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물’의 시간과‘화산’의 시간
통속적인 시간 개념과 베르그손의 시간 개념은 아주 다릅니다.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일까요? 통속적 시간 개념은 시간을 ‘원벳원 1BET1→현재→원벳원 1BET1’라는 한 방향의 흐름으로 보죠. 하지만 베르그손은 시간을 ‘원벳원 1BET1←현재→원벳원 1BET1’라는 양방향의 흐름으로 봐요. 베르그손의 이야기를 들어 봅시다.
지속은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가?그것은 내가 현재 순간을 생각할 때 이상적으로 규정하는 수학적 점의 이쪽에 있는가?저쪽에 있는가?그것은 동시에 이쪽저쪽 모두에 있으며,내가“나의 현재”라 부르는 것은 동시에 나의 원벳원 1BET1와 원벳원 1BET1를 침범하고 있다는 것은 너무나 명백하다.『물질과 기억』앙리 베르그손
현재라는 것은 수학적인 점을 기준 삼아 이쪽(원벳원 1BET1)이나 저쪽(원벳원 1BET1)에 있다고 말할 수 없어요. 그것은 이쪽(원벳원 1BET1)과 저쪽(원벳원 1BET1)에 동시에 존재하고 있는 거죠. 왜냐하면 ‘지속’(시간)이라는 것은 ‘원벳원 1BET1→현재→원벳원 1BET1’로 나아가는 한 방향의 흐름이 아니라, 현재를 중심으로 원벳원 1BET1와 원벳원 1BET1, 두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기 때문이죠. 즉, “나의 현재”라는 것은 “동시에 나의 원벳원 1BET1와 원벳원 1BET1를 침범하고” 있는 상태인 거죠.
비유하자면, 통속적인 시간 개념은 ‘강물’이고, 베르그손의 시간 개념은 ‘화산’(분출)인 거죠. 흔히 시간을 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강물’처럼 생각하지만, 실제로 시간(지속)은 ‘화산’처럼, 그 중심부(현재)에서 분출된 용암이 양방향으로 뻗어나가는 형상과 더 유사할 겁니다.
원벳원 1BET1가 있기 때문에 현재가 있다고 믿지만 이는 대표적인 삶의 오해죠. 삶의 진실은 뭔가요? 원벳원 1BET1가 우리의 현재를 결정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현재가 우리의 원벳원 1BET1를 결정하기도 한다는 거죠. 원벳원 1BET1에 가난했기 때문에 지금 가난한 것인가요? 그렇지 않죠. 지금 가난하기 때문에 원벳원 1BET1가 가난한 채로 남아있는 것이기도 하잖아요. 지금 돈을 벌어서 더 이상 가난하지 않다면, 원벳원 1BET1는 점점 더 가난하지 않은 원벳원 1BET1로 변해갈 테니까요.
불행도 그런 것 아닌가요? 원벳원 1BET1에 불행했기 때문에 지금 불행한 것인가요? 그렇지 않죠. 지금 애를 써서 행복을 찾으면 그 순간부터 행복한 원벳원 1BET1를 쌓여 갈 테고, 그런 순간들이 충분히 쌓이면 원벳원 1BET1의 불행은 작고 귀여운 에피소드처럼 기억될 수도 있잖아요. 이처럼, 원벳원 1BET1가 현재를 구성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현재가 원벳원 1BET1를 구성하기도 하죠. 베르그손의 이야기를 조금 더 들어 봅시다.
‘현재’는‘원벳원 1BET1’와‘미래’로 침투한다.
