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팔을 벌리면 왼쪽 끝에서 오른쪽 끝까지 손이 닿을 크기의 통유리 안에서 얼마 남지 않은 하얀 머리카락을귀에 걸친 아저씨가웃고 있었다. 조금 구겨진 종이같달까,마취덜 풀린 얼굴로 웃는 것 같았다. POS 기계에 배가 닿을 듯 좁은 카운터에 서서 카지노 바카라 상호가 인쇄된 하얀 비닐봉지에 A4지보다 큰문제집을 넣고 있었다. 오후 다섯 시 반을 갓 넘긴시간에 벌써 어둑한 겨울 금요일저녁에 맞은 첫 손님일까. 뭐라고 말을 하는 입모양도 보였다. 오늘 처음 입을 뗀 건 아닐까.
스물 초반에 이사 간 신축 아파트 뒤편에는 남중, 남고가 같이 있는 학교가 있었다. 교문에서 백여 미터 걸어 나오면 이층짜리 상가주택 건물두 채가있었고, 일층에 문구점 겸 서점이 좁은 간격으로 하나씩 있었다. 그중 다섯 평쯤 되는 작은 서점에 가끔 갔었다. 베스트셀러 같은 일반 서적도 몇 종 있었고 볼펜이나 복사지 같은 게 필요할 때도 찾았다. 주인아저씨는 삼십 대 정도 돼 보이는 약간 작은 키의 말이 없는 사람이었다. 등하교 시간 외에 서점을 찾는 손님은 없었다. 아저씨는 하루 종일 좁은 가게에 앉아 신문을 보거나 먼지를 털고 책을 정리하고 밖에 나와 담배를 피웠다.
서른을 목전에 뒀을 때, 짧은 서울 생활을 끝내고 미국으로 떠나기 전 잠시 대구집에 와있었다. 슈퍼에 가다가, 통닭집에 맥주 마시러 가다가서점을 보았다. 아저씨는 처음 봤을 때보다는 조금 늙었지만, 아직 팽팽한 피부를 한 채 신문을 보고, 먼지를 털고, 책을 정리하고,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사십 중반에 그 아파트를 떠났다. 아이들이 단지 뒤 남중과 남고를 다녀서 멀리 가지는 못했다. 단골 슈퍼와 단골 카센터 가는 길에그쪽으로 눈을 돌리면 아저씨는 조금씩 주름이 늘고 머리털을 잃어가며 읽고 털고 정리하고 있었다. 아니, 멍하니 앉아 있는 모습을 더 많이 봤던가.
어제 이 글을 쓰려다가 그 서점이 아직 있는지 궁금했다. 금요일이긴 하지만, 학교는 방학 중이다. 이제 참고서, 문제집 외엔 취급하지 않는 곳이라 일찍 영업을 마쳤을 수도 있다. 아니면 폐업을 했는 지도 모르고. 퇴근 시간까지 좀 남았지만 급하게 차 시동을 걸었다.
차 한 대 지날 수 있는 서점 앞 작은 길로 우회전을 하는데 어두운 골목에 작은 서점만 불을 밝히고 있었다. 아저씨는 웃는 가면을 쓴 것 같은 표정의 늙은 얼굴로 책을 팔고 있었다. 샤프라도 한 개 살 요량이었는데 차를 세울 공간을 찾지 못했다. 아저씨가 그 자리에서 노인이 돼가는 동안 세 개의 동네 서점과 제법 큰 모닝 글로리 한 곳이 문을 닫았다. 서점과 문구점이 돼지 국밥집, 편의점, 빈 상가로 바뀌어도 아저씨는 서점을 지키고 있었다.
나는 아저씨가 가진 행복의 향방과 크기를 알지 못한다. 그 아저씨가 내 그것의 향방과 크기를 알 수 없듯. 그저 오래 봤을 뿐.
츠타야를 마음에 품은 채, 글로 읽었던 동네 책방과 독립 서점, 북카페를 찾아다녔다. 내 기억 속 동네 서점과 얼마나, 어떻게 바뀌었는지 궁금했다. 어떤 모습으로 진화했는지, 돈은 버는지, 유지는 되는지, 내 눈으로 어림해보고 싶었다. 서울, 대구, 청도, 경산, 경주, 꽤나 다녀 본 소회를 짧은 글과 사진으로 남겼다. 여러 곳을 보니 해상도는 낮지만 유사점과 차이점 같은 갈래와 흐름이 어렴풋 보이는 것 같았다.
