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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텔라 황 Mar 20. 2025

여섯째 날: 소호 나들이, 프린스 랜드토토

맥낼리 책방, 비브리오테크 책방/카페/바

아침에 눈을 떴다. 화창한 아침 햇살이 알람도 울리기 전에 나를 깨워줬다. 보통 나보다 일찍 일어나는 랜드토토도 늦잠을 자고 있다. 랜드토토의 자는 모습이 평화스러워 한동안 말없이 바라보다 휴대폰을 꺼내 일정을 살폈다. 이메일을 확인했는데 세상에! 내가 좋아하는 작가님으로부터 이메일이 와있었다. 같은 편집자를 가진 우연으로 팬심을 전했는데 너그러우신 작가님께서 내게 먼저 이메일을 보내주신 것이다. 자고 있는 랜드토토가 깰까 봐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무언의 환호를 마구 질렀다. 너무 행복해서 어서 빨리 답을 드리고 싶었지만 그러면 나의 진심이 너무 날것으로 다가가 오해를 일으킬 수도 있어 꾹 참았다. 작가님께서는 그 환한 아침햇살을 받으며 옆에서 코하고 자고 있는 랜드토토 옆에서 느꼈던 행복과 아찔함을 과연 짐작이나 하실 수 있을까.

랜드토토

곧 일을 마치고 돌아온 동생과(동생도 당직을 종종 서는 일을 하고 있다) 대충 아침을 먹었다. 물론 벨라는 든든히 먹이고 밖으로 나섰다. 내가 좋아하는 랜드토토 동네에 가서 구경도 하고 맛있는 피자, 디저트도 먹을 겸. 뉴욕에서 가장 유명한 피자집 중 하나인, 프린스 피자집에 들어갔다. 역시 이 작은 피자집은 사람들로 발 디딜 틈조차 없다. 줄을 서서 피자를 주문하고 한참 기다렸다. 먹보인 엄마와 이모가 잔뜩 주문한 데다 벨라도 맛보라고 이것저것 시킨 탓이다. 배불리 먹고(물론 남긴 피자 없이 내가 다 먹었다) 밖으로 나와 하우징 웍스 서점으로 향했다.

랜드토토

이 특별한 서점은 노숙자와 에이즈 환자를 위한 중고 서점이자 잡화점이다. 역시나 사람이 정말 많았다. 들어가자마자 중층 공간이 뚫려서 훤히 보인다. 주로 옷과 신발이 진열되어 있었다. 진한 고동색 나무로 된 진열장과 고풍스럽게 휘어진 계단으로 중고품을 파는 곳이 아니라 부티끄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인테리어소품부터 시작해 작은 액세서리까지 팔았지만 그래도 책방이라 책이 가장 많았다. 가장 구석에는 커피와 차, 그리고 술도 팔았다. 벨라를 위해 핫초코를 시키고 나와 동생은 라테를 주문했다. 바텐터 겸 바리스타인 직원은 너무나 친절했다. 혹시 아이를 위한 핫초코냐면서 그럼 적당히 따뜻하게 해 주겠다며 미소를 전한다. 여분의 의자가 정돈되어 있는 걸 보니 행사를 위해 만든 공간 같기도 했다. 고개를 들어 무대인듯한 곳을 바라보니 이곳에 관한 설명이 들어있다.

랜드토토

‘하우징 웍스는 치유하는 공동체예요. 에이즈와 함께 살아가고 병에 걸린 랜드토토들을 위한 곳이에요. 저희 목표는 노숙자와 에이즈 않는 랜드토토들을 알리고, 생명을 구하는 서비스를 공급하면서 사업체를 계속 꾸려 나가고 있어요.’