우선 나의 원벳원 1BET1를 침범한다는 것은“내가 말하는 순간은 이미 나로부터 멀어지고 있기”때문이다.또 나의 원벳원 1BET1를 침범한다는 것은 그 순간이 기울어진 곳이 원벳원 1BET1이고,내가 향하고 있는 곳이 원벳원 1BET1이다.그 어느 쪽으로도 나눌 수 없는 현재,그 시간 곡선의 미분적(infinitesimal)요소를 고정할 수 있다면 그것이 보여줄 방향도 원벳원 1BET1이기 때문이다.『물질과 기억』앙리 베르그손
현재가 뭐예요? 현재 내가 무슨 일을 한다면, 그건 바로 원벳원 1BET1가 되잖아요. 지금 공부를 했다면, 그 일이 내 원벳원 1BET1로 침범해 들어가는 거잖아요. 즉, ‘공부했던 나’가 되잖아요. 상황은 여기서 끝나지 않죠. 지금 공부를 하면 그 순간 그 일은 나의 원벳원 1BET1를 침범하게 되죠. ‘성적이 오를 나’가 되는 거죠. 오늘 공부한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는 내일 시험 점수에 영향을 미치게(기울어지게) 되잖아요. 공부하는 순간 ‘성적이 오를 나’ 쪽으로 기울여지게 되죠. 그것이 “내가 향하고 있는 곳”, 원벳원 1BET1인 거죠.
지금 우리는 베르그손 철학을 배우고 있잖아요. 이 철학을 배우기 전과 배운 후의 삶의 방향성은 달라져요. 어떤 사람은 크게, 어떤 사람은 작게, 정도의 차는 있지만 변화(기울기)가 반드시 발생하게 돼요. 베르그손이 왜 여기서 왜 ‘미분’이란 표현을 썼는지도 알 수 있죠. ‘미분’의 기하학적 의미가 무엇인가요? ‘기울기’잖아요. 미분의 기하학적 의미는 ‘기울기’예요. y=x²를 미분하면, y=2x가 되잖아요. 이는 x=1,2,3…일 때, 원함수의 순간 변화율(기울기)이 각각 2,4,6…가 된다는 의미죠.
‘기울기’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방향성을 결정하는 거예요. 지금 철학을 공부하면, ‘철학을 공부했구나’라는 직접적 원벳원 1BET1가 발생하고, 동시에 직접적 원벳원 1BET1를 다른 방향, 즉 철학적 삶으로 기울어지게 하는 거예요. 그걸 수학적으로 표현하면 삶을 미분했다고 할 수 있죠. 미분하면 방향성이 나와요. 그 방향성에 따라 우리의 원벳원 1BET1가 특정한 방향으로 기울어지게 된다는 거예요.
지금 우리가 어떤 일을 하잖아요? 그러면 그 행동이 원벳원 1BET1를 침범하는 동시에 그 순간 우리의 앞으로의 삶에서 미분값(기울기)을 변화시키는 거예요. 내 삶의 방향을 변화시키는 거예요. 얼마 만큼의 기울기인지는 모르겠지만, 반드시 기울어지게 만드는 거예요. 즉, 행동하는 순간, 그 행동의 강도만큼 원벳원 1BET1의 변화가 시작되는 거죠.
현재는 임박한 행동이다.
내가 나의 현재라 부르는 것은 직접적 원벳원 1BET1에 대한 나의 태도이며,임박한 나의 행동이다.따라서 나의 현재는 분명 감각-운동적이다.『물질과 기억』앙리 베르그손
현재가 뭐겠어요? “직접적 원벳원 1BET1에 대한 나의 태도”죠. 즉, 앞으로 내 삶의 기울기를 만들어낼 순간인 거죠. 그래서 베르그손은 “나의 현재라 부르는 것은 임박한 나의 행동”이라는 거예요. 시험이 한 달 남으면 곧 공부할 태도가 갖춰지지 않죠. ‘공부해야 하는데’ 생각만 할 뿐 계속 놀잖아요. 하지만 시험이 하루 남으면 어때요? 곧 공부할 태도가 갖춰지잖아요. 즉, “임박한 나의 행동”이 생기는 거잖아요. 그것이 바로 ‘현재’라는 거예요.
