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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필버거 Feb 25. 2025

대백 포커 만납시다

대백 남문에서 보자면 그만이었다. 누구도 대구백화점 남쪽 출입구를 뜻하는 거냐고 묻지 않았다. 시간도 대충 다섯 시쯤이라면 끝. 뭐 할 거냐고, 왜 모이냐고 묻는 친구는없었다. 삐삐도 휴대폰도 없던 시절. 혹여 한두 놈안 보이면 친구집으로 전화를 했다. 어무이, 저 누군데예, 누구 집에 있습니꺼? 없는데? 하면 남문 앞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다방에 들어가서 기다렸다. 커피를 마시고 담배를 피우며 당구 치까? 볼링? 막걸릿집 문 열었겠나, 두런두런 시끌시끌 낄낄대다 보면 오기로 한 애들이 다 모였다.


술값 내기 겐뻬이 당구 몇 판 치고 대백 남문 옆 막걸리 골목으로 우루루 달려갔다. 운동장 트랙처럼 굽은 좁은 골목포커 돌면 잔디밭주점이 있었나, 다시 왼쪽포커 기우뚱 돌면 학사주점이 있었던가. 상호가 중요한가, 어디 가나 정구지나 파 보다 허연 밀가루 면적이 넓은 찌짐과 주재료가 뭔지 잘 모르겠는 탕 안주 나오고 찌그러지고 칠 벗겨진 한 되짜리 양은 주전자에 막걸리 담아 내주는 건 똑같은데. 오뎅은 잘 보이지도 않고 빨간 고춧가루가 풀어지지 않은 채 둥둥 떠다니는 오뎅탕을 안주삼아 막걸리를 끝없이 마셔댔다. 다닥다닥 붙은 좌식 테이블 저 멀리서 젓가락 두드리며 노래 부르는 소리가 들리면 귀를 쫑긋. 아는 노래면 손뼉 치고 숟가락으로 탁자 모서리를 두들겨 가며 목청껏 따라 부르고, 누군지 모를 그가 노래를 너무 잘 부르면 막걸리 찰랑거리게 따른 잔 하나 들고 비틀대며 그쪽 테이블로 가서 한 잔 권하기도 했다. 노랫값이다. 그저 만나는 것만으로도 좋았던 고만고만한 청춘들의 대동단결.

포커

서른 무렵 코딱지만 한 사무실 겸 창고를 얻어 사업이란 걸 시작했다. 이런 걸 사업이라고 불러도 되는지 매일 고민하면서 출퇴근을 했다. 한 일 년 정도 요랑소리나게 쫓아다녔더니, 매출이란 것도 찔끔 생기고 직원도 뽑고 모임이라는 데도 한 개, 두 개 들어갔다. 다들 사업에는 인맥이 제일 중요하다고 했다.

어딜 가나 포털 같은 사람이 있다. 그 한 사람을 어렵게 통과하면 포털이 열리듯 새로운 세상으로 통하는 길을 열어 주는 사람. 놀 때도 마찬가지다. 어느 한 인간이 이세계(異世界)의 문을 활짝 열어준다. 스즈메의 문 같은 사람은 희귀하지만 존재한다.


산에 다니자고 했다. 등산 싫어한다고 도망 다니는 내게 그 모임엔 판검사, 변호사도 있고 큰 사업하는 사람들도 많다고 꼬셨다. 지점장들이 많다는 골프 모임에도 들어갔다. 옛날 영화배우 아들이 미국에서 겁나게 좋은 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귀국 파티를 하는데 내가 왜 갔을까. 모를 일이다. 깡패 같이 생긴 디자이너 아저씨 가라오케에도 놀러 다녔다. 왜 그랬을까. 그게 작디작은 내 사업하고 뭔 관련이 있다고. 그저 찾아주니 좋았던 거다. 이너써클에 속한 것 같은 느낌에 취했다. 우쭐한 마음에. 나는, 어렸고, 어리석었다.


전화는 시도 때도 없이 울렸다. 맛있는 밥 먹으러 가자고, 좋은 술 마시러 오라고, 주말엔 산으로 골프장으로 돌아다녔다. 보험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서로 돕고 사는 거라고들 했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도 했다. 그런 줄 알았다. 갸우뚱하면서도 믿었다. 믿고 싶었고 자기 합리화의 핑계였다.


