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톡방은 며칠 동안 잠잠했다. 며칠 전 둘 다 케이슬롯가 보낸 유튜브 링크를 보긴 했지만, 굳이 반응을 하지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던 어느 저녁, 도현의 메시지가 떴다.
[도현]
“봤다. 유튜브ㅋㅋ 이제 케이슬롯 유튜버냐.
영상 괜찮던데? 밥이나 먹자. 내가 쏠게.”
잠시 뒤, 케이슬롯도 짧게 덧붙였다.
[케이슬롯]
“언제 시간 되냐?”
영수는 순간 휴대폰을 손에 쥔 채로 가만히 있었다. 그렇게도 바라던 반응이었다. 조회수보다, 구독자보다 더 중요한 확인.
[케이슬롯]
“나 이번 주 토요일 저녁 괜찮아. 너네는?”
토요일 저녁, 세 사람은 을지로 뒷골목에 있는 돼지고기집에서 마주 앉았다. 불판 위엔 삼겹살이 지글지글 익고 있었고, 맥주잔엔 차가운 김이 어렸다.
“야, 나 케이슬롯 너 유튜브 시작한 거 보고 깜짝 놀랐어.”
도현이 고기를 뒤집으며 말했다.
“예전에 그런 거 해보고 싶다고 한 건 기억나긴 하는데, 케이슬롯로 할 줄은 몰랐다.”
“나도 몰랐지.” 케이슬롯는 애써 웃어보인다. “그냥… 뭐라도 해야겠다 싶어서.”
“근데 생각보다 잘 만들었더라. 편집도 괜찮고, 목소리 톤도 좀 무서워.”
“무섭다고?”
“어. 어색한데 무섭긴 해. 그게 매력인 것 같기도 하고.”
도현은 맥주잔을 들며 말했다.
“근데 있잖아, 내가 좀 웃긴 거 하나 봤는데—”
그가 웃으며 말을 이었다.
“니가 올린 영상 중에 그거 있잖아.
그… 세 번째인가? 엘리베이터 안에서 소리 들렸다는 거.”
“응.”
“그거 케이슬롯 유명한 괴담 중 하나랑 거의 똑같더라고?
옛날에 ‘괴담공작소’인가 하는 데서 올렸던 거랑 내용이 쌍둥이야.”
케이슬롯의 젓가락이 잠시 멈췄다.
케이슬롯는 그 눈치를 살짝 느끼고 맥주잔을 조심스럽게 들었다.
“뭐, 괜히 하는 말은 아니고. 케이슬롯니까 그럴 수도 있고. 나도 예전에 그거 봤던 기억이 나서. 그냥 그렇다고.”
도현의 말은 가볍게 툭툭 던지는 듯했지만, 케이슬롯의 안에서는 무언가 점점 쌓이고 있었다.
“너 지금… 뭐가 하고 싶은 건데?”
케이슬롯가 조용히 물었다.
“응?”
“그 말 왜 한 거야? 그냥 그럴 수도 있다고 하면서, 굳이 그런 말을 왜 했냐고.”
“야, 왜 그래. 내가 뭐 틀린 말 했어? 그냥 비슷하다고 느꼈다니까.”
“그걸 네가 지금 말하는 방식이 문제라는 거야.”
“무슨 방식?”
“비꼬듯 말했잖아. ‘어색한데 무섭다’, ‘그거 똑같다’… 네 말 하나하나가 사람 뒤통수치는 말이란 거, 너만 모르고 있는 거야.”
도현이 표정을 굳혔다.
“야, 너 왜 이렇게 예민하냐? 그 정도로 욱할 거면 케이슬롯는 왜 해?”
“그럼 넌 왜 나한테 그런 식으로 말해? 네가 뭐라도 된 듯이, 항상 사람을 아래에서 보는 말투로.”
“하… 또 시작이네.”
도현이 한숨을 쉰다.
“너 케이슬롯 피해의식 너무 심한 거 알지? 사람들이 너 싫어하는 이유, 너만 몰라.”
그 말에 케이슬롯의 눈빛이 바뀌었다.
“그래. 나 싫어해도 돼. 근데 너처럼 그렇게, 애써 친한 척하면서 비아냥거리는 건 케이슬롯 비열하다고 생각 안 해?”
그 말에 잠깐의 침묵이 감돌았다. 케이슬롯가 조심스럽게 나섰다.
“야… 둘 다. 좀만 진정하자.”
하지만 분위기는 이미 돌아올 수 없을 만큼 틀어져 있었다.
가게를 나설 땐, 셋 모두 말이 없었다. 각자의 방향으로 흩어지려던 찰나, 희수가 케이슬롯와 같은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몇 걸음 뒤, 케이슬롯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까… 도현이 말한 거 있잖아.”
“…….”
“나도… 그 영상 처음 봤을 때, 조금 비슷한 내용이라고 느끼긴 했어.”
케이슬롯는 한참 말이 없다가, 갑자기 발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어두운 골목에서, 조용히 입을 열었다.
“…다 내가 쓴 거야.”
“……뭐?”
“그 이야기들. 사연 보낸 시청자… 없어. 다 내가 만들어낸 거야.”
케이슬롯는 그를 바라본다.
“……왜?”
“처음엔 그냥 장난이었어. 케이슬롯처럼 하면 재미있을 것 같았고, 조회수 올라가니까… 점점 내가 만든 게 케이슬롯 같아지더라.”
“…….”
“근데, 이제 그게 발목을 잡아. 댓글에 자꾸 조작이네 뭐네 말 나오니까. 열 받아서 공지 올렸어. 다음 주에 라이브 방송 한다고.”
“케이슬롯야…”
“나 혼자선 안 될 것 같아서. 그날… 나 좀 도와줄 수 있어?”
케이슬롯는 대답하지 않고 한동안 걷는다. 가로등 불빛 아래, 두 그림자가 길게 나란히 늘어진다.그리고 얼마쯤 지나, 케이슬롯가 작게 중얼거린다.
“…알았어. 도와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