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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찬란 Mar 18. 2025

죽을힘을 다해 미슐랭토토




수직에 가까운 경사는 오를 때도 힘들지만 내려갈 때도 그에 못지않게 힘이 든다. 게다가 성치 않은 몸에 커다란 가방을 짊어진 상태로는 말할 것도 없다. 허둥지둥 언덕을 내려가는 호달의 모습은 마치 녹슨 양철 로봇처럼 처량하게 삐걱대고 있었다. 그나마도 속도가 나지 않아 누구라도 빠른 걸음으로 다가가 손을 뻗기만 한다면 금세 목덜미를 잡아챌 수 있을 듯했다. 그러나 당장이라도 쫓아와 밀린 월세를 받아낼 것처럼 소리치던 총무는 어쩐 일인지 잠잠했다. 그 고요함이 의심스러워 호달은 절뚝이는 다리를 연신 앞으로 뻗으면서도 흘깃흘깃 뒤를 돌아보았다. 등 뒤엔 어둠뿐이었다.


신림동 고시촌에서도 제일 막바지에 위치한 이 동네는 해가 저물고 나면 모든 사물이 색을 잃는다. 다만 언덕 중간에 위치한 구멍가게의 간판 불빛만이 수명이 다한 등대처럼 흐릿하게 근처를 비출 뿐이다. 땅에 납작 달라붙은 채 검게 웅크린 것들은 거대한 하나의 그림자처럼 서로 형체를 합쳐 호달을 위협하곤 했다. 어릴 적 겁에 질려 상가 화장실을 드나들던 때만큼은 아니지만 그는 어둠이 무서웠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 안에 자기는 무언지 절대 알 수 없는 것이 숨어있다는 사실이 두려웠다. 무엇인지 모르기에 대비할 수 없는 것, 그러나 호시탐탐 공격할 기회를 노리며 그를 관찰하고 있을 사악한 어떤 것. 아버지나 할머니의 죽음도 어쩌면 그래서 막지 못한 것이 아닐까. 휴일마다 차를 끌고 아내를 찾으러 가는 아버지에게 매미슐랭토토 놀아달라고 졸랐더라면, 할머니가 육수를 불에 올려두고 깜빡 잠들기 전 집에 돌아왔다면……. 밤이 되면 호달은 어김없이 그런 생각에 시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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