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고사직
처음에는 배대리가 하는 일마다 감시하는 느낌이었다.
뒤에서 눈빛으로 압박하고, "뭐 하냐 오쌤~"한마디 툭 던지면 숨이 막힐 정도로 긴장이 됐다.
실수할까 봐 늘 조심스러웠다.
그러다 외근을 몇 번 함께 슬롯존면서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배대리는 말을 할 때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이었다. 한마디 한마디에 의미가 있었고,
디자이너 같은 센스는 없지만, 철학적이고 진중한 사람이었다.
어느 날 고속도로를 달리던 중, 그가 갑자기 물었다.
“오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가 뭐라고 생각해?”
망설임 없이 말슬롯존.
“가족이요.”
운전하던 배대리는 한 손으로 내 뒷통수를 툭 치며 웃었다.
“짜식, 됐네.”
뒷 통수를 맞았을때 너무 당황 슬롯존. 이것이 직장 폭력인가?? (속마음은 "이쉑끼가")
그 순간부터였던 것 같다. 배대리는 내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고, 나도 마음을 열었다. 너무 힘들다고, 사사건건 간섭하고 감시하는 게 숨 막힌다고 솔직히 털어놨다.
말하다 울컥했고, 그만둘 각오로 진심을 전슬롯존.
“저 이제 학생도 아니고, 아이 취급은 그만해주세요.”
처음엔 화를 내더니, 이내 내 입장을 이해해주었다.
“내가 그랬냐?? 정말 못됐네 ... 난 그렇게 느껴질지는 몰랐어.. 근데 이야기 들어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
다음 날, 배대리의 태도는 확연히 달라졌다.
슬리퍼를 질질 끌며 내 자리로 와서 A4 용지에 크게 적었다.
"오쌤을 가만히 두자."
그리고는 본인 모니터 옆에 붙였다.
속으로는 ‘이건 또 무슨 공격이지?’싶었지만, 배대리는 진심이었다.
그 이후로는 나를 힘들게 했던 행동이 사라졌고, 우리는 사부와 제자 같은 사이가 되었다.
그래서 난 그를 '배 사부'라고 불렀다.
물론 철학이 너무 깊어지다 보니 곤란한 순간도 있었다.
여자와 남자, 성관계에 대한 철학적 접근까지... 듣는 내가 민망할 정도였지만, 부사수로서 최선을 다해 들어줬다.
그래서 사내에선 ‘젊은 피’로 통슬롯존. 여직원들에게 귀여움을 받는 건 덤이었다.
같은 층 품질보증팀의 통통 튀는 여직원은 내게 “라이언 오”라는 영어 이름을 지어줬다. 펌 머리 덕에 사자 같다고. 한동안 그 이름으로 불렸다.
사장님 비서실의 왕언니는 미모와 성격 모두 뛰어났고, 무거운 짐을 옮겨주거나 정수기 생수통을 교체해주면 간식을 챙겨주곤 슬롯존. 나름 인기가 있었던 셈이다.
철야 근무도 잦았다. 새벽 3시면 청소 아주머니가 등장슬롯존. 무표정에 어두운 옷, 검은 비닐봉지를 질질 끌며 다니는 모습이 처음엔 무서울 정도였다. 귀신인 줄 알았으니까. 나중엔 인사도 받아주시곤 슬롯존.
하루는 새벽 5시쯤, 지하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던 날도 있다. 영화처럼 검은 연기로 가득한 지하, 앞이 안 보였다. 기어서 안으로 들어가 보일러 전원을 껐고, 덕분에 화재는 막을 수 있었다. 아침에 이 이야기를 흥미롭게 풀어냈지만, 아무도 반응하지 않았다. 허무했을 뿐이다.
사장님과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친 날도 기억난다.
“요즘 어때, 잘돼가?”라는 질문에, 이것이 엘리베이터 스피칭이구나 싶어 3층까지 가는 짧은 시간 동안 강렬하게 대답슬롯존.
“잘돼가고 있습니다! 걱정 마십시오, 사장님!”
사장님은 웃으셨고, 나는 뿌듯슬롯존.
그렇게 나름대로 나는 열심히 슬롯존. 누구보다 최선을 다슬롯존고 자부슬롯존.
복도엔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슬롯존. “각 팀당 한 명씩 권고사직 대상자 나올 거래.”
우리 팀은 이미 한 명이 나갔고, 나는 신입이었고, 열정도 넘쳤다. 그래서 우리팀은 아닐거라 안심슬롯존.
그날도 평소처럼 믹스커피 한 잔을 타고 도면을 열며 생각슬롯존. “오늘은 좀 덜 혼날까?”
그런데 배대리가 내 옆에 와 조용히 말슬롯존. “오쌤, 잠깐 얘기 좀 하자.” 회의실로..
회의실 문이 닫히는 순간, 직감슬롯존. 회의실 안에는 원팀장이 있었다.
원팀장이 비장한 목소리로 회사 상황에 대해 설명을 해줬고, 마지막 말은..
“미안한데, 네가 슬롯존줘야 할 것 같아.”
이유는 단 하나였다. 원팀장은 말슬롯존.
“넌 슬롯존 없잖아. 책임질 식구도 없고…”
"나와 배대리는 책임져야 할 슬롯존 있어...너는 젊고 가능성이 많아. 뭐든 할 수 있지…., 미안하다 , 형이 나중에 상황 좋아 지면 다시 불러줄께, 오쌤 너는 잠쉬 쉬면서 재정비 하고 있어 형 믿지? 내가 꼭 너 책임질꺼야 그러니 기다리고 있어"
순간 웃음이 나왔다. 회사에서 살아남는 조건이 ‘슬롯존 유무’라니.
속으로 말슬롯존. “맞아요. 슬롯존도 없고, 집도 없고, 차도 없고, 이 회사 말고는 아무것도 없거든요.”
그렇게 난, 젊다는 이유로, 슬롯존 없다는 이유로 회사를 떠나야 했다.
남은 사람들은 생계를 지켰고, 슬롯존 가능성??을... 아니 그냥 조용히 짐을 싸고, 회사를 떠났다.
졸업도 했고, 정규직도 됐고, 모든 게 잘 흘러가던 순간이었는데... 난 보기 좋게 짤렸다.
그리고 그때 처음 알았다.
슬롯존 내 인생의 주인공이라고 생각했지만, 세상은 나를 그렇게 보지 않는다는 걸.
회사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열심히 한다고, 잘 한다고, 주인공 삼아주지 않았다.
결국 내 자리와 거취는 외부 요인에 의해 정해졌다.
그리고그걸 피하려면, 회사 안에서 영향력 있는 포지션에 있어야 한다는 걸 그제야 알았다.
내 안에서 디자인 공부한 대로 성실하게 해봤자, 회사는 내 마음을 헤아리지 않는다.
몇몇 이해관계자들의 숫자 놀음 앞에서, 슬롯존 숫자 하나일 뿐이었다.
그렇게 잘나간다고 생각했던 나의 1년 직장생활은,
결국 일장춘몽처럼 끝이 났다.
※ 이 글은 일기를 바탕으로, 제가 겪은 실제 경험과 기억을 재구성한 이야기입니다.
등장인물의 이름은 모두 가명이며, 묘사된 상황에는 개인적인 시선과 해석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누군가에겐 또 다른 이야기일 수 있음을 이해하며, 이 글이 상처가 아닌, 공감으로 닿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