당장 눈앞에 있는 “직접적 원벳원 1BET1(시험)에 대한 나의 태도”가 곧 나의 ‘현재’인 거예요. 그래서 “나의 현재는 감각-운동적”인 거예요. (시험에) “임박한 나의 행동”은 반드시 ‘감각(집중)’과 ‘운동(학습)’으로 드러나게 마련이니까요. 그래서 현재가 삶의 방향성을 바꿀 기울기를 만드는 거예요. ‘감각’과 ‘운동’으로 드러날 “임박한 나의 행동”은 반드시 가까운 원벳원 1BET1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으니까요.
‘나 지금 뭐하며 살고 있나?’ 종종 이런 질문 하는 이들이 있죠. 이는 자신의 현재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는 거잖아요. 사실 이는 물을 필요도 없는 질문이에요. “임박한 나의 행동”, 즉, 곧 무엇인가를 하기 위한 나의 태도가 곧 자신의 현재일 뿐이에요. 자신이 지금 뭘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는 건, 지금 임박한 행동이 없다는 직감인 거죠. 항상 먼 원벳원 1BET1에 매여 혹은 항상 먼 원벳원 1BET1를 상상하며 “임박한 행동”이 없는 이들은 어떠한 현재도 살지 않는 이들이라고 말할 수 있는 셈이죠. 현재를 산다는 건, “감각-운동적”인 “임박한 행동”을 속에서 산다는 것을 의미하는 거예요.
매 순간은 원벳원 1BET1 미래를 동시에 바꿀 기회다.
그러므로 내가“나의 현재”라고 부르는 심리적 상태는 직접적 원벳원 1BET1의 지각이자 동시에 직접적 원벳원 1BET1의 결정이다.『물질과 기억』앙리 베르그손
이제 베르그손의 이 말을 이해할 수 있죠. “나의 현재라고 부르는 심리적 상태는 직접적 원벳원 1BET1의 지각이자 동시에 직접적 원벳원 1BET1의 결정”이에요. 말하자면, 매 순간(현재)은 원벳원 1BET1와 원벳원 1BET1를 동시에 바꿀 수 있는 기회인 거죠. 지금 당장 일어나서 운동하러 가는 건, 단지 현재의 일이기만 한 걸까요? 그렇지 않죠. 이는 원벳원 1BET1로 침투해 게을렀던 원벳원 1BET1를 바꾸는 일이고, 원벳원 1BET1로 침투해 우울할 원벳원 1BET1를 바꾸는 일이죠. 운동하는 하루하루가 쌓이면, ‘게을렀던 나’에서 ‘성실했던 나’로 원벳원 1BET1가 바뀌고, ‘우울할 나’에서 ‘유쾌할 나’로 원벳원 1BET1가 바뀌게 되는 것이죠.
원벳원 1BET1는 단지 지난 일이고, 원벳원 1BET1는 아직 도래하지 않은 일인가요? 바보 같은 소리예요. 지금 분출되고 있는 현재 안에 원벳원 1BET1와 원벳원 1BET1가 모두 있어요. 지금 우리가 어떤 삶을 사느냐에 따라 원벳원 1BET1도 달라지고, 원벳원 1BET1도 달라지는 거예요. 흔히 “현재에 집중하라”고 말하죠. 이 말에서 우리는 약간의 무력감을 느끼곤 하잖아요. 이는 원벳원 1BET1와 원벳원 1BET1는 어찌할 수 없으니, 현재라도 집중해 보자는 뉘앙스를 품고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죠.
“현재에 집중하라” 이 말은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더 활력성을 품고 있어요. 현재를 어떻게 구성하느냐에 따라, 원벳원 1BET1와 원벳원 1BET1 모두가 바뀌게 되는 것이니까요. 우리의 임박한 행동이 무엇이냐에 따라 삶은 원벳원 1BET1도 원벳원 1BET1도 모두 바뀌게 되는 거예요. 이 삶의 진실을 잊어서는 안 돼요. ‘우리에게 임박한 행동이 무엇이냐?’ 이는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되는 삶의 질문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