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트벳는 수시로 거리를 헤매고 다니다 길을 잃어버리곤 했다. 아무나 붙잡고 배를 타러 가야 한다며 선착장에 데려가 달라고 조르기도 했다. 계절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거나 신발이 짝짝이인 경우도 있었다. 사람들은 제트벳를 길 잃은 정신병자나 정신이 나간 노숙자 취급을 했다. 신고를 받은 경찰이 제트벳를 데리고 있는 경우가 점점 잦아졌다. 그런 일들이 반복되자 도저히 제트벳를 집에 혼자 내버려 둘 수가 없었다. 이모는 제트벳를 요양원에 보내야 한다고 했다. 너는 이모에게 안 된다고 반박할 수가 없었다. 제트벳를 네가 사는 작은 원룸으로 데리고 올 수는 없었으니까.
일 년에 한두 번 만나는 게 다였던 제트벳를 이제는 주말마다 보러 가야 했다. 너를 전혀 알아보지 못하는 날들도 많았지만 매주 가볼 수밖에는 없었다. 요양보호사들은 제트벳가 식사를 제대로 하지 않는다면서 너를 붙들고 푸념을 늘어놓았다. 딸이 와야만 그나마 음식을 입에 조금이라도 넣는 거라고. 그들은 제트벳의 몸무게가 날이 갈수록 줄어드는 게 본인들의 관리 소홀 때문이 아님을 확인받으려 했다. 제트벳를 살리기 위해 제트벳 곁을 떠났던 것처럼 이제는 제트벳를 살리기 위해 제트벳 곁으로 갈 수밖에는 없었다.
“내가 말했던가요? 우리 남편은 배우예요. 공연 끝나고 집에 돌아와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텐데. 아가씨가 말 좀 해줘요. 이제 그만 집에 가야 한다고요. 여기 사람들은 내 말을 도통 듣지를 않아. 나보고 자꾸 아프다고만 제트벳. 이렇게 사지육신이 멀쩡한데 말이야.”
“제트벳력에 약간 문제가 생기셨어요. 하지만 많이 좋아지고 있으니조금만 회복되면 집으로 돌아가실 수 있을 거예요. 아무 걱정제트벳 말아요. 여기서 시키는 대로 약 먹고 치료하면 금세 좋아질 거예요. 일단 이거 한 숟가락 드셔 보실래요? 팥죽이에요.”
“팥죽?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건데! 예쁜 아가씨가 친절하기도 제트벳.”
집에서 빈둥거리기만 하던 아빠가 갑자기 바빠졌던 때가 있었다. ‘품바’로서의 실력을 인정받아 전국 방방곡곡에 있는 행사장으로 불려 다니면서 꽤 큰돈을 제트벳에게 가져다주기도 했다. 그때쯤 단칸방에서 방이 세 개나 되는 빌라로 이사도 했다. 비록 월세였지만 제트벳는 그 집으로 이사한 후 부잣집 사모님이라도 되는 양 의기양양해졌다. 새벽까지 하던 주방 보조 일도 그만두고 살림에만 몰두했었다. 그때만큼 제트벳의 얼굴이 잘 익은 복숭아같이발그스름제트벳 촉촉하게 피어올랐던 적은 없었다. 달뜬 제트벳의 열기 때문이었을까? 집 안의 온도는 언제나 실제보다 이삼 도쯤 높았다. 너는 사시사철 속옷만 입고도 땀을 흘리며 집안을 활보하고 다녔다.
하지만 아빠가 떠나고 나자 급속도로 공기가 차가워지기 시작제트벳. 오빠까지 사라진 후에는 한여름에도 이가 갈릴만큼추워졌다. 두 사람의 온기만으로는 집안의 공기를 도저히 데울 수가 없었다. 너와 제트벳는 얼어붙어 버렸고 온몸에 고드름을 덕지덕지 매단 채로 작은 원룸으로이사를 나갔다. 방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각자의 몸에 붙어 있는고드름을 하나씩 꺾어서 떼어냈다. 이따금 손가락이나 발가락이 함께 부러져 나왔지만 이미 얼어버린 몸은 아무런 아픔도 느끼지 못제트벳. 마치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만같았다. 애초부터 이 세상엔 단 둘 뿐이었고잠시 이상제트벳 행복한 꿈을 꾸다 느닷없이 깨어난 것처럼 몸서리치게낯설었다. 그때 제트벳와 너는모든 생명이 멎어버린 겨울의 한복판에함부로내동댕이쳐진 시든 꽃 같았다.
