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국가와 계급 바카라 사이트 붕괴, 정치의 식민지화...
국민국가는 하나의 소속을 부여했을 것이다. 계급사회 같은 것도 양 계급의 대립은 별론, 일종의 목소리를 허여 했다. 하지만 오늘날 국민국가라는 개념은 세계화, 전지구화라는 미명으로 각종 난민, 이주민 등 잉여를 낳고 있다.
계급이라는 것도 더 이상 두 계층 간 평행선을 긋는 현상은 아니다. 예전의 프롤레타리아, 부르주아 대신에 사실상 절대다수가 쁘띠 부르주아, 그 다른 편엔 많은 것을 장악한 대부르주아만 있을 뿐이다. 경제, 정치체제도 양자를 넘나들 만큼 자본주의 체제 외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무슨 정치적 격변이 일어나기만 하면 조속한 안정을 바라는 논리도 경제인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잉여가 된 대중은 그 정체성을 상실하고 맹목적적으로 자본주의 운동, 자연운동 등에 휩쓸려 부유하는 존재들이 되어 간다는 것이다. 이러한 정체성, 소속감 없는 소외 집단을 부추겨 마치 구원자처럼 선동하는 지도자를 만들어 내는 것이 전체주의의 기원이라고 아렌트는 한 단면을
그려내고 바카라 사이트. 사실 이 가벼운 생각만 보더라도 지금의 우리 현실의 한 조각을 잘 이해하게 해 준다.
광장에서 외치는 구호는 자유민주주의라는 동일한 이데올로기이지만 이를 건져낼 주체는 서로 다르다.
작금의 현실이라면, 우리가 전체주의 바카라 사이트에서 살고 있다고 해도 별 이상할 게 없다. 어디로 가야 할지, 누구에 의존할지 모르는 다수의 대중은 서로 환상에 의한 구원자를 좇고 있다. 그런 배제된 잉여는 비단 어느 특정국이나 국지적 사태를 넘어서고 있다.
민주주의가 정립되어 있다고 하는 그 잘난 미국도 이런 저속한 전체주의적 방식으로 초강대국의 정체성을 이용해 마구 선동질을 해대는 마당에 말이다. 세계화는 그 출발점에서부터 음흉한 흉계가 있었겠지만, 마침내 목적을 달성한 것인지 온 세계가 전체주의적 사고로 되돌아가는 듯하다. 이는 우리에게도 마친가지로 진행되고 있는 현상이기도 하다. 갈 곳 없는 익명적 대중의 정체성은 엉뚱한 몽상에 기대거나 아예 길을 잃어버린다. 아마 우리가 우려하는 현실이 이런 것일 터이다. 어떤 결론이 나든, 전체주의를 몰아내었다는 결과는 또 다른 전체주의를 조장하기 쉽다. 정체성을 잃고 부유하는 대중을 선동하는 일은 더욱 잉여의 구분선을 분명히 할 것이고, 이는 현실 정치에 동원되기에 용이하다. 혐오와 차별이 그 테두리를 벗어던지고 다양성을 회복할 조처가 심각하게 고려되어야 할 것인 데, 누구든 예상하지만 탄핵선고 이후가 더 큰 위기로 다가올지도 모른다. 그 사태를 기화로 우리 사회 시스템도 깊은 반성과 대개혁의 필요성을 절감하는 계기가 되었지만, 명명할 수 없는 사건이 도래한 것은 아니다. 그래서 아직도 우리는 결정불가능한 것의 도래를 기디려야 한다. 그래서 차라리 정체성이 모두 해체되었으면 더 나을 뻔했다. 우선은 그릇된 정체성을 바로 잡고 대중을 미혹하는 환상을 깨뜨려야 하지만, 늘 그래왔듯이 이를 이용하는 정치세력이 문제이다. 계몽주의 근간에 사실은 전체주의적 사고가 개입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채야 함에도 말이다. 귀가 왜 두 개인지 새삼스럽게 여겨진다. 양방향의 말을 듣고 제대로 여과된 말을 입으로 내뱉으라는 뜻일 텐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