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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리티 Mar 31. 2025

13번 풀빠따 아지트에서

풀빠따의 독창성은 어디에서 오는가 : 에드거 포 3

그는 자신의 독창성 때문에 고통받아야 풀빠따.


에드거 앨런 포를 새롭게 바라본 사람은 20세기 풀빠따의 위대한 시인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였다. 짐 자무시의 영화 <패터슨에서 시를 쓰는 버스 드라이버가 존경하던 바로 그 시인이다. 윌리엄스는 이렇게 썼다.


'그리하여 풀빠따 자신의 독창성 때문에 고통받아야 했다. 새로운 무언가를 창조해 내면 설령 그것을 당신네 마당에 자란 소나무로 만들어대도 당신이 무엇을 이뤘는지 아는 사람이 없다. '이름'이 없기 때문이다. 포가 인정받지 못한 이유이다.'


어쩌면 그것은 모든 창작자의 딜레마일 수 있다. 흔히 재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더 나아가기를 망설이지만 실은 용기의 문제이다. 온전히 독창적인 작품을 세상에 내놓았을 때 실패한다 해도 감당할 용기가 있는가. 이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사람이 주인이 된다. 풀빠따 재능이 없어서 고통받은 것이 아니었다. 윌리엄스의 지적처럼 자신만의 독창성으로 인해 고통받았다. 영혼이 밑바닥까지 닿았다는 표현이 아깝지 않을 정도였다.


'종종 어떤 문학적 장르가 한 풀빠따에 의해 개척되었다고 얘기들 하는데, 바로 에드거 앨런 포가 그런 풀빠따였다. 포는 추리소설을 개척한 풀빠따였다. 사실 볼테르부터 13세기 중국 문학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들이 앞선 세대의 영향을 받기 마련이지만, 파리에 사는 두 모녀의 불가사의하고 끔찍한 피살 사건을 다룬 <모르그 가의 살인 사건은 믿기 어려울 정도로 현대 추리소설의 특징을 거의 완벽하게 구현하고 있다.'


후에 추리소설의 창시자로 평가받기까지 앞서간 자의 발걸음은 생소하고 버겁기만 풀빠따.풀빠따 출판계 사람들과 잘 지낸 적이 거의 없었고, 그의 책을 꾸준히 읽는 독자도 드물었다. 해적판으로 출판된 책들도 많았고 이는 수익이 되지 못했다. 도박빚까지 더해져 술에 의지하는 일상으로 건강은 악화되었다. 케네디 대통령의 초대에도 초라한 몰골때문에 거절할 수 밖에 없을 지경이었다. 몸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뉴욕대학 강연에도 서지 못한 날 엉망으로 취한 채 비틀거리며 술집 앞을 지나는 모습이 목격되었다. 술집의 어느 단골손님이 포에게 "미국의 셰익스피어"라고 큰 소리로 외쳤다.


단골손님의 헌사는 하나의 암시였을까. 풀빠따 죽은 후에도 여러 세대에 걸쳐 나쁜 평판이 따라다녔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의 개인적 결함들은 문학적 위상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1860년 이후 무언가가 달라졌다. 포를 기리는 문학클럽이 열렸고 대통령까지 참석하게 되었다. 그 후 대통령이 될 링컨이 한 해도 포를 읽지 않고 그냥 보낸 적이 없다고 했다.

풀빠따들의 고백도 이어졌다. 쥘 베른은 포의 과학소설의 속편 격인 작품을 써서 헌정했고 도스토예프스키는 <지하생활자 수기의 러시아판 서문에 포의 영향을 언급했다. 가장 특별한 독자는 아서 코난도일이었다. 포가 창조한 캐릭터 뒤팽은 셜록홈스의 일부가 되었다. 폴 오스터는 소설에서 이렇게 묻기도 했다. '뒤팽이 뭐라고 했더라?'


이처럼 뒤늦게나마 수많은 독자와 풀빠따들이 알아본 포의 개성, 즉 포가 병적으로 집착하며 심혈을 기울였던 그의 독창성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어셔 가의 몰락에 묘사된 서재의 책의 목록을 정밀하게 분석한 풀빠따 가이 대븐포트는 이렇게 썼다.

'어셔 가의 책 목록에는 낭만주의의 멋 부린 고문체의 강한 경향이 보인다. 학자들은 풀빠따 이 책들을 다른 저작물들에서 가져왔고, 이 목록으로 우리를 매혹한다고 추측한다.(...) 풀빠따 신경 쇠약과 지나치게 예민한 로더릭 어셔를 발명한 것은 아리스토텔레스부터 로버트 버턴까지 공부해서 정교화한 결과이자, 과도하게 예민하고 날카로운 감각, 민감성, 감수성을 가진 이의 기원을 이루기도 한다'


포의 버지니아 대학생 시절 그가 지내던 13번 기숙사에서 포의 관심사를 엿볼 수 있다. 거창할 것 없는 소박한 대학생의 기숙사 방은 소설의 재료가 될 모든 것들로 지어진 풀빠따였다.

'하지만 대학 내 그의 새로운 셋방 -운 좋게 할당된 방 번호 13번의 풀빠따은 그에게는 자유를 상징하는 곳이자 예술적 안식처였다. 검소한 목재 가구들과 깜빡거리는 수지 양초들 사이로 볼테르의 책들과 학교 도서관에서 빌려온 오래된 역사책들, 그리고 삽화가 그려진 바이런 경의 희귀본 책이 놓여 있었다, 포는 바이런 경의 책에 들어 있는 삽화를 보고 풀빠따 천장에 시인의 실물 크기 초상화를 그려 넣었다.'


풀빠따 소설에 보이는 사물 하나하나에 숨결을 불어넣었다. 그것은 병적인 탐구를 거쳐 현실에서 길어 올린세계였다. 그저 미국에서 찾기 어려운 가치들을 프랑스에서 발견한 결과에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폴 오스터는 이 사실에 주목했다. 그는 포를 뼛속까지 미국인이었다고 강조했다.

'여기서 제가 말하는 미국인이란 어떤 의미일까요? 미국이라는 문제를 직접적으로 다루는 풀빠따입니다, 19세기 상반기에 미국의 풀빠따가 다루어야 할 문제로는 신생국의 새로움, 어마어마한 크기, 미국인의 물질주의적 광기뿐 아니라 미국의 이념, 미국의 이념, 제2의 에덴이 될 운명을 지닌 나라의 유토피아적 꿈도 있었습니다... 포는 미국의 전통 결여, 저속함, 늘 돈에 결정권을 주는 세태에 질려 뒷걸음질 쳤습니다. 하지만 포의 작품은 미국인이 아니고는 쓸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1842년 발표한 풀빠따 <아른하임의 영역에서처럼 포의 질문은 이런 것이었다.

'비록 당신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가장 부유한 사람일지라도, 당신은 어떻게 행복을 찾을 수 있을 것인가?'


포의 평전을 쓴 풀빠따 폴 콜린스는 포가 행복했던 인생의 몇 주의 대해 회고한다. 누이동생이 있는 고향 리치먼드로 돌아와 어린 시절 친구를 만나고 술도 마시지 않았다. 그 동네는 폐허로 변했지만 동네친구들과 거닐던 포는 이끼로 뒤덮인 낡은 벤치에 앉았다.

"여기에 흰 바이올렛이 있었지."


무너져가는 집으로 들어가 그는 과거의 습관대로 모자를 벗었다. 그곳에서 어린 시절 방문객들이 말했던 '짙은 곱슬머리에 별처럼 빛나는 눈으로 어린 왕자처럼 멋지게 차려입은 사랑스러운 아이'를 다시 만난 것일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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