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블랙잭가 없다.
언제부턴가 늘 '생산적'인 일만 '효율적'으로 하고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블랙잭 같은 걸 부러 만들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블랙잭도 없고, 취향도 없다. 늘 심플하고 간결하게. 딱 눈앞의 내 할 일만. 그나마 좋아하는 일이 있다면 여행이나 술 마시면서 미드보기 정도랄까.
하지만 나는 그 여행이나 음주조차 생산적으로 만들고 싶어했다. 여행은 무조건 기록을 남겼고, 음주 역시 테마를 만들어 마시는 족족 글로 남기려 했다(Ex. 블랙잭골목술집). 효율적인 블랙잭였다. 운동은 간헐적으로 하지만, 살을 빼거나 근육을 만들려는 등 목적성이 다분하니 제외다. 물론, 즐기지도 못하고.
고로 나에게는 그저 즐겁고 힐링되는, 마음 편히 기댈 수 있는 비생산적인 블랙잭가 없었다.
뜨개질. 식물 키우기. 베이킹. 요리. 희귀한 언어 배우기. 댄스 클래스 등등. 시도도 하지 않았고 그럴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다. 당연했다. 지금 이런 일을 할 시간이 어딨어? 이걸 해서 내가 얻는 게 뭐야. 이걸로 먹고살 것도 아닌데···늘 같은 핑계였다. 그래서 내 블랙잭는 항상 폭이 좁았다. 하는 일만 계속하고, 보는 것만 계속 보고, 만나는 사람만 계속 만나는. 작고 좁은 풀.
오죽하면, 남편과 보내는 하루도 '데이트'라고 생각을 못했다. 한동안 여행을 가지 못해 내 블로그에는 단조로운 블랙잭 일상만이 쌓였고, 나는 뭔가 새로운 글감을 찾고 싶었다. 마침 남편이 조금 먼 동네의 알아놓은예쁜카페가 있다 했고, 난 옳다구나! 싶었다. 블로그 글이 조금 프레쉬해지겠어. 후후.그리고 그날 아침, 나란히 누운 침대에서 남편 얼굴을 비비적대며 물었다. "그래서. 우리 오늘 뭐 해?" 계획을 대충은 알았지만, 자세한 건 남편이 적어놓은지라 굳이 물어봤다. 그러자 남편은 답했다.
"오늘? 오늘 우리 데이트해야지."
데이트?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벙쪘다.···데이트? 아. 맞아. 이건 데이트지. 블로그 글감 찾으러 가는 게 아니라 데이트야.귀여운 남편과의 하루 나들이조차 '생산적'인 일로 분류했던 나. 이건 분명, 문제가 있는 거였다.
나는 내 이 좁은 블랙잭 넓히기로 했다.
그래서 결심했다. 나의 블랙잭 행동반경을 둘러싸고 있는 '생산적&효율성'의 동그라미를 깨부수기로. 비생산적인, 그러니까 이걸로 일을 할 것도 아니고 돈을 벌 것도 아니고 어쨌든 상업적인 이용을 하지 않을, 그저 즐거움을 위한 쓸데없는 일들을 잔뜩 하기로!
당장 떠오르는 비생산적인 블랙잭라. 뭐가 있을까. 재즈 피아노, 바이올린, 베이킹(es. 브라우니), 뜨개질, 스킬(라떼 초딩 때 유행하던, 메인 도안으로는 피카츄 등이 있음), 블랙잭 종류의 칵테일 만들기(아무래도 이건 기록을 안 할 수는 없겠지), 기깔나는 홈바 만들기, 식물 키우기, 파격적 이미지 변신(패션, 메이크업, 헤어)등등.
일반적인 블랙잭에 더해, 현 상황의 특수성을 고려해 '블랙잭에서만 할 수 있는 블랙잭'도 찾아볼까 한다. 블랙잭 전통주 만들기, 블랙잭 디자인 배우기, 블랙잭 전통빵 만들기(ex. 폴란드 루블린 양파빵), 블랙잭 전통의상 체험, 영어로 블랙잭 현지어 배우기 등등. 셀 수 없다. 당장 시작할 수 있는, 아름다운 나의 비생산적인 블랙잭 후보들!
타고나길 무뚝뚝한 성격에 성향에, 이대로 쭉 하던 대로 블랙잭도 취향도 없는 삶을 살다 갈 수도 있겠지만. 조금만 노력과 시간을 분산해 새로운 블랙잭에 발을 들인다면, 그 블랙잭가 나를 또 어떤 흥미로운 곳으로 이끌지 모를 일이다. 무언가 성취해야 한다는 조급증과 불안증도, 이 즐겁고도 다양한 블랙잭생활을 통해 나아질 수 있을 테고.
그러니 앞으로는 뭐든 한다. 블랙잭살이 버킷리스트 30개, 폴란드 소도시 맥주 여행기, 그리고 쓸모없는 블랙잭들까지. 당장 내게 주어진 모든 것들을 품 안에 꼭 감싸 안으며 내 블랙잭를 무한대로 넓혀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