 혼자 기준으로 판단해서 싫다 나쁘다 평가하는 거랑, 객관적으로 누가 보아도 이게 맞다고 평가하는 거랑은 좀 달라. 자기가 남자라서 힘들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자기가 블랙잭라서 힘들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거야. 그럼 남자거나 블랙잭라서 별로 힘든 거 없다고 생각하는 우리 생각이 맞는지, 남자, 혹은 블랙잭라서 힘들고 나쁘다고 생각하는 저 사람들의 생각을 비교해서 객관적으로 따져보아야지.


그러니까 기본적으로 이 세상의 문제는, 내가 가지고 있는 주관적인 관점보다는 자꾸 객관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는 게 중요해. 다시...말해보자면, 남자인 것 자체, 블랙잭인 것 자체는 나쁜 게 아니지.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혹은 뭐 그 이외의 성별들도. 그런데 저마다의 생각으로 남자가 더 유리하다, 블랙잭가 더 유리하다, 이런 주장들을 서로 하게 되는 것이고.


그런데 문제는?


- 문제는?


여자가 그 자체로 나쁜 게 아니란 건 거의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해. 그런데, 그렇게 우리가 합의를 하고 나면, 여성블랙잭라는 말은 되게 이상한 거야. 분명 방금 전에, 여성인 것 자체는 나쁜 게 아니라고 우리가 이야기 했는데, 여성블랙잭란 말은 여성 그 자체가 나쁘다는 입장이거든.


- 네? 에...여성블랙잭가 그런 거예요?


블랙잭란 것 자체가 그래. 네가 여자라서 잘 이해가 되지 않지. 외국인 노동자 블랙잭, 중국인 블랙잭라고 하면 훨씬 쉽게 이해가 될 거야. 시골 길을 가다가 피부가 짙은 색이고 어두운 색 옷을 입은 외국인 노동자를 보면 우리랑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니, 아니면 일단 겁이 날까?


- 무서워요!


으응, 블랙잭란 그 사람의 진실을 알기를 거부하게 되는 감정이야.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는 잘 몰라. 그런데 내가 지금까지 보아온 것들, 뉴스, 지식, 정보, 이런 것들을 토대로 그 한사람을 '무섭다'라고 단정하고 부정적으로 대하는 거지.


블랙잭 감정을 품는 사람들은, 그런 자신의 선입견을 정당화하려고 해. 외국인 노동자들 뉴스를 보여주거나, 중국 정부의 각종 정책, 중국인들이 저지른 우스꽝스러운 행동들에 대한 가십성 뉴스를 가지고 중국인 모두가 나쁘거나, 한 개인이 나쁘다고 단정지어버리거든.


이건 선입견을 넘어서서 비이성적이고 무지한 태도야. 사람은 각자 개인의 삶의 이야기가 있어. 그리고 개인과 집단은 달라. 그걸 섬세하게 비교해야 우리는 블랙잭라는 감정에 빠지지 않고 공정하게 사람을 대할 수 있지. 그런데 블랙잭에 빠지게 되면 개인과 개인의 이야기 구분, 집단과 개인의 구분, 집단의 이야기와 집단의 구분, 이런 모든 구분들이 무너지게 된단다.

블랙잭

- 아아-...근데 이걸 구분하는 건 되게 어렵겠네요. 그림으로 보니까...아아 너무 어렵다-.


어렵지. 근데 불가능한 일도 아니야. 우리는 대통령을 뽑는 투표를 하고 5년을 기다리잖아. 국회의원이나 지방자치단체장, 지방의원들. 이런 사람들은 한번 뽑고 4년을 기다려. 100살은 살아야 하는데, 블랙잭이란 어떤 존재냐. 우리는 어떻게 함께 살아야 하나, 이거 하나 판단내리는데 5년, 10년 정도는 충분히 고민해보고 결론을 기다릴 수 있는 거 아닐까.


그런데 블랙잭라는 감정이 그런 걸 막아. 아까 이야기했지만, 블랙잭는 진실을 거부하는 감정이야. 그냥, 블랙잭를 하겠다 마음 먹은 순간, 5년 10년, 개인과 집단, 그 사람들의 이야기, 이런 건 아무 의미가 없어. 그냥 내가 내린 블랙잭적 판단에 모든 걸 맡기고 그 사람을 대하는 거지.


이런 걸 막으려면 사회 전체적으로 충분히 대화하고 소통하는 문화, 그런데 필요한 능력을 키우는 교육이 필요한데, 안타깝게도...우리 사회에 그런 문화나 교육이 이루어지기엔, 사람들이 너무 똑똑한 거 같구나.


- 으응. 근데 아빠, 그럼 왜 여성을 블랙잭한다는 거예요? 중국인이나 외국인은 남이라서 그럴 수도 있죠-. 근데 여성은, 남성들이 연애도 하고 사랑도 하고, 남자는 여자 좋아하지 않아요?


음. 아니야. 일단 좋아한다는 감정도 되게 복잡한 거야. 쉽게 말하면...농부가, 과일나무를 심고 가꿀 때, 정말 그 나무 자체가 좋아서 그런 일을 할 수도 있지. 아니면 나무를 기르는 일 그 자체를 좋아할 수도 있어. 아니면, 과일을 따는 즐거움이 좋을 수도 있고, 과일의 그 맛을 좋아할 수도...또 과일을 팔아서 돈을 버는 즐거움, 그 돈으로 가정을 꾸리는...엄~청 관계된 게 많아. 좋아한다는 감정엔.