어느 날, 누군가 강제로 불을 켰다. 조명이 환하게 켜지고서야 알았다. 나는 오랫동안 그림자 인형극 속에 있었다는 걸. 그렇게나 거대해 보이던 그림자는 단지 조명에 바짝 붙어있던 조무래기였고, 왕관과 날개의 실루엣이 화려했던 그림자의 본체는 아주 남루한 헝겊 인형이었다는 걸.

나도 마찬가지였다. 어깨에 뽕이 잔뜩 든 윗도리가벗겨지고 얼기설기 기워입은 바지까지 뺏기고 나니, 누추하긴 그들과 마찬가지였다. 실체를 드러내는 것도 잠시, 갑자기 헛간에 불을면 쥐떼들이 우당탕탕 우루루루 어두운 구석으로 숨어들듯 잠깐새 그들 모두 사라졌다. 벌거벗은 나만 남기고. 그들은 새로운 극장을 찾아 순식간에 떠나갔다.


사람 모을 방법을 생각했다. 오프라인장소부터만드는 리스크가 너무 컸다. 친구 넷이 시작한 대책회의의방송국 친구는 그사이 사장이 됐고공무원 친구는 간부가 됐다. 나는 뭐 그냥 코로나를 아틀라스처럼온몸포커받치느라 그 모양그 꼴이었고.끼리끼리 법칙에 기댔다. 소개를 통해 다단계처럼 확장을 해보기로 했다. 하나, 둘 합류하여 열한명까지 늘었다. 그런데 이상하다. 분명 참하고 좋은 사람들이 모였는데, 책에 집중하는 힘은약해졌다. 사교모임처럼 흐르는 건 아닐까, 자문했다. 이 방법은 장 속도도 느리고,유명하고 유능하며책도 많이 읽는 사람이 생각보다 적다는 한계가 보였다. 게다가나는 시간이라는 무기가 없다. 이래선 안 되겠다. 숙고에 들어갔다.


온라인 커뮤니티 플랫폼을 다시 생각했다. (네이버) 밴드는 내가 익숙한 곳이다. 백삼십 명이 넘는 회원의 음악 모임을 삼 년간 운영했던 플랫폼이다. 부수고 떠난 지 일 년 정도 됐을 때였다.


부작용도 잘 안다. 내가 음악 모임을 버린 이유 중 작은 부분이기도 했다. 꼴사나워서, 꼴비기 싫어서. 하지만 색안경 벗고 보면, 온라인 모임만의 문제는 아니다. 남녀가 모이는 모든 모임에는 사고의 소지가 있다. 그런 목적에 혈안이 된무리는 무슨 법칙처럼반드시존재하니까. 등산, 댄스, 노래, 볼링, 골프, 어디든 있다.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을 수는 없다.

명사 모임 같은 향은 자칫 내 젊은 날의 실수를 반복할 공산이 커 보였다. 껍데기에 취하는, 휘황하고 요란스럽기만 한. 내가 그거 다시 하자고 이러는 건 아닌데, 자각했다.


앞산길을 걷다가 대백 남문이 떠올랐다. 다섯 시에 남문 앞에 모인 친구들끼리너거아부지 머하시노를묻지 않았다. 성적컷을 하지도 않았다. 주머니 비었다고 집으로 돌려보내지도 않았다. 그저 사람이 좋아서 모이고 낙엽이 굴러도 웃고 들 수 있는, 같은 기억을 쌓은 친구들. 친구란 공유하는기억이 많은 사람들이라잖나.

내가 하고자 하는, 가고자 하는 길을 다시 상기했다. 책을 좋아하면 되는데. 직업을, 타이틀을, 유명도를 왜 떠올렸을까. 클럽장을 미리 양성하자는 마음이었다 하더라도, 순서를 바꾸고 방향을 틀어야 했다.


대백 포커 다섯 시에 만나기로 한 친구들을 기다리는 마음포커 '대책회의'밴드를 열었다.

2023년 2월 4일의 일이다.


그래도 내 꿈으로 가는 첫 여로다. 사람부터 모으기로 했으니 측정할 수 있는 적당한 목표는 있어야 했다.

6개월에 50명. 1년 내에 백 명.

오케이.

가 봅시다.


기한 내 목표 달성을 했을까?

헛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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