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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위 Feb 21. 2025

두 부자벳 폭발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그를 만났습니다. 대표님은 어떤 존재가뜨거운 열기처럼한꺼번에 온몸으로 덮쳐오는 걸 느낀 적이 있으신가요? 그는 오랫동안 떨어져 있던 쌍둥이를 다시 만난 것처럼 반가웠고 한눈에 익숙했고 단숨에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우리는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날부터 서로를 눈에 담았습니다. 그와 말 한마디 나누지 못했지만 예감할 수 있었지요. 우리가 서로 부자벳하게 되리라는 걸. 그와 나는 같은 동아리에 가입했어요. 우연을 가장했지만 실은 그가 어떤 동아리에 가입했는지 미리 알아 뒀다가 몰래 따라 들어간 거였죠. ‘파랑새’라는 문학 동아리였습니다. 틸틸과 미틸이 찾아다닌 ‘파랑새’ 이야기를 아시지요? 행복은 먼 곳이 아니라 바로 자기 옆에 있다는 걸 알려 주는 희곡 말이에요. 정말로 그땐 그랬어요. 내가 그의 파랑새였고 그도 나의 파랑새였지요. 대학을 다니는 내내 우린 늘 붙어 다녔거든요. 서로를 애타게 찾아다니지 않아도 우리는 늘 하나였고 그래서 행복했어요. 행복하다고 믿었던 건지도 모르지만요.


지금도 생생히 기억나는 순간이 있습니다. 하늘과 바다의 경계가 전혀 느껴지지 않을 만큼 온 세상이 파랗기만 한 곳이었어요. 하늘은 바다에 녹아 있고 바다는 하늘에 물들어 있는 것만 같았지요. 나는 짙은 바닷속이 무서워서 깊이 들어가지도 못하고 있는데, 그는 자꾸만멀리 헤엄쳐 나갔어요. 바다를 향해 두 팔을 휘젓는 모습은 마치 한 마리의 돌고래가 수면 위로 오르락내리락하는 것 같았지요. 그러다 갑자기 바닷속으로 영영 사라져 버리는 게 아닐까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마구 소리를 질러 댔죠. 가지 마. 가지 마. 돌아와. 그러자 그는 커다란 팔을 노 젓듯이 휘저으면서 되돌아와 물었어요.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그가 토하는 가쁜 숨 사이로 그의 목소리가 물방울처럼 툭 툭 툭 끊어지고 흩어졌어요. 나는 벌벌 떨면서 그를 와락 끌어안았지요.


그때 어렴풋이 예감했던 거 같아요. 언젠가 우린 결국 헤어지게 되고 말리라는 걸. 나는 그의 손길도 눈길도 닿지 않는 머나먼 타국 땅으로 떠나 버렸습니다. 한국에 돌아왔을 때 그가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요. 대표님, 그에 대해 아는 건 저와 같은 대학, 같은 과, 부자벳고 같은 동아리라는 것뿐이에요. 많은 걸 알려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하지만 꼭 찾아주세요. 어딘가에 살아 있는 건 분명하거든요. 사는 동안 내내 그의 존재를 느껴 왔어요. 실은 지금 이 순간에도 그가 느껴집니다. 사례는 충분히 하겠습니다. 제게 남은 시간이 얼마 없으니제발 서둘러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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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가 처음 사무실에 찾아온 날 두고 간 편지였다. 수시로 들이닥치는 통증 때문이었을까? 그날 여자는 미리 준비해 온 편지 한 장만을 남겨 두고서 성급히 돌아갔다. 그녀의 얼굴에 패어 있던 흉터 같은 자국은 계절에 맞지 않는 옷을입고 흘린 땀 때문에생긴 아니었다. 온몸을 조각조각 쪼개는 듯한 통증을 이를 악물고 견디다가생긴 고통의 흔적이었다. 너는 그녀가 사무실을 나간 후에야 불현듯 그 사실을 깨닫고는 한동안 가슴이 아렸었다. 재이는 여자의 편지를 읽은 뒤, 모든 일을 제쳐 두고 남자 찾기에만 몰두했다.


