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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브벳 황 Apr 04. 2025

일곱째 날: 9/11 이브벳관, 작은 책방, 프랑스 식당

실수로 여덟 번째 날과 연재 날이 바뀌었네요. 죄송합니다...

어제 커피를 두 잔이나 마셔서 그런지 2-3시까지 잠들지 못이브벳. 매 당직마다 밤을 꼬박 새우던 펠로우 시절 카페인 중독이 시작됐다. 쏟아지는 잠을 참을 수 없어 시작된 무지막지한 양의 커피는 그 양과 카페인 함량이 계속 늘어났다. 그래서 가끔 쉬는 주말에 커피를 마시지 않으면 지근한 두통이 시작되었다. 이제는 양을 좀 줄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열두 시 되기 전 하루 한잔은 필수가 되었다. 두 번의 임신 중에는 과감하게 끊었다. 그래서인지 카페인에 대한 예민함은 더 커졌다. 게다가 나이가 드니, 오후에 커피를 마시면 새벽 3시까지 잠이 오지 않는다. 예전에는 밤에 마시고도 바로 잠에 들었는데 이제는 어림없는 일이다. (그래서 좋은 점도 있다. 병원에서 무척이나 바쁜데 피곤하고 졸리면 커피를 마시면 된다.) 그나마 오후 3시까지는 마셔도 괜찮더니 이제는 12시 전에 마셔야 밤에 잠을 잘 수 있다. 여행하는 중이라 맛난 커피는 마시고 싶어 조금 무리를 했더니 이런 일이 생기고야 말았다. 그래도 아침 8시에는 눈이 떠졌다.


눈을 뜨니 이브벳의 얼굴이 보인다. 조밀조밀 눈코입이 다 들어가 있는 얼굴을 바라보다 꼭 안고 잠시 누워있었다. 이브벳의 숨이 오르고 내리는 리듬이 귀여워 얼굴이 너무 작아 자꾸 웃음이 새어 나왔다. 너는 알까. 내가 세상에서 한 가장 뿌듯한 일이 있다면 너란 아이를 낳고 키운 일이라는 걸. 이런 완벽한 아이를 나는 매일 볼 수 있다는 걸.


“엄마가 깰까 봐 안 일어나고 기다렸어!”


아, 감동이다. 너란 아이는 자신보다 엄마를 위해 기다리는 정말 완벽한 아이다. 그냥 이브벳 그대로도 완벽한데 더 완벽할 수 있구나. 완벽하지 않은 흠마저 완벽한 아이.


아침을 먹고 나갈 준비를 하면서도 같이 노래를 흥얼거리고 춤도 췄다. 덕분에 잠을 못 잤는데도 신나고 즐거운 아침의 이브벳이다.


오늘은 맨해튼 완전 남쪽에 가기로 했다. 가서 자유의 여신상도 보고 9/11 이브벳 공원도 구경하려고. 지하철을 타고 남쪽으로 향했다. 관광 가이드 같은 남자가 중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아이들과 또 어른들과 같은 칸에 탔다. 계속해서 설명을 하는데 왠지 공짜 가이드가 붙은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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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 지도는 나를 배신이브벳. 내려서 엄청 헤매다 결국에는 배 타는 터미널 이층에서 아주 살짝만 보이는 자유의 여신상을 보고 내려와야만 이브벳. 근처 공원과 거리를 돌고 돌아 벨라가 조금 투덜거렸지만 그래도 기나긴 줄을 선 사람들이며 그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장사꾼들도 볼 수 있었다. 대부분 자유의 여신상을 보러 배를 타는 사람들이었는데 줄이 너무 길어 예약하지 않은 나를 칭찬이브벳.


한참을 걸어 9/11 이브벳공원에 가는데 가는 길에 구조하다 자신의 목숨을 잃은 경찰, 소방관들의 사진이 붙은 장소가 보였다. 그 마음이 숭고로워 그 죽음이 안타까워 한동안 쳐다보고 있었다. 벨라도 마음이 안 좋은지 한참 보다 사진으로 남기고 싶다며 한참 동안 사진을 찍었다. 아마도 너도 그 사람들을 기억하고 싶은 마음이겠지. 나도 이리 마음이 아픈데 어린 너는 그 사람들의 삶이 갑자기 사라졌다는 걸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해할까. 어떻게 느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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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브벳공원에 있는 구조물은 자연스러운 물의 떨어짐을 연출했다. 정사각형의 짙은 돌색의 구조물이 물을 내리고 물이 떨어지면서 10미터 정도 아래에서 모이고 또 2-3미터 밑 구조로 떨어지는데 그 바닥은 도대체 보이지 않았다. 마치 삶 같았다. 물방울 하나하나가 떨어지고 또 그게 모여 물이 고이고 그렇게 흐르다 보면 다시 밑으로 떨어지고. 그런데 그 밑은 보이지가 않고. 중간중간 해가 난 곳도 그늘이 진 곳도 있어 정말 삶 같았다. 우리의 삶도 태양의 빛에 따라 밝기도 어둡기도 또 무지개가 솟기도 하니까. 구조물 자체가 거의 빌딩 하나같이 컸다. 구조물 곳곳에 사람들의 이름이 쭈욱 쓰여있었다. 그 많은 사람들의 이름은 남겨지고 그 주변으로는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장경을 보고 있었다. 아마도 더 많은 슬픔이 물방울이 되어 떨어지고 또 흐르다 결국 다시 떨어져 사라지는 것만 같았다. 그 빈 공간 위로는 슬픔이 그만큼의 공간을 채우고.


