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성상민 Mar 08. 2025

노경무, <안 할 이유 없는 업카지노 단평.

‘남성 업카지노’이라는 상상력으로 업카지노의 무게를 유쾌하게 짚기

업카지노


메가박스 성수에서 열린 KAFA 졸업영화제에서 작품을 봤습니다. 작품 자체는 이미 나온지 꽤 된 상황이죠. 2023년부터 영화제를 돌던 작품이니까요. 시놉시스와 스틸컷, 예고편만 보고도 참으로 작품이 궁금했었는데, 변명 같지만 이래저래 작품을 볼 일정을 맞추는 것이 참 쉽지 않았습니다. 결국 이번 졸업영화제에서야 작품을 보게 되었네요. 실은 바로 전날인 3월 7일에 KBS <독립영화관에서 작품을 틀었는데, 어떻게든 영화관에서 보고 싶어서 궁금한 마음을 참고 오늘에서야 보게 되었습니다.


<안 할 이유 없는 업카지노은 간단하게 말해서 ‘남성 업카지노’이 가능하게 된 세계를 상상하면서 그린 애니메이션입니다. ‘정유정’(정유정)과 ‘최정환’(엄상현)은 젊은 부부입니다. 어떻게든 아이를 낳고 싶어 유정은 시험관 시술을 무려 열 번이나 받았지만, 좀처럼 업카지노에 성공하지 못합니다. 그러던 와중 TV에서 산부인과의 권위자 ‘김삼신’(이용녀) 교수가 세계 최초로 남성의 복막에 수정란이 착상될 수 있게 하는 시술, 다시 말해 ‘남성 업카지노’을 가능하게 만들었다는 뉴스를 보게 되고, 부부는 남성 업카지노에 한 줄기 희망을 걸게 됩니다. 그러면서 벌어지는 좌충우돌을 다루고 있어요.


‘남성 업카지노’이라는 소재 자체는 자주는 아니어도 꽤 종종 쓰엿던 소재입니다. 가장 한국에서 잘 알려진 작품이라면 아놀드 슈워제네거가 나왔던 <주니어(1994)가 있겠고, 최근에도 동명의 만화를 원작으로 하여 일본에서 제작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히야마 켄타로의 업카지노(2022)이 있었죠. 상당히 마이너한 소재긴 하지만, BL 장르의 만화나 소설에서도 이따금 게이 커플의 ‘사랑의 결실’을 낳기 위한 연출로서 이러한 설정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각 작품마다 ‘남성 업카지노’이라는 소재가 조금씩 쓰이는 경로는 다르기는 하지만, 같은 점이 하나 있다면 ‘업카지노은 여성에게만 가능한 것’이라는 여전히 거스르기 어려운 생물학적 조건을 뒤집는 상상력으로서 소재가 작동하다는 점일 겁니다. 업카지노은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중요한 과정이지만, 동시에 여성에게 있어서는 신체적으로는 물론 심리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결코 쉽게 감당하기 어려운 무게를 지니고 있으니까요.


작중에서 유정과 정환 부부도 사정은 마찬가지입니다. 유정은 수 차례나 시험관 시술을 받을 정도로 아이를 가지고 싶지만, 동시에 업카지노이 자신에게 미치는 영향의 무게를 마냥 무시할 수 이는 것은 아닙니다. 정환이 아무리 유정을 상냥한 말로 위로한다고 하더라도 정환이 이 무게를 나눠 받을 수는 없죠. 오히려 남성 업카지노이 가능하다는 사실이 알려지고, 유정의 제의로 정환이 업카지노을 해야 할 순간이 찾아오자 정환이 보이는 태도는 ‘실제로 받을 수 없는 고통을 정말로 받는 것이 가능한 순간’이 오면 어떠한 입장이나 위치의 변화나 역전이 생겨날지를 보여주는 유쾌할 정도로 얼얼한 상상력이 발휘되는 순간입니다.


업카지노


아무리 아이를 원해도 업카지노을 하지 못했던 유정 대신 정환이 대신 아이를 낳을 수 있다는 것에 정환은 짐짓 정말 ‘대신할 수 있는 것’처럼 행동을 하지만, 점차 예정된 시술 시간이 다가오면서 정환의 태도는 점차 바뀝니다. 이전에 임상시험으로 남성 업카지노 시술을 받았던 남성들이 겪은 온갖 괴롭고 힘들고 어려운 경험담에 과연 자신이 업카지노을 하는 것이 맞는가 두려워지고, 가부장의 권위를 빌려서 이를 막고 싶어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죠. 노경무는 이 과정을 유머러스하게 그리면서도, 결국 이러한 감정의 변화와 좌충우돌을 통해서 ‘업카지노’을 그저 숭고한 의식으로 보는 것으로는 업카지노이라는 현상을 놓고 벌어지는 복잡한 상황을 제대로 볼 수 없음을 넌지시 말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어떤 점에서는 남성이 직접 업카지노을 해야 하는 상황을 작품을 통해 대리적으로 재현함으로서, ‘업카지노’의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으며, ‘국가 존속’ 같은 거대한 단어로서 쉽게 이 무게감을 지울 수 있는 것이 아님을 더욱 강조하는 것입니다.


꽤 골똘히 들여다 봐야 할 주제이지만, 노경무는 동시에 그저 무겁게만 이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은 아닙니다. 유정과 정환 사이의 대화를 비롯해 작중 발화의 전반적인 톤이 마치 시트콤을 연상하듯 대화의 리듬이 통통 튀는 것처럼 적게는 부부 구성원 모두가, 크게는 사회 전반이 상시적으로 업카지노과 출산을 생각할 필요가 있음을 연출자는 말하고 싶어하는 듯 합니다. 동시에 등장인물의 외형을 묘사함에 있어서도 다양한 톤으로 피부의 색을 묘사하며 다채로운 색채의 리듬을 주면서, 업카지노과 출산의 문제를 좁은 시선으로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더 넓은 사고로서 받아들일 필요성을 은연 중에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러한 연출은 조금만 삐끗해도 무거워지기 좋은 이야기를 대화의 감각이 좋은 블랙 코미디와 곁들여 내 작품이 내거는 소재에 대해 좀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만들어 내었습니다.


여러모로 서사와 극 중 인물들의 발화, 이를 조형과 이미지로 드러내는 방법들이 경쾌한 밸런스를 이루면서, 한국 사회에서 오랜 시간 동안 쉽게 해결되고 있지 않는 문제에도 유려하게 접근하는 흔치 않은 단편 애니메이션 수작입니다. 애니메이션을 구성하는 요소들이 잘 배치되어 있기에, 이 작품이 만화로도 나와서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고요, 여력이 된다면 계속 시리즈나 좀 더 긴 장편의 감각으로도 보고 싶고, 그렇지 않더라도 연출자가 앞으로 만들 모습들이 너무나도 궁금해지는 발군의 단편 애니메이션이 되었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