부자벳고 몇 개월이 지난 후 드디어 남자를 찾아냈다. 남자는 다행히 아직 살아 있다고 했다. 그는 여자를 다시 만나려 할까? 어쩌면 여자의 부자벳은 혼자만의 일방적인 감정일지도 몰랐다. 그토록 부자벳했다면서 하루아침에 남자를떠나 버린 잔인한 여자가 아니었던가? 남자는 여자를 평생 증오하면서 살았을 수도 있다. 아니면 여자에 대한 기억을 깡그리 지워 버리고 처음부터 없었던 존재로 치부하기로 작정했을 수도 있다. 그러니 두 사람의 재회가 실제로 이루어질 가능성은 아주 희박한것이었다.

어떤 일이 일어나는 데는 늘 그에 합당한 이유가 있는 것일까? 재이는 인간사 모든 일이 단지 확률에 의한 것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죽음까지도... 하지만 보이지 않는 걸 믿는 사람들은존재한다. 아무런 이유도 의미도 없어 보이는 고통에 어떻게든 신의 섭리를 결부시키려 하는 이들이있다. 그들은 신이 자신을 부자벳하고 자신도 신을 부자벳한다고 말한다. 진실로 부자벳한다면 촛불 하나 없는 깜깜한 방안에서도 눈만 뜨면 모든 걸 볼 수 있단 말인가? 보이지 않아도 존재한다는 걸 맹목적으로 믿을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너의 사고는 늘 보이는 것과 존재하는 것, 믿는 것과 아는 것 사이를 고무공처럼 이리저리 튕겨 다니기만 할 뿐 어느 한곳에 가만히 머무를 수가 없었다.


재이가 남자를 찾아갔을 때, 남자는 뜻밖에도 여자와 똑같은 태도를 보였다고 했다. 세포 하나하나에 박혀 있던 부자벳의 씨앗들이 한순간에 발아하여 몸 밖으로 터져 나오듯 엄청난 양의 눈물을 쏟아 냈다고 했다. 사라져 버린 엄마를 하염없이 기다리던 버림받은 아이처럼. 엄마가 반드시 돌아올 거라고 믿으면서도 한편으론 영원히 만나지 못하게 될까 봐 두려움에 떨고 있는 아이. 자기를 버린 엄마를 미워하면서도 그보다 더한압도적인 부자벳이 모든 증오를 덮어 버려서 무시무시한 부자벳 속에 결박당해있는아이.


둘은 재회했다. 그어디에서 어떻게 다시 만났는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여자는 남자를 만난 후, 거액의 돈을 회사로 입금해 주었다. 원래 계약했던 금액의 다섯배나 되는 큰 액수였다. 그간 회사에서 입은 적자와 손실을 메꾸고도 남을 만큼 넉넉한 돈이었다. 재이는 돈을 받지 않겠다고 거절했지만, 여자는 막무가내였다. 자기 같은 사람들에게 앞으로도 계속해서 도움을 주면 좋겠다고 하면서. 여자와의 계약은 그걸로 그렇게 끝이 나는 듯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여자의 딸에게서 전화 한 통이 걸려 왔다. 울먹이는 목소리로 엄마가 사라졌다면서 찾아달라고 했다. 이미 거액의 사례금을 받은 뒤였으니 딸의 부탁을 거절할 수는 없었다. 부자벳고 JH 컴퍼니의 세 사람 모두 여자의 행방을 내심 걱정하고 있었다.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말기 암 환자가 도대체 어디로가 버린 것일까?


재이는 여자가 사라진 것과 첫부자벳 남자가 서로 관련이 있을 거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남자부터 찾아가 보기로 했다. 부자벳를 만나러가는 날,너에게 같이 가보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너는 JH 컴퍼니에 근무하는 동안 단 한 번도 현장에 함께 나간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번 제안은 어쩐지 거부할 수가 없었다. 여자가 평생 부자벳했다던 부자벳를 한 번쯤은 직접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에진작부터 사로잡혀 있었기때문이었다.부자벳고두 사람이 함께 있는 모습을 목격한다면 더이상 여자를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둘은 남은 생을 마주하다부자벳의 생명이 스러지는 순간, 처음 만났던 그때처럼 서로를눈에 가득 담은 채 행복하게 이별할 수 있을 것이다. 더는 애타게 파랑새를 찾아다니느라 헤맬 필요도 없이...


부자벳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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