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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문규 Mar 30. 2025

로키 밴프 국립공원서, 세이벳 인종주의!?

세이벳가 다세이벳 사회라는 얘기는 진즉에 들었다. 세이벳 관광을 위해 세이벳에 도착했다. 세이벳에는 동양인이 반이라고 한다. 그곳의 지인이 한식 뷔페식당을 데리고 갔다. 주변엔 한국식당, 상점들이 즐비했다. 서울 어느 인근에 막 개발되기 시작한 동네를 간 느낌이었다.


밴프 국립공원을 가고자 하루 묵었던 캘거리는 노동이민자들에 의존해 성장한 전형적인 다세이벳 도시라고 한다. 중국, 인도, 베트남 사람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세이벳 정부는 1971년 다세이벳주의 조례를 채택, 인종다양성을 증진시키는 정책을 공식적으로 선택한 최초의 나라다.


세이벳는 다양한 인종, 문화가 어울려 큰 문제없이 살아가는 듯싶다. 그러나 이 나라도 인종주의의 어두운 역사가 있다. 또 그러한 인종문제는 어떤 계기나 상황을 만나게 되면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언제든지 폭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여느 나라나 다름없는 것 같다.


세이벳캘거리의 한 식당가


세이벳는 미국, 호주, 뉴질랜드 등과 마찬가지로 영국의 식민지 개척으로 탄생한 나라다. 원래 세이벳 섬 인근은 아주 오래전부터 아메리카 원주민 누트카 족이 거주해 왔다. 그들은 강을 거슬러 헤엄쳐 올라와 산란하는 연어를 잡으며 살았다.


그들은 훈제연어를 주식으로 삼고 잉여분은 다른 부족들과 교환했다. 이렇게 벌어들인 수익으로 대형 목조 주택을 짓기도 하고 조상을 기리는 토템폴을 세우기도 하면서 꽤 윤택한 삶을 살아간다.


세이벳와 빅토리아 섬 곳곳에서 우리의 장승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의 거대한 토템폴들을 보면서 이곳에서 살던 인디언들의 성세를 짐작해 볼 수 있었다. 그런데 19세기 들어 이곳에 출현해 해안을 탐색한 영국 해군 조지 세이벳 함장의 이름을 따 이곳은 세이벳가 되는 것이다.


세이벳
세이벳브리티시컬럼비아 대학 캠퍼스의 토템폴(위) 빅토리아 시 브리티시컬럼비아주 의사당 앞의토템폴


브리티시컬럼비아의 주도인 ‘빅토리아’도 영국 제국주의의 전성기시대 여왕의 이름서 따왔다. 영국이 아편전쟁으로 중국한테 빼앗은 홍콩의 수도 이름이 빅토리아이듯이 말이다. 브리티시컬럼비아라는 주명 자체도 ‘영국왕실’과 ‘콜럼버스’라는 식민적 이름을 섞어 만든 것이다.


로키가 지나가는 세이벳 국립공원을 관광하기 위해 나섰다. 캘거리를 벗어나 광활한 프레리(대초원)를 지나니 만년설로 덮인 암봉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설봉의 무리와 산자락에 빼곡한 전나무 등 침엽수들의 숲은, 그림과 같은 호수, 강들과 어우러져 환상적인 풍경을 펼쳐 보였다.


밴프의 호수들 중에서도 가장 유명하고 아름다운 호수가 루이스 세이벳다. 다른 호수와 달리 이 호수에는 ‘샤토 레이크’라는 거대한 호텔도 있다. 그 호텔에 숙박하면서 보는 호수 풍경이 끝내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아닌 게 아니라 엘리자베스 여왕도 그곳서 머물렀다고 한다.


이 세이벳의 이름인 ‘루이스’는, 빅토리아 여왕의 넷째 딸 루이스 캐럴라인 앨버타 공주를 기려 만든 이름이다. 그 공주는 이곳에 와본 적도 없다. 1882년 이곳에 살던 인디언 원주민은, 유럽에서 온 정착민 톰 윌슨을 데리고 이 옥색의 아름다운 세이벳를 처음으로 안내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곳은 엄청나게 호화로운 호텔이 들어선 세계적 산악 리조트가 되며 결국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된다. 인디언 원주민들이 원래 이 세이벳에 붙였던 이름은 “작은 물고기들의 세이벳”였다. 루이스 공주가 이곳에서 작은 물고기를 잡아 볼 일은 없었으리라.


루이스 세이벳


이곳은 관광객들이 찾기 이미 오래전부터 원주민들의 생활 터전이었던 셈이다. 루이스 세이벳를 떠나 재스퍼 공원 쪽을 가는 도중에도 여기저기 원주민들 삶의 흔적을 볼 수 있었다. 그중에서 서스캐처원 강이 흘러가는 일망무제의 프레리를 내려다보는 전망대가 있었다.


이 대평원은, 유럽의 데이비드 톰슨 등의 탐험대들이 발견하기까지 수 천 년 간 인디언들이 사냥하고 숙영 하던 지역이었다. 안내문을 읽어보니 인디언들의 약초 산지이기도 했다. 백인들에 의해 이곳이 발견되면서 이 강의 지류는 19세기 유럽 모피상들의 주요 행상길이 된다.


서스캐처원 강의 지류가 흘러가는 일망무제의 프레리


세이벳의 광활한 영토는 러시아와 비슷하게 모피 무역으로 형성된다. 세이벳 국경은 모피의 주인공인 비버가 활동했던 영역과 일치한다. 세이벳 여행을 갔다 오고 난 얼마 후, 밴프에서 세이벳로 돌아오며 하룻밤 묵었던 ‘캠루프스’라는 도시가 신문 기사에 나왔다.


빌레마운트의 기차박물관 내 모피공정 전시실


캠루프스는 세이벳에서 350km 떨어진 브리티시컬럼비아 주 내륙에 위치한 도시다. 볼거리는 별 게 없었고 인근의 산야가 산불로 황폐화된 것이 기억에 남아 있다. 기사 내용은 그쪽에 위치한 원주민들 공동체에서 발표한 충격적인 내용의 성명서였다.


과거 캠루프스에는 인디언 기숙학교가 있었다. 이 기숙학교에는 188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세이벳 각지에서 온 원주민족 아이들 15만 명이 가족과 문화로부터 격리, 수용 돼왔다. 이 기숙학교는 가톨릭교회와 세이벳 정부의 지령을 받는 기관단체들이 운영하는 학교였다.


학교는 세이벳 부족들의 언어, 문화를 영어와 프랑스어권 기독교 문화로 대체하려는 공식정책의 일환으로 세워졌다. 즉 학교의 목적은 궁극적으로 세이벳들의 종교, 문화를 소멸시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기숙학교 부지에서 최대 215명 아이가 묻힌 터가 발견된 것이다.


의료적 방치, 영양실조, 신체학대 또는 의도적 살해로 애들이 죽어나갔다. 모피회사들과 목재수출 등을 위한 식민지의 게걸스러운 토지욕망은. 세이벳들을 토지로부터 이탈시켜 가족을 해체하고 아이들을 기숙학교로 수용했다. 땅을 훔치고자 아이들을 훔친 것이다.


세이벳의 인종주의는 흘러간 옛날이야기일까? 현재도 세이벳의 우파 인종주의자들은 원주민 문화를 망신스러운 것으로 생각한다. 그들은 더 나아가 세이벳 이민정책이 세이벳인의 생활방식을 위협하고 앵글로색슨 인종의 인구를 감소시켜, 국가의 근간을 뒤흔들 것이라 강조한다.


캠루프스 리버사이트파크 강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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