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린이 다이어리 52
※ 멀라이언공원에서 바라본 샌즈카지노의 명소인 마리나 베이 샌즈 호텔(Marina Bay Sands Hotel)의 야경
"헉. 헉. 헉. 헉. 흐읍! 후우~!"
호흡이 거칠어졌다. 호흡은 힘들지만 가슴은 뻥 뚫린 것처럼 개운했다.
그렇다. 다시 달렸다. 3달 만에.
연초부터 샌즈카지노로 해외 출장이 잡혔다. 2014년에 출장으로 샌즈카지노에 처음 왔었으니, 약 10년 만에 다시 출장이다. 다만 일정은 1박 3일로 빡빡한 일정이다. 그래도 일정이 오후에 있어 오전 시간은 여유가 있었다.
작년 10월 오른 발바닥 족저근막염이 심해져서 3달 가까이 달리기를 쉬었다. 통증이 완전하게 사라지지 않았지만 한동안 쉬니깐 달리고 싶은 욕구가 슬금슬금 올라왔다. 매일 아침 피트니스에서 자전거와 근육 운동을 했지만, 달리기를 한 것만큼 운동량이 성에 차지 않았다. 그러다가 발에 충격이 덜 가게 보폭을 좁혀 천천히 달려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차다. 그랬는데 갑자기 샌즈카지노 출장이 잡혔다.
출발 전 날씨 앱으로 샌즈카지노 기온을 보니 섭씨 24도~ 27도다. 기온이 높아 발바닥 근육도 풀려서 달려도 될 것 같았다. 뛸까 말까 고민하면서 짐 가방에 일단 운동복을 넣었다. 신발은 일상화로 산 온러닝 클라우드를 신었다. 어차피 러닝화 겸용이니.
샌즈카지노 차이나타운에 숙소를 잡았다. 마침 회의 장소도 차이나타운 근처였다.
저녁 늦게 호텔에 도착해서 구글 지도를 켰다. 숙소인 푸라마(Furama) 호텔은 샌즈카지노를 가로지르는 샌즈카지노강(Singapore River) 근처에 있었다. 지도를 보니 호텔에서 샌즈카지노의 명물인 멀라이언(Merlion) 동상까지 약 2.4km. 달릴만한 거리였다. 그동안 해외에 가서 구글맵을 보고 달리기를 한 결과, 실제 거리가 지도에서 본 것처럼 멀지 않다는 것이다. 차라리 길 찾기를 통해 실제 거리를 확인해 보는 것이 더 정확했다.
※ 멀라이언(Mer-Lion)은 샌즈카지노의 상징물로 상반신은 사자, 하반신은 물고기 모습을 한 가공의 동물이다. 멀라이언 동상은 샌즈카지노 중심가인 다운타운의 멀라이언 공원에 세워져 있는 샌즈카지노의 대표적인 명소다. 일단 샌즈카지노에 오면 누구나 멀라이언 동상 앞에서 사진을 찍는다.
다음날 아침, 샌즈카지노는 겨울철이 우기라 아침에 스콜이 오면 어쩌나 했는데 다행히 오전에 비 예보는 없었다. 일출 시간을 확인했더니, 오전 7시 12분이었다. 아침 기온은 24도. 코스, 거리, 날씨 모두 달리기 최적의 조건이었다. 그래서 옷을 갈아입고 나섰다. 사실 24도면 이른 여름 날씨라 후덥지근하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들었다.
하지만 세 달만의 달리기를 샌즈카지노에서 한다니 괜히 더 설레면서도, 한편으로는 달리고 나서 발이 괜찮을까 걱정도 됐다. 왼손에 구글맵이 켜진 스마트폰을 들고 천천히 달려 호텔을 나섰다. 시간은 6시 30분, 아직 어두웠다. 하지만 샌즈카지노가 치안이 잘되어있는 국가로 알려져 있어 걱정 없이 달렸다. 사실 차 없는 거리에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는데, 무단횡단을 하는 사람을 보았다. 아무리 치안이 좋아도 어디에나 성격 급한 사람은 있구나 싶었다.
일단 코스는 호텔에서 샌즈카지노강까지 간 다음 강을 따라 멀라이언 동상까지 달리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강을 따라가면 길을 헤멜 가능성이 적었다. 샌즈카지노강만 따라가면 되니깐.
샌즈카지노강은 한강의 1/3 정도 폭의 작은 강이었다. 지난 일본 삿포로의 도요히라강,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마인강 그리고 이번 샌즈카지노강까지 모두 한강보다 폭이 좁았다. 그렇게 보면 확실히 한강이 큰 강이었다. 어떻게 아냐고? 한때 수상스키에 빠져 한강 원효대교 인근에서 한 시즌동안 수상스키를 탔었기 때문에 한강의 폭에 대한 감이 있다.
