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슬롯 죽는 데는 나흘이 걸린다.
그동안 슈퍼슬롯는 잠과 몽롱함 사이를 오간다.
빅토리아 베넷, <들플의 구원 390쪽, 웅진지식하우스, 2024
<들풀의 구원은 상실의 아픔을 식물을 키우면서 달래는 이야기다.원제는 All My Wild Mothers. 작가는 언니를 잃고 슈퍼슬롯를 잃는데, 그 와중에 어린 아들은 세심한 관리가 필요한 병인 당뇨에 걸린다. 먹고 노는 것이 전부인 유아기 사람에게, 케이크 한 입 주스 한 모금도 계산하고 먹어야만 하는삶이 시작된다. 작가의 마음과 아이의 마음, 둘 다 너무 내 마음에 걸려 나는 작가와 함께 절망했다.
"슈퍼슬롯 죽는 데는 나흘이 걸린다."
아이를 돌보고 슈퍼슬롯를 돌보고 한편 식물을 돌보는 작가. 작가의 슈퍼슬롯는 생의 마지막에 종양에 걸리는데, 마지막에 잠과 몽롱함 사이를 오가다가 세상을 떠난다. 나흘이었다. 작가는 그것을 "죽는 데 걸린 시간"이라고 말했다.
내 슈퍼슬롯 죽는 데 걸린 시간은 2주였다.
시작은 고관절 골절이었다. 한밤중 화장실을 가려고 일어난 슈퍼슬롯는, 어두운 복도를 걷다가 넘어지고 그 여파로 고관절이 골절되고 귀가 찢어졌다. 침대 바로 옆에 화장실이 있는데왜,어디에 있는 화장실을 찾아서 나간 건지 대체 그걸 모르겠다. 아마도 잠결에 뭔가 착각하고 병실을 나선 것이리라 짐작만 한다. 찢어진 귀는 꿰매면 되지만 부러진 고관절은 수술이 어려웠다. 기약 없는 와병 생활이 시작되었고 슈퍼슬롯는 급격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나는 몸과 마음이 함께라는 것을 제대로 실감했다.
며칠 후 슈퍼슬롯는 식사를 끊고 영양캔만 먹기 시작했다. 그리고 또 며칠 후 슈퍼슬롯는 영양캔도 끊고 물만 마시기 시작했다. 그러는 동시에 말수가 줄고, 사람을 못 알아보기 시작하고, 잠만 자기 시작하고, 숨이 얕아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혈압이 떨어졌다. 마지막 3-4일은 슈퍼슬롯도 잠과 몽롱함을 오가는 것 같았다.
차곡차곡 그러나 빠르게 죽음은 진행되었다.
가족들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어느 것 하나 진행되지 못했다. 우리는 속수무책이었다.
돌아가시기 전 날, 슈퍼슬롯와 단둘이 있을 시간이 잠깐 있었다. 살짝 모로 누워있는 슈퍼슬롯는 기력이 없어 말은커녕 눈도 뜨지 못했고 손짓으로 간단한 의사 표시만 가능했다. 나는 무슨 생각에서였는지, 슈퍼슬롯 귀에 대고 조그맣게 말해 보았다.
슈퍼슬롯, 보고 싶었어요.
나는 한 번 더 조그맣게 "슈퍼슬롯, 보고 싶었어요."라고 말했고, 슈퍼슬롯의 감은 눈에서는 눈물이 조금 고여 내렸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귀가 어마어마하게 어두운 슈퍼슬롯가, 그때 내 말을 들었을까.
병원에서는 이상하리 만치 우리 가족의 면회에 관대했다. 많은 수의 우리는 번갈아가면서 또는 동시에 여럿이서 병원에 드나들었다. 우리의 마지막을 위한 병원의 배려였는지, 아니면 그냥 많은 우연의 결과였는지.
<들풀의 구원에는 매 꼭지 이름 모를 들풀이 나오고 그 약용 효과에 대해 서술한다. 읽고 있으면 이 풀을 어디서 구해야 할 텐데, 그런 생각이 들어 인터넷에 자꾸 찾아보게 된다. 이 풀을 구해다가 차로 마시면, 달여 먹으면, 많은 통증과 고통이 사라질 것만 같다. 마치 마녀의 약초 사전을 보는 느낌이랄까. 현실의 많은 고통들을 달래 줄 들풀이 어딘가 있을 텐데, 그런 마음으로 작가는, 마법과 마술을 바라는 마음으로 정원을 가꾼 것 같다. 그게 현실과환상의어디쯤이라할지라도.허황된 바람일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