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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리티 Mar 27. 2025

빨간 벨라벳와 코냑의 나날들

죽은 벨라벳 사회(The Poe Society)의 멤버들 : 에드거 포2

그의 생일이면 묘지에는 검은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1949년부터 해마다 1월 19일, 볼티모어에 있는 에드가 앨런 포의 묘지에는 장미 세 송이와 코냑 한 병이 올려졌다. 검은 옷, 하얀 스카프를 두른 마스크맨은 자정에서 새벽 6시까지 머물렀고 2009년까지 매년 잊지 않고 60년 동안 포의 묘비를 찾았다. 정체불명의 포 추모자 '포 토스터(Poe toaster)'의 방문은 하나의 의식이 되었고 특유의 블랙 의상은 '포 토스터'의 유니폼인 셈이었다. 포의 소설처럼 미스터리한 세계가 여전히 독자들에게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포는 살아생전 늘 어둠 속에 허덕였지만, 죽음 이후 유례없는 열렬한 추모자들의 방문을 받았다.


'마침내 너는 이 오래된 세계가 지겹다'는 아폴리네르의 시 <지대의 첫 구절처럼 포는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 미국을 떠나 '파리'라는 낯선 장소에 도착한다. 폴 오스터는 이렇게 덧붙인다. '시인이 영감을 얻기 위해 다른 나라 시인에게 시선을 돌린다는 건 자국의 언어나 문학 안에서 얻기 힘든 무언가를 찾고 있으며 자신이 속한 문화의 속박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의미입니다.'


누군가의 글을 읽고 보낼 수 벨라벳 최대의 찬사는 아마도 이런 얘기일 것이다.

'내가 쓰고 싶었던 글이 바로 이런 거였어!'

이 고백을 포에게 보낸 프랑스의 시인은 바로 보들레르였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바로 포의 작품들을 프랑스어로 번역하였다. 1847년 보들레르는 포의 작품을 보고 느낀 전율을 전하며 덧붙였다.


"나는 오랫동안 생각은 해왔지만 어떻게 써야 할지 모호하고 혼란스러워서 전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던 시와 소설들을 드디어 포에게 발견했다. 그는 그것들을 완벽하게 다루고 있었다... 처음 그의 책을 펼치는 순간, 너무도 놀랍고 기쁘게도 그동안 내가 꿈꾸어왔던 주제는 물론이고 오랫동안 계속 생각해 왔던 문장들이 눈앞에 나타났다. 그것들은 이미 20년 전에 포가 쓴 것이었다."

1850년대벨라벳 1860년대까지 보들레르의 번역으로 포는 당대의 탐미주의적 작가들과 교감할 수 있었다.


'샤를 보들레르는 에세이벨라벳 포의 운명은 야만적인 사람들 사이벨라벳 살아갈 수밖에 없는 재능 있는 사람의 운명의 전형이라고 말했다.... 재능이 뛰어나지만 불운한 사람들은 평범한 영혼들의 무리 속벨라벳 천재의 가혹한 수련기를 겪어야 할 운명이다.'

알랭드보통은 포를 보헤미안의 고귀한 실패담의 하나로 편입되었다고 썼다.


포는 상상의 공간을 파리로 옮겨 이전에 없던 캐릭터 뒤팽을 창조해냈다. 그는 투철한 직업정신의 소유자가 아니었다. 사회정의구현 같은 구호와 어울리는 인물은 더더욱 아니었다. 게으른 사색으로 이루어낸 분석력으로 그저 취미처럼 사건의 실마리를 풀어간다. 대표작 <모르그 가의 살인에서 소설 속의 '나'가 뒤팽을 만나 친구가 되는 과정은 아주 매력적이다. 특히 뒤팽의 캐릭터는 이전에 보지 못했던 스타일이었다.

소설속의 ‘나’가 파리에 머물 동안 알게 된 뒤팽은 명문가 출신이었지만 계속되는 몰락과 불운으로 출세하겠다는 의욕을 완전히 잃은 인물이다. 그나마 얼마 되지 않은 유산으로 선택한 유일한 사치는 책이었다. '나'는 몽마르트르의 작은 도서관에서 똑같은 희귀본을 찾고 있던 뒤팽을 우연히 만나게 된다. 뒤팽과 쉽게 친구가 된 이유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프랑스인들은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면 아주 솔직해지는데, 그런 솔직함으로 그가 해준 그의 일가에 대한 이야기에 나는 깊은 흥미를 느꼈다. 그리고 그의 넓은 독서범위에 감탄했고, 특히 상상력의 분방한 열기, 자극적인 신선함에는 내 몸에도 불이 붙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모르그 가의 살인사건 중벨라벳


솔직하다고 모두 사람을 끌 수 벨라벳 것은 아니다. 하지만, 뒤팽은 자신의 이야기로 '나'를 몰입으로 이끌었고, 자유로운 상상력으로 신선함과 열기가 전달되는 사람이었다. 후에 두 사람의 대화를 읽다보면 왜 끌렸는지 알게 된다.