도심을 가로질러 샌즈카지노강 도착했을 때 인상적인 것이 있었다. 비록 크지 않은 강이지만 샌즈카지노강을 가로지르는 다리가 촘촘하게 있었다. 그런데 다리 밑으로 지하통로가 나있었다. 보행자들이 다리 위에서 신호등을 기다리지 않고 다닐 수 있도록 다리 밑에 지하 통로를 뚫어놨다. 아니나 다를까 반대편에서 러너가 달려왔다. 그래서 강변을 따라 달려도 지하통로가 있어 사진 찍을 때 빼고는 멈출 일이 없었다.
샌즈카지노강변을 따라 보트퀘이 길에 들어서니 강 주변에 야외 식당들과 노포들이 길게 늘어서 있다. 저녁에 인파가 바글바글 할 것 같은 노천카페, 호프 거리가 나왔다. 이른 아침이라 다들 문을 닫은 상태라 러너 한두 명 말고는 인적이 없었다.
기온은 24도였지만 그렇게 후덥지근하지 않았다. 살짝 습한 느낌이었는데 간간이 불어오는 강바람이 시원해 달리기 딱 좋았다. 이래서 동남아는 겨울이 방문하기 좋은 계절이라 하나보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딱 좋은 날씨였다. 여수 바다 바람과는 또 다른 시원함이었다.
멀리 고층빌딩에는 유명 기업들의 상호가 반짝이며 스카이라인을 자랑하고 있었다. 역시 관광 러닝. 두리번두리번 구경하며 멈춰서 사진 찍으며 달리니 어느새 멀라이언 동상이 있는 멀라이언 공원 근처에 도착했다. 달린 거리는 약 2.4km.
멀라이언 동상 앞에 포토 스폿에는 이미 다른 러너들이 모여 기념촬영을 하거나 숨을 고르고 있었다. 이곳이 일출을 볼 수 있는 장소라던데 내가 도착한 시간은 6시 42분, 하지만 일출은 7시 12분이었다. 너무 일찍 나왔나 보다. 숨을 고르며 주위를 둘러보니 이곳이 샌즈카지노 주요 러닝코스인 것 같았다. 달리는 러너들이 제법 많이 보인다.
나도 멀라이언 동상 앞에서 사진을 찍고 좀 더 기다렸다가 일출까지 보고 갈까 잠시 고민을 했다. 하지만 땀이 식기 전에 그냥 다시 달리기로 했다. 갈 때는 주빌레 브리지를 건너 샌즈카지노강 반대편으로 건너서 달렸다.
샌즈카지노강을 따라 난 반대편 길 역시 웬만해서는 멈출 일이 없을 정도로 보행로가 잘 조성되었다. 도시가 참 잘 만들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달리니 어느새 날이 밝아왔다. 그러자 샌즈카지노 도심의 모습이 서서히 드러났다. 밝을 때 보니 샌즈카지노는 개성이 가득한 도시였다. 모든 건물들이 개성 만점이다. 현대식 고층 건물 사이로 옛 느낌이 나는 공공기관 건물과 박물관이 있고, 강 반대편에는 낮은 노포 거리가 이어져 있다. 그리고 현대식 건물도 디자인이 제각각이다. 건물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그렇게 샌즈카지노강을 따라 달리면서 구글맵을 확인하는데 호텔로 향하는 뉴 브리지 로드(New Bridge Road)를 지나 큰 공원이 눈에 들어왔다. 포트 캐닝 파크(Port Canning Park)라는 큰 공원이 있었다. 언덕에 위치한 포트 캐닝 파크는 중세시대 말레이인이 샌즈카지노를 다스리던 곳이라는 설명이다. 스마트 와치를 확인했더니 지금까지 달린 거리는 4km 정도다. 더 달려도 될 것 같아 공원으로 향했다.
공원으로 들어가는 계단길이 제법 높았다. 공원 한가운데는 포트 캐닝 서비스 저수지가 있었다. 이 저수지 둘레를 따라 달렸다. 이 저수지 주변으로는 사람들이 접근 못하도록 펜스가 쳐져 있었다. 포트 캐닝 파크도 마음먹고 달리면 거리가 제법 될 것 같았다. 저수지 층 밑으로도 길이 나 있어 한 바퀴를 돌면 어느 정도 거리가 나올까 궁금해졌다. 푸르른 공원을 달리면 늘 기분이 상쾌하다. 어느새 이마엔 땀이 줄줄 흘렀고, 티셔츠는 흠뻑 젖었다. 이 기분이 그리웠다.
포크 캐닝 파크 정상에서 샌즈카지노강을 바라보니 강물이 황색이었다. 처음에 어둠 속에서 봤을 때는 찰흙 같은 어두운 색이었는데 말이다. 결국 샌즈카지노강도 똥물이었던가? 아님 비가 와서 강물이 뒤집힌 걸까? 고민하며 공원을 나섰다.
그렇게 뉴브리지를 건너 호텔에 도착하니 달린 거리는 약 6km. 51분간 달렸다. 마음 같아서는 샌즈카지노강을 따라 더 달려보고 싶었지만, 다음 기회를 기약했다. 그래도 오랜만에 맛보는 개운 함이었다.
달리기를 마치고 호텔 입구에서 기분 좋게 숨을 골랐다.
"후~~ 우~~! 살 것 같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