책과 커피는 이제 한 몸이 됐다. 어디를 가도 커피를 팔지 않는 곳은 없었고 주 수입원이 커피 아닐까 싶은 곳도 있었다. 동네 사랑방을 지향한다는 점도 눈에 띄었다. 로컬 커뮤니티 비즈니스 느낌이 물씬. 책 매출이 주력인 데가있기는할까. 대략의 공통점이다.
작은 카지노 바카라을 하려면 주인이 유명해야 절대적으로 유리한 건명확하다. “일단 유명해져라, 그러면 사람들은 당신이 똥을 싸도 박수를 칠 것이다.”라는워홀의 말은 SNS를 타고 더욱 강력해졌다. 셀러브리티가 셀럽으로 다시 인플루언서가 됐지만 용어만 달라졌을 뿐, 척도는 얼마큼 유명한가 또는 아닌가이다. 나누면 유명인 서점과 무명인 서점두 갈래.
방송인 노홍철, 배우 박정민, 아나운서 김소영, 삼성 최초 여성임원이자 작가인 최인아. 모두 서점을 운영한다. 그들 서점에서 개최하는 북토크, 북클럽은 초청 인사들의 면면도 화려하다. 심하게 말하면 '끼리끼리' 네트워크가 형성 돼 있다는 느낌. 그들이 '조금만 더 힘내세요, 당신 잘하고 있어요, 꾸준히 노력하면 성공해요, 차별은 나빠요, 따뜻한 사회'를 얘기하면 쥐뿔도 없는 무명의 우리들은손뼉을치고 눈물을 훔치며지갑을 열고 제자리로 돌아간다. 내가 최재천 교수, 한강 작가와 연락이 닿을 확률과 노홍철의, 박정민의, 김소영의, 최인아의 확률을 생각하다가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내가 열심히 안 살아서, 못 살아서 그런 걸 뭐.
코로나 끝무렵, 네이버에서'랜선 매일 글쓰기' 모임을 우연히 발견하고 참여한 적이 있다. 두어 달 매일 세 줄씩 쓴 이 모임을 개최한 곳은, 하나도 안 유명한 일반인 사십 대 주부가 운영하는 대구 외곽의 작은 북카페였다. 그녀가 쓰다만 브런치 글 몇 개와 주워들은 말로 거칠게 유추한 내용은 이렇다. 무지(無知)의 용기를 밑천 삼아 무대책에 무작정을 더해 작은 북카페를 열고 고군분투 끝에 좀 무리해서 가게 한 번 확장하고 겨우 자리 잡았다는 작은 성공 스토리. 그러나 시간은 꽤 걸렸을 것이다. 글쓰기를 하며 흘깃 본 그녀의 삶은 인간극장 같았다. 매주 대여섯 개의 독서 모임(새벽 모임도 있다)을 거의 혼자서 진행하며 가게를 꾸려가고 있었다. 존경스러울 정도였다. 책 읽는 로봇도 저리는 못하지 싶었다.
무명인의 작은 책방과 북카페를 다니면 다닐수록, 아직은 팽팽한 그들의 얼굴이 맞이할 미래가 환하고 빛나겠다는 확신은 옅어졌다. 안분지족의 삶 정도로 읽으면 될까. '소소하고 확실하지 못한행복'이라 말하면 모욕일까. 그이들의 행복의 기준도 모르면서 이런 말을 해도 되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오래 살던 동네에서 더 오랫동안 작은 카지노 바카라을 운영하던, 한 자리에서 늙어버린 아저씨 모습을 대구, 청도, 경산, 경주에서 미리 보았던 건 아닐까. 스크루지의 여행처럼.
어쩌면 지금 내가 이 작은 공장에서 그리 늙어가고 있는 건 아닐까. 가슴 뛰는 내일에 대한 어떤 기대도 없이.
츠타야를카지노 바카라 형태의 잡화점으로 재정의 하니시작부터 반드시 규모가 커야한다는 부담은 벗었다.중요한 건 컨셉이니까.작은 가게부터 시작해서 성장하면 된다.
그렇다고, 작던 크던 매장부터 열고나서 알리고, 회원을 모으는 건 고단한 일이다.
나는, 몇 년씩 투자할 시간도 없다.
그렇다면,
사람부터 모으면 되지 않을까.
모이면, 재밌게 놀 거리는 생기겠지.
어떻게든 찾아내겠지.
우리 어릴 때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