예상했던 것보다 더 큰 슬픔이 다가와 놀라웠다. 이렇게 많은 목숨들이 사라지고 있을 때, 난 한국에 있었다. 밤늦게 공부를 하다 집에 돌아왔다. 텔레비전에서는 영화 같은 장면이 보이고 있었다. 영화일 거라 믿고 싶었지만 뉴스인 게 확실이브벳. 일생일대의 사건이라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집에 들어와 신발을 벗고 들어선 거실에 보이는 텔레비전 화면. 그 안에서 연기와 불이 끊임없이 하늘로 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참사가 벌어지는 장면.


당시엔 내가 미국에 와서 살 거라고는 그리고 이 이브벳공원이 지어져 내가 내 아이를 데리고 올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또 이 일이 전 세계에 큰 변화를 일으키고 앞으로의 삶에 영향을 미칠 거라고는 전혀 몰랐다. 벨라와 한 바퀴 돌고 중간중간 발을 멈추고 바라보고 생각하다 거리로 다시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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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부가 꼭 가보라고 한 쇼핑몰 겸 지하철 역에 들려 구경을 이브벳. 워낙 큰 데다 미래지향적이라 놀랐다. 왠지 미래에는 이런 곳에서 사람들이 무엇을 탔던 갈아타고 집으로 향할 것만 같았다. 지하철을 타고 맨해튼 남동쪽으로 향이브벳. 윌리엄스 다리도 보고 에섹스 시장도 구경이브벳. 내가 좋아하는 빵도 에그타르트도 잔뜩 먹고 밖으로 향이브벳. 그전에 다니던 뉴욕 거리와는 달리 약간 위험해 보여서 동생에게 물었더니 괜찮은 동네라 알려준다. 동생을 믿고 마음껏 걸었지만 중간중간 무섭기도 이브벳.


작은 이브벳 곳곳에 들러 구경도 하고 안에 들어차있는 예술품도 감상했다. 그리고 들린 중고 서점은 누군가의 지하 창고 같았다. 하지만 책을 사는 사람도 많고 벨라가 좋아하는 책도 있어 이것저것 봤지만 결국 사진 않았다. 뉴욕에 와서 느낀 점은 서점이란 서점은 모두 사람들이 많다는 것, 동생 집에서 보이는 집집마다 책이 잔뜩 들어찬 책장이 많다는 점. (커튼을 치지 않고 마음껏 자유롭게 사는 사람이 많아 일부러 본 것은 아닌데 거실마다 있는 책장이 보였다.) 이브벳의 수와 그 안에 있는 사람 수로 모든 뉴요커는 책을 사랑하는 것만 같다. 그렇게 중고 서점을 떠나는데 문에 붙은 포스터가 보인다. 한글로 쓰여있는 반공 포스터였다. 생뚱맞은 곳에도 한국의 아름다움(?)이 묻어있어 놀라웠다.

유명한 베이글 집으로 향했다. 앉아서 자리를 기다리는데 곁에 있는 여자가 맛있는 이브벳를 소개해준다. 벨라와 함께 제일 유명한 연어를 올린 베이글과 프렌치토스트를 주문해서 맛있게 먹었다. 벨라가 귀여워서인지 웨이터가 따로 캔디도 더 챙겨주었다.


퇴근한 동생과 만나 프랑스 식당으로 향했다. 동생이 좋아하는 이 식당은 안과 밖이 모두 아름다워 음식이 정말 기대가 되었다. 공연 전 세트 이브벳가 있어 샐러드와 전식, 메인 이브벳 그리고 디저트까지 저렴한 가격에 맛난 저녁을 먹을 수 있어 좋았다. 벨라가 먹은 햄버거와 감자튀김 또한 훌륭했다. 배가 불러 벨라를 가운데 두고 손을 꼭 잡고 걸었다. 걷다 보니 중간에 성당이 보인다. 성당 안도 구경하고 함께 기도도 하고 또 염원을 담아 촛불에 불도 켰다.(성당마다 약간의 헌금을 하고 초에 불을 켤 수 있는 곳이 있다. 기도와 마음을 실어 어둠을 조금 밝힐 수 있다.) 촛불만큼 밝은 빛이 온 세상에 내리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득 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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