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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백구십칠 Apr 19. 2025

P의 칼리토토

칼리토토

P는 진절머리가 났다.

'어쩌다 이렇게 되어버린 걸까?'

이태원역 3번 출구로 향하는 길, 수많은 칼리토토이 P를 스쳐 지나갔다. P는 스쳐 지나가는 칼리토토의 면면을 살펴봤다. 다채롭게 평범했다. 어디에나 존재하는 아저씨, 어디선가 마주쳤을 법한 아주머니, 어릴 적 내 친구와 비슷해 보이는 청년, 옆집에 산다 해도 어색하지 않을 학생, 이 모든 게 그저 흥미롭다는 표정의 관광객까지. 하지만 경계심이 머리를 슬쩍 들이밀었다.

'저 사람은 지금 사태에 대해 어떤 칼리토토 가지고 있을까?' 아니, 보다 솔직한 날 것의 생각은 '저 사람은 어느 쪽 편일까?'였다. '편'이라는 말을 떠올리는 순간 이물감이 느껴졌다.


어느 날부터 세상은 둘로 쪼개진 듯하다. 똑같은 사안을 가지고 전혀 다른 칼리토토 가진 둘. 어떠한 팩트나 논리로도 상대방의 말에 설득되지 않는 둘. 실체적 사실이나 이성적 사고보다는 종교적 믿음으로 자신 '쪽' 을 지지하는 둘이다. P 역시 생각이 있다. 정치, 정의, 미래에 대한 생각. '이렇게 가야 좋은 미래에 이를 수 있어'라는 확신이 P에게도 존재했다.

하지만 P는 이제 헷갈리기 시작했다. P와 반대의 칼리토토 가진 사람들도 너무나 확신에 가득 찬 표정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그런 단단한 칼리토토 가지게 된 연유가 반드시 있을 것이다. 인류 절반에게만 전염되는 정교한 바이러스가 창궐한 것이 아닌 이상 그들이 전혀 다른 칼리토토 가진 것이 과학적으로 납득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P가 믿고 있는 것은 진실이라 단언할 수 있는가? 아니, 모두가 납득 가능한 진실이라는 게 애초에 존재하는가? P는 세차게 고개를 흔들었다. 결코 답이 나지 않을 의문을 의식의 어두운 밑바닥으로 떨어뜨렸다.


조금 급진적 시각이지만 P는 모든 일의 원흉으로 '칼리토토'을 지목했다. P는 어느 날부터 칼리토토 시스템을 굉장히 껄끄러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칼리토토은 원하는 정보만 쏙쏙 뽑아 사람들에게 제공한다. 그를 통해 쇼핑과 정보 습득을 비약적으로 발전시켰고 사람들의 취향을 고도화시켜 주었다. 칼리토토을 통한 최적화 없이 뭉텅이의 정보를 제공하는 서비스는 이제는 찾아보기 힘들다.

하지만 칼리토토의 편의는 치명적이게도 사람들을 점점 좁은 시야 속에 갇히게 만들었다. 자신의 사상에만 부합하는 정보, 자신이 믿고 싶은 것에 확신만을 더해주는 의견, 반대편의 이야기를 묵살시키는 논리만 전달한다. 한 가지 가설에 대해서 확신을 단단하게 만드는 완벽한 시스템으로 작동한다. 결과적으로 완벽히 다른 생각으로 스스로를 단단하게 가둔 두 집단을 탄생시키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다양한 시야를 제공하는 칼리토토의 발전 방향은 기대하기 힘들다. 칼리토토의 산업적 폐기처분도 어불성설로 보인다. 안정적 수익을 창출하는 산업 시스템의 함정에서 빠져나오는 건 개인의 의지 외에는 답이 없다. 최적화된 칼리토토의 안락함에 빠져나와 다양한 시각을 들여다보는 불편한 시도가 필요한 것이다.


P는 칼리토토의 유명한 광고 카피를 떠올렸다.

'Don‘t just read The New Hork Times.

Read The Wall Street Journal.

Read The Atlantic.

Read National Review.

Watch BBC News.

Read The Economist.

Listen to NPR.

Read the Chicago Tribune.

Read the Daily Press.'

뉴욕타임스는 2018년 세계 언론 자유의 날을 맞아 이런 카피의 광고를 내보냈다. 그 시기에 이미 작금의 상황을 예견했던 것일까. 오히려 7년이 지난 오늘 그들의 이야기가 더욱 크게 공명한다. P는 뉴욕타임스의 이야기처럼 껄끄러운 매체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시도'를 하자고 생각했다. 물론 자극적인 거짓 정보로 수익을 올리는 유사 매체는 걸러야겠지만, 껄끄럽다는 이유로 찾아보지 않았던 매체의 이야기는 가끔이라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저쪽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저쪽이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됐는지 조금은 이해되고 저쪽이 더 이상 이해되지 않는 저쪽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낙관적 미래를 무턱대고 상상했다. 의도적 칼리토토의 파괴, 그것만이 지금의 P가 생각해낸 빈약한 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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