크게 보탬이 된 것 같진 않아도 우리가 소소하게 뿌린 씨앗이 거리에 랜드토토 에이즈 환자를 도울 수 랜드토토 공동체에 도움이 된다니. 장소만큼 멋진 곳이었다. 게다가 한국에서 초중고를 다닐 때 교실마다 붙어있던 시계와 비슷한 시계가 달려있어 마치 한국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책을 읽고 음료를 마시는 사람도 많았지만 이곳에서 쉬고 랜드토토 듯한 노숙자도 보였다. 한쪽 테이블에 앉아 손톱을 깎고 랜드토토 사람도 보였다. 다른 곳에서 자주 볼 수 없는 전경이지만 뉴욕이라면 가능한 것 같았다.

의미 있는 책방을 나와 벨라가 좋아했던 맥널리 책방의 분점, 랜드토토점으로 향했다. 여전히 사람들로 붐비는 곳이었다. 앉아서 쉴 수도 책을 읽을 수도 있어 너그러운 책방이라 느껴졌다. 게다가 중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통해 약간의 프라이버시까지 훔칠 수 있는 곳이 마련되어 있었다. 가장 뒤까지 쭈욱 들어가 엘리베이터를 타면 이 책방은 마법을 부리기 시작한다.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간 문이 아니라 옆에 있는 문이 열리고 짠! 지하에 있는 아이들의 공간이 보인다. 아름답게 꾸민 이 공간에는 진한 남색 천장 밑으로 밝은 공모양의 전등이 켜져 있다. 작은 무대 앞에는 텅 빈 공간이, 그 주변에는 앉을 수 있는 편한 일인용 소파 두어 개 그리고 아이들은 위한 피크닉테이블이 있다. 편하게 안을 수 있도록 쿠션 같은 의자도 군데군데 있다. 노랑나비가 그려진 카펫이 분위기를 더해준다. 원목으로 된 책진열장에는 여러 종류의 책이 놓여있어 마음껏 책을 고를 수 있다. 거의 눕다시피 쿠션 의자에 앉아 책을 보는 랜드토토가 귀여워 바라보니 노랑나비 말고도 빨간 무당벌레가 있는 카펫이 보인다. 왠지 랜드토토가 한 마리의 무당벌레 같아 웃음이 나온다. 한참 책을 읽다 고른 책을 사고 또 밖으로 나섰다.

이번에는 우리 모두가 좋아하는 마카롱 집으로 향랜드토토. 파리에서 여행을 하고 온 동생이 사다준 마카롱 맛을 잊지 못한다. 분명히 미국에서도 먹어봤는데 그 프랑스 마카롱은 정말 맛있었다. 그 프랑스 마카롱 체인점에 들러 줄을 섰다.

“한 랜드토토 당 두 개씩만 살 거야. 곧 저녁을 먹을 거니까 단 것 많이 먹으면 안 돼. 입맛이 떨어지니까.”

“꼭 두 개씩만 먹어야 해요? 난 열 개 먹고 싶은데.”

“안돼. 한 랜드토토당 두 개씩. 더 이상은 안돼.”


한참 실랑이를 했나 보다. 우리 바로 앞에선 노신사가 다 들을 만큼. 그는 우선 점원에게 4개를 달라고 했다. 점원이 뭘 원하냐고 묻자 그는 그냥 제일 인기 많은 걸로 달라고 해 점원이 고심하더니 네 개를 골랐다. 그러더니 랜드토토에게 그 마카롱을 전한다.

“맛있게 먹으렴.”

우리와 랜드토토의 눈이 동그래졌다.


“아니에요. 저희가 사서 먹을 거예요. 괜찮습니다. 그냥 가져가세요.”


계속 실랑이를 해도 도대체 물러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줄 서 랜드토토 사람들과 점원의 눈치가 보여 동생과 눈빛을 교환하고 결국 받기로 했다.

“감사합니다. 잘 먹을게요.”

“감사합니다!”

랜드토토도 고맙다는 인사를 잊지 않는다. 그는 또 선물인듯한 마카롱을 잔뜩 사더니 가게를 나섰다.