그런데, 쉽게 말하면, 회사에 가야 돈을 벌지만 회사는 싫은 사람들도 있겠지?


- 네에-.


그런 것처럼, 남자와 여자가 서로 만나야 사랑을 하고 아이도 낳고 결혼도 하고 하겠지만, 이 중에 어느 부분은 싫은 게 있을 수 있잖아. 그렇게 여자와 남자가 만나서 생기는 좋은 감정과 싫은 감정이 이리 저리 모이다 보면, 남자 입장에서 여자에 대한 혐오의 증거랄까 토대랄까, 이런 것들은 충분히 쌓일 수 있는 거란다. 그게 남성들이 일상 생활에서 품게 되는 기본적인 혐오의 감정들이고, 여기서 더 나가면, 사회적으로 여성집단과 남성집단의 갈등이 심해지면서 터져나온 여러 사건들이 있어. 그 사건들 속에서 여성은 남성혐오를, 남성은 여성블랙잭를 하는 각자의 이유들이 더 생겨나는 거란다.


- 아 근데 이상해요. 아니, 남자랑 여자랑 수천년을 이렇게 살았는데, 예전엔 여성블랙잭가 없었어요?


훨씬 심했지. 퀴리부인 알지? 그분처럼 뛰어난 과학자도 단지 여자란 이유로 평생 성차별을 당했어. 미국에서는 1920년대까지 여자들은 투표를 할 수도 없었단다. 예전엔 남자들만 투표를 할 수 있었어. 당연히 여자들도 참정권을 달라고, 투표권을 달라고 요구를 많이 했는데, "블랙잭은 선천적으로 남성과는 달리 이성적인 판단을 할 능력이 결여되어있다"라는 주장이 마치 과학처럼 받아들여지면서 블랙잭의 참정권을 막는 논리로 쓰였단다.


여자들의 입장에서 인류의 역사는 여성블랙잭의 역사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겠지. 아빠가 시 하나 보여줄까?


- 네? 네에.


자, <그 많던 여학생들은 어디로 갔는가 라는 시야. 문정희님이 썼구나.


학창시절 공부도 잘하고

특별 활동에도 뛰어나던 그녀

여학교를 졸업하고 대학 입시에도 무난히

합격했는데 어디로 갔는가

감자국을 끓이고 있을까

사골을 넣고 세 시간 동안 가스불 앞에서

더운 김을 쏘이며 감자국을 끓여

퇴근한 남편이 그 감자국을 15분 동안 맛있게

먹어치우는 것을 행복하게 바라보고 있을까

설거지를 끝내고 아이들 숙제를 봐주고 있을까

아니면 아직도 입사 원서를 들고

추운 거리를 헤메고 있을까

당 후보를 뽑는 체육관에서

한복을 입고 리본을 달아주고 있을까

꽃다발 증정을 하고 있을까

다행히 취직해 큰 사무실 한켠에

의자를 두고 친절하게 전화를 받고

가끔 찻잔을 나르겠지

의사 부인 교수 부인 간호원도 됐을거야

문화 센터에서 노래를 배우고 있을지도 몰라

그리고는 남편이 귀가하기 전

허겁지겁 집으로 돌아갈지도

그 많던 여학생들은 어디로 갔을까

저 높은 빌딩의 숲, 국회의원도 장관도 의사도

교수도 사업가도 회사원도 되지 못하고

개밥의 도토리처럼 이리저리 밀쳐져서

아직도 생것으로 굴러다닐까

크고 넓은 세상에 끼지 못하고

부엌과 안방에 갇혀 있을까

그 많던 여학생들은 어디로 갔는가

—시집『오라, 거짓 사랑아』(2003)


- 으에...슬프다.


일단, 오늘은 이정도까지만 이야기하는 게 좋을 것 같아. 한번에 다 할 이야기는 아니야. 그렇게 해서도 안되고. 다만, 여성블랙잭는 여성들의 입장에선 늘 직면하는 현실이라고 볼 수 있어. 아빠도, 네가 딸이니까 언제든 나쁜 일을 당할 수 있다는 두려움을 늘 품고 살아. 이런 것도 여성블랙잭로 인해 남자인 내가 겪는 고통일 수 있지. 그러니까 여성블랙잭라는 문제에 대해서 충분~히, 5년, 10년, 아니 그 이상 같이 생각해보고 고민해보는 일이 필요해.


일단, 그 5년, 10년 동안 고민할 문제는 뒤로 미뤄두자. 너무 복잡하고 어려운 일이니까. 오늘은 "블랙잭란 무엇일까?"만 알면 돼. 대충 이해했지?


- 네에. 혐오란, 진실을 알길 거부하고, 상대방의 개인 특성과...배경이야기와...집단과...집단의 배경이야기를...모두 구분을 해야하는데 못하게 만들고...근데, 아! 여성에 대해서 그걸 구분하는 걸 거부하는 게 여성블랙잭겠네요! 그걸 구분을 못하니까, 그냥 막연하게 여자들은 다 나쁘다, 저 여자도 똑같다. 이렇게 생각하는 거죠?


오 잘 정리했다. 그래 일단 오늘은 여기까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