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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용 Mar 19. 2025

<미키 17 오월벳 대하여

미키는 빚 독촉에 시달리다 못해우주로 도망친다. 대한민국 남자는 연애나 진학 실패, 큰 사고를 쳤을 때 등의 상황에서 군대로 도망치고는 한다.군대 가는 확실한 방법으로동반 입대를 선택하는 것처럼, 그는 우주로 가는 확실한 방법으로 익스펜더블(소모품) 직무를 선택한다. 동반 입대 지원이 확실히 입영하는 방법이라지만, 일반 보병으로 갈 수밖에 없어 단점이 있다. 미키도 나중에야 안 사실이지만 익스펜더블 역시 단점이 명확했다.


아직 탐구해야 하는 것이 많은 우주다 보니까, 누군가는 몸소 경험을 쌓아 정보를 모아야만 했다. 익스펜더블이 그 임무를 주로 맡았다. 그들은 기억을 장치에 저장해 두고 위험한 일을 도맡아 한다. 그가 죽어도 상관이 없다. 저장해 둔 자료를 바탕으로 몸을 다시 출력하면 되기 때문이다.실험 과정과 경험, 결과는 모두 오월벳된다. 다만 유일하게 오월벳되지 않는 것이 있다. 고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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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다른 환경에 인간의 몸으로 적응할 수 있는지 실험하는 과정에서 겪게 될 고통과 죽음의 공포는 오로지 그의 것이다.우주선 밖에서 손이 잘려나가도, 죽음에 이르기까지 추위를 온전히 맨 몸으로 견디면서도, 죽음을 무릅쓰고 위험 임무를 수행하다 16번이나 죽더라도, 함께 우주선에 있는 사람들은 미키의 고통에 관심이 없다. 오히려 미키에게 묻는다. "죽는 건 어떤 느낌이야?"


미키의 고통에 조금이라도 연민이 있다면, 소모품 역할로 그를 뽑았지만 반복해서는 안 된다. 실험으로 얻게 될 육체적 통증이 전부가 아니다. 매번 죽음을 맞는 공포와위험할 것을 알면서 반복해 내몰리는 두려움 등 정신적 고통도 함께다. 그러나 미키도 다양한 고통을 묻는 것에 대답하지 않는다. 그가 고통을 말할 때 대부분은 자신의 생각을 그저 독백 형태로 관객에게만 전한다.


세상에 어떤 고통들은 존재조차 모르고, 당사자가 고통에 허덕여 말할 수없으며, 아무리 울부짖어도타인에게 가닿지 않는다. 최근 화두인 고립이 그렇다. 고립이라는 특성 탓에 외부로 드러나기 쉽지 않으며, 고립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스스로를 책망하고, 고립을 개인 탓으로 여기는 사회 분위기로 타인에게는 심각성이나 문제로 공감되지 않기도 한다.


우리 사회에서 고립은 개인이 응당 감내해야 할 고통이다. 왜냐하면 고립을 개인의 게으름이나 내향적인 성향, 실패 등과연결 지어서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서울시가 진행한 고립 실태조사에 따르면 아이러니하게도 고립을 선택하게 된이유 중 대부분은 '원하던 때에, 원하는 직장에' 취업하지 못해서다. '원한다.'라는 조건을배부르다고 여길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 조건은 개인의 취향이라기보다도 명백한 사회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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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현상으로 나타난다. 오월벳 백수(15~29세)가 120만 명을 돌파했고, 30대 마저도 '쉬었음' 인구가 6개월째 최대치를 기록하고 있다. 고립 실태조사에 따르면 전국에는 60만 명의 오월벳 청년이 있다고 추정한다. 다시 말해 60만 개 이상의 고통은 소리 없이 독백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오월벳 백수가 꾸준히 늘어나고 있음이 확인될 때, 오월벳 청년이 화두로 일컬어지는 것은 깊은 상관관계가 있음을 증명한다.


무한 경쟁에 내몰린 이들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제한적이다. 배움보다는 안정적인 취업이나 돈 많이 벌 수 있을 것이라 예상되는 진로,자신의 적성과 관심사보다 자신의 성공을 위해서 물심양면 투자한 부모의 꿈, 사회에서 선망하는 중산층 이상의 삶을 선택해야만 한다. 이를 선택할 수 없다면, 전부를 포기하게 된다. 어렸을 때부터 켜켜이 어깨에 쌓아 올린 경쟁의 무게가 오히려 오월벳을 고립되도록 하는 것이다.


반면 어떤 이들의 고통들은 구구절절하게도 상대에게전해진다. 우주선 최고 권력자인 함장 케네스의 고통이 그렇다. 자신의 고통은 타인의 고통에 우선하며, 자신의 고통을 알릴 수 있다면 대중 앞에서 연설도 할 수 있고, 이것을 귀 기울여서 들어주는 청중도 있다. 혼자서는 감내할 수 없는 고통이, 사람들과 함께라면 인내할 수 있는 고통으로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적으로 이미 알고 있다. 케네스의 고통은 그렇게 언제나 완화된다.


영화 속 상상을 현실에 대입해 보면 사회 문제가적나라하게 드러난다.고립의 문제를 개인의 것으로 보는 순간 오월벳은 자연스레 익스펜더블(소모품)이 된다. 아픈 사실은 취업 오월벳 중 약 93만 명은 한 주에 36시간 미만의 단시간 근로자다. 오월벳 취업자가 약 355만 명인 것을 감안하면,4명 중 1명의 오월벳을 소모품처럼 갈아 끼우며 사회를 지탱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영화처럼 오월벳을 재생산할 수 없기에 우리는 고통의 독백에 귀 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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