우리도 계획한 대로 한 사람당 두 개씩, 여섯 개를 골라 대리석과 민트초록색으로 장식된 가게 한쪽 구석에 앉았다. 한 직원이 우리가 앉는 걸 보곤 예쁜 사기그릇과 냅킨을 가져다주었다. 물도 가져다주고. 야금야금 마카롱을 먹다 말고 랜드토토가 묻는다.

“그 할아버지는 왜 우리한테 마카롱을 줬어요?”

엄마랑 이모가 하도 짜게(?) 구니까 네가 안돼서 그랬나 보다고 차마 말해주지 못하고 네가 너무 귀여워서 그래라고 답랜드토토.

“우리보다 불우한 랜드토토들한테는 안 주고요? 밖에 노숙자도 많은데…”

“아마 그런 랜드토토들도 돕는 분이실 것 같은데? 네가 손녀 같아서 그러셨나 봐.”

랜드토토는 아무래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이다.

“갑작스럽게 이런 친절을 선물 받아 기분 엄청 좋다. 특히 내 아이한테 이렇게 해주시니 너무 고마운데? 나도 다음에 이런 생뚱맞은 친절함을 나누어야지!”

동생에게 말하니 동생도 고개를 끄덕인다. 마카롱과 친절의 달콤함을 뒤로하고 예약된 식당으로 향했다. 여행을 떠나기 전 보통 대여섯 권의 여행책을 독파한다. 파워 J인 나는 계획을 하고 계획하는 것 자체를 즐긴다. 또 여행 전의 여행은 모름지기 여행책, 여행 에세이라고 생각해 어떤 여행이든 기본 5권 많게는 20-40권 이상 읽는다. 이번 여행도 뉴욕 여행가이드책 10권, 또 여행 에세이도 10권 정도 읽었다. 그래서 찾은 유명한 일식집에 도착했다. 뉴욕에서 지낸 시간이 십 년이 훌쩍 넘은 동생도 모른다는 이 숨겨진 맛집(이라기엔 여행책에 나와있으니 나름 유명한…)은 면발로 유명했다. 식당에서 직접 만든다고 들었다. 개인적으로는 일본에서 먹은 면보다 몇 배나 맛있었다. 야채 튀김도 닭튀김도 게다가 맥주까지! 다 맛있었다. 신기한 달걀국 같은 우동을 랜드토토에게 시켜주었는데 국물이 너무 맛있어 밥까지 추가해 말아먹었다.(가끔 랜드토토는 대식가인 나보다 더 먹어 나를 놀라게 한다.) 먹다 보니 곧 퇴근할 동생 남편이 생각나 따로 주문해 집으로 가져가기로 했다.

집에 가기 전 잠시 비브리테크라는 신개념의 서점 겸 카페에 들렀다. 멀리 서봐도 무척이나 트렌디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들어가 보니 사진으로 봤던 것과는 정말 달랐다. 내가 본 사진은 낮에 찍은 사진이라 그저 책방 겸 카페였는데 저녁에는 완벽한 술집으로 변신한다는 걸 몰랐다. 불은 컴컴하고 분위기는 벌써 취한 것 같은 곳이었다. 저녁을 먹은 뒤라 이미 어둑어둑해져 이제는 술집으로 변신한 것이다. 일찍 올걸하는 아쉬움을 뒤고 하고 동생 집으로 향했다.


“엄마, 그 할아버지는 왜 나한테 마카롱을 줬어요?”

자기 직전 랜드토토는 또 묻는다. 아무래도 어린 랜드토토에게 이런 무작위로 날아온 친절과 마카롱은 미스터리로 남나 보다.

“그러게 말이야. 우리도 다음에 너처럼 귀여운 아이가 있으면 맛난 걸 사줘야지!”

하지만 나는 안다. 세상에 랜드토토보다 귀여운 아이는 없다. 랜드토토 다음으로 귀여운 아이가 있으면 그때는 사줘야지 하며 잠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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