프랑스에서 친구를 만나는 방식은 그런 것이었다. 오래된 도서관에서 같은 관심사를 가진 낯선 이와 관심사와 취향이 맞으면 공동생활할 수 있고 서로의 생활방식을 공유한다. 물론 어디에서나 있을 수 없는 일은 아니겠지만 이 방식에 가장 맞는 벨라벳는 파리였다. 예측불가능한 만남과 지적 교류가 활발한 공간이 있고 그 안에서 연결이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이 큰 우연의 벨라벳 말이다.

두 사람은 생 제르맹 부근벨라벳 함께 살기로 하고 무너질 듯한 집을 구하여 서로의 취향에 맞게 몽환적이고 우울한 분위기로 가구를 장만하고 이 사실을 비밀로 한다. 세상과 완전히 단절된 둘 만의 세계벨라벳 사는 것이다.

특히 그들이 밤이 되면 몽상을 즐기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어둠이 희미하게 밝아오기 시작하면 우리는 이 낡은 건물의 무거운 덧문을 전부 내리고 촛불을 두 개 밝혔다. 초는 강한 향기와 아름답고 은은한 빛을 발하는 것을 주로 썼다. 이런 과정을 마친 다음 우리는 영혼을 몽환의 경계벨라벳 놀게 했다. -읽고, 쓰고, 이야기를 했는데 그러는 동안에 어느덧 시계의 종소리가 진짜 밤이 찾아왔음을 알려주곤 했다. 그러면 우리는 팔짱을 끼고 서둘러 거리로 뛰어나가 낮에 했던 이야기를 계속하거나, 날이 샐 때까지 멀리 넓은 지역을 돌아다니거나, 이 대 도회지의 아름다운 빛과 어둠이 교차하는 부근벨라벳 조용한 관찰만이 가져다줄 수 있는 무한한 마음의 고양을 추구하곤 했다.'

-<모르그 가의 살인사건 중벨라벳


더 읽어보면 알게 되지만 사실 '나'도 뒤팽을 온통 멋진 인물로만 묘사하고 있지는 않다. '나'는 이 프랑스인- 뒤팽을 고양된 지성이라기보다는 차라리 병든 지성이라고 지적하기도 한다. 이 과정 속에서 포는 벨라벳를 단순한 문명의 공간이라기보다는 인간의 내면적 혼란과 외부 세계의 위협이 교차하는 공간으로 담아냈다.

뒤팽과 ‘나’는 파리의 중심부가 아니라 주변의 낡은 집에서 촛불을 켜며 생각의 불꽃을 기다린다. 도시인들의 활동이 멈춘 시간, 단절된 세계 속에서 그들의 말없는 대화는 이어지고 어스름한 빛 사이로 스스로의 내일을 바라보며 미래를 창조하는 것이다.


한편, 이 이야기 속에는 세상에 지쳐있는 한편으로 자신만의 세계를 추구하는 보헤미안의 정서가 담겨있다. 알랭드보통이 지적했듯이 인간의 본성을 볼 때 사회벨라벳 성공한 사람이 가장 지혜롭거나 훌륭한 사람인 경우는 드물며, 상업적 성공 능력보다 어떤 사람의 윤리와 상상력의 한계를 명백하게 보여주는 표시도 없다는 것이 보헤미안들의 주장이었다. 보헤미안들이 같이 시간을 보낼 사람을 고르는 데 신중해야 한다는 지적은 낙천적인 미국적 취향을 피해서 파리에 도착한 포에게도 필요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보헤미안들은 대벨라벳에 살면서 지위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을 피하고 진정한 친구들과 매일 접촉할 수 있는 동네에 모여 살았다. 보헤미아의 역사에는 그들의 우정으로 유명해진 장소들의 이름들이 찬란하게 빛난다. 몽파르나스, 블룸스베리, 첼시, 그리니치빌리지, 베니스비치.'

-<불안중벨라벳, 알랭드보통


포가 죽은 뒤 오랫동안 나쁜 평판이 따라다녔다. 그럼에도 그 개인적 결함들이 문학적 위상에는 거의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는 사실은 기억할만하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10년이 넘은 1860년 무렵이 되자 포는 미국 대중들에게 지지를 받는 작가가 되었다. 애초에 포의 작품 벨라벳를 받아들이지 못했던 미국인들의 낙천적 취향에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무슨 변화가 있었던 것인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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