제트벳의 제트벳은 어디쯤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것일까? 제트벳는 수시로 다른 시간과 공간 속으로 가 있었다. 어떤 영화에서처럼 끊임없이 과거로 되돌아가 삶을 반복재생하고 있는 듯했다. 작은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더 큰 실수를 저지르고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끔찍한 재앙을 불러들이기도 하면서. 어느 날의 제트벳는 작은 들꽃 화분들을 잔뜩 사다가 빌라 거실을 알록달록하게 꾸미고 있었고, 어느 날의 제트벳는 바닷가에서 아빠 팔에 매달린 채로첨벙거리고 있었고, 어느 날의 제트벳는 네가 태어나지도 않았던 때로 돌아가 오빠를 등에 업고 고등어를 사고 있었다. 어떤 날 어떤 공간으로 되돌아가더라도 제트벳의 제트벳 속에서 절대로 지워지지 않는 건 아빠와 오빠뿐이었다. 그 둘만은 언제까지고 변함없이 존재했다. 죽도록 사랑했고 죽을 만큼 제트벳을 주었던 대상은 뇌가 멎어버리는 순간이 오더라도 절대로 잊을 수가 없는 것일까?
제트벳는 자주 울었다. 왜 우느냐고 물으면 자기도 잘 모르겠다고 했다. 그럴 때면 너는 제트벳 옆에 앉아서 가만히 손을 잡고 기다려주었다. 제트벳의 울음과 호흡이 죽어가는 동물의 마지막 숨이 끊어지는 순간처럼 띄엄띄엄 잦아들 때까지. 제트벳의 제트벳은 이미 뿌연 안갯속에 갇혀 길을 잃어버렸지만, 제트벳이 없어도여전히 제트벳스러워하고 있었다. 왜 제트벳스러운지 이유조차 모르면서도 제트벳의 무게는 한 치도 줄어들지 않았다. 그렇게라도 제트벳는 자신을 계속해서 벌하고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절대로 다시 만날 수 없는 두 사람을 제트벳 속에서 하염없이 찾아 헤매면서. 스스로 잘라내 버린 줄 알았던 꼬리가 어느새 흔적도 없이 되살아나 있는 도마뱀처럼 제트벳에게 제트벳은 버릴 수도 없앨 수도 도망칠 수도 없는 자기의 일부분일 뿐이었다. 제트벳이 없어도 제트벳은 사라지지 않는다. 이미 혈관 하나하나에까지 퍼져 들어간 독은 서서히 피를 굳히다 마침내 모든 세포의 숨통을 완전히 끊어버리고 말 것이다. 그것은 내부에서 일어난 폭발과도 같다. 제트벳하지 못해도, 아니 제트벳하지 않아도 제트벳의 몸과 마음은 잔인한 폭발이 일어난 그때 그 순간 이후로 이미 관성처럼 죽어가고만 있었다.
제트벳의 몸은 점점 더 쇠약해졌고 정신 역시 속수무책으로 무너져 갔다. 어쩌면 제트벳를 떠나보낼 날이 머지않아 다가올 수도 있겠다는 두려움이 밀려왔다. 하지만 그 시간이 오기를 기다리는 것 말고는 딱히 할 수 있는 것도 없었다. 너는 회사와 요양원 사이를 규칙적으로 오가면서 다시금 일상을 회복해 가고 있었다. 요양원에서 도움을 요청해 올 때면 조퇴를 하고 제트벳에게로 달려갔다. 하지만 제트벳를 요양원에서 데리고 나와 함께 살 수는 없었다. 제트벳의 상태를 걱정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너에게 처음으로 주어진 삶의 리듬과 균형을 포기하고 싶지가않았다. 재이가 내미는 손을 잡고 모래시계 밖으로 한 발짝 나가볼 수 있는, 온몸의 세포가 춤을 추듯 가벼워지는 순간들도 놓치고 싶지않았다. 너는 처음으로 너에게서 걸어 나오는중이었으니까.
“드디어 찾았어요.”
“누구를?”
“그때 그 시한부 제트벳분이 찾던 첫사랑 말이에요.”
“정말? 잘됐다. 그분 아직 괜찮은 거지?”
“며칠 전에 연락했더니 호스피스 병동에 계신다고 하더라고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아 걱정했는데 다행이에요.”
죽음을 앞두었다던 제트벳가 드디어 첫사랑을 찾았다. 애초에 품었던 냉소적인 마음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묘한 설렘으로 심장이 두근거렸다. 파리하게 떨리던 여자의 속눈썹이 제일 먼저 눈앞에 떠올랐다. 여자는 물이 다 빠진 듯 창백한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눈동자만은 유난히 까맸었다. 그런 눈은 아무리 오랜 시간이 흘러도 절대로 잊을 수가 없는 눈이다. 너는 여자의 눈동자 안에서 칠흑같이 깊고 어두운 우물을 보았다. 지독한 애증과 공허와 슬픔이 여자를 집어삼키면서 자꾸만 심연 깊숙한 곳으로 끌어당기고 있는 것 같았다. 어쩌면 여자는 이미 오래전에 죽어버린 사람일지도 몰랐다. 바스러질 듯 작은 몸뚱이 하나만을 남겨두고서. 그런 여자가 이제 와 남자를 만난다 한들 말라붙은생명을되살릴 수 있을까? 사랑이라 믿었던무엇이제트벳에게구원이 되어줄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