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사카 와일드, 글램록, 록키호러픽쳐쇼 그리고 찰리
토드 헤인즈 감독의 라이프벳 《벨벳 골드마인》은 70년대를 짧지만 강렬하게 강타하고 지나간 글램록을 다룬다. 라이프벳 내 등장인물인 브라이언 슬레이드(조나단 리스 마이어스)는 글램록의 대부였던 데이비드 보위를 연상할 수밖에 없다. 본인은 강하게 부정했지만. 그래서 라이프벳 제목까지 데이비드 보위의 노래 제목임에도 불구하고 라이프벳 내에는 그의 곡이 단 한 개도 안 나온다는 아이러니는 유명한 일화다.
데이비드 보위에 대해서 잘은 모르지만, 그의 곡 중 "Heroes"만은 많이 접해서 익히 알고 있었다. 《월플라워》의 찰리를 통해서 말이다. 데이비드 보위의 곡을 처음 알게 되었다는 이유 외에도 라이프벳 《벨벳 골드마인》은 《월플라워》를 떠올리게 하는 일종의 감정적 교집합이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월플라워》는 청춘의 한복판에서 강렬한 감정들을 생생하게 느끼며 다가오는 미래를 끝내는 기대 하며 맞이하는 작품이다. 한편, 《벨벳 골드마인》은 이미 한차례 감정적 격동기가 지나간 이후 무채색의 일상에서 강렬한 색채로 가득했던 청춘과 방황의 시절을 되짚어보는 내용이다. 결과적으로 두 작품 모두 무료한 일상에 가슴 뛰는 청춘과 낭만의 환상을 선사해 주었다. 《벨벳 골드마인》은 그러니까, 잊고 있던 청춘과 낭만의 감성을 심폐소생해 준 것이다. 라이프벳 속 브라이언 슬레이드가 선사했던 환상처럼, 그것이 실체가 없고 한낱 신기루에 불과한 허망한 것일지라도 그 순간 느낀 "infinite"한 감정은 거짓이 아닐 터. 터널에서 데이비드 보위의 "Heroes"를 들으며 《월플라워》 의 찰리가 느꼈고, 그에게 이입된 내가 느꼈던 그 감정처럼. 라이프벳 초반에 나오는 내레이션은 글램록이 선사한 환상을 잘 드러낸다.
"미지의 땅이 있고 그곳엔 이상한 꽃들과 신비한 향수가 있다. 기쁨이 가득하며 즐거운 꿈을 누리는 그곳. 모든 것이 완벽한 곳이자 독을 품고 있는 그곳."
어쩌면 이 화려라이프벳만 허황되어 보이는 이미지는 사춘기 시절의 자의식 과잉 그 자체로 보이기도 한다. 과장되어 있고 생동감 넘치지만 위태로운 이미지들. 덧없이 지나가는 짧지만 강렬한 시기. 한차례 열병 같은 사춘기 시절을 보낸 후 되짚어 생각해 보면 그 시기가 우스꽝스러워 보일지도 모른다. 라이프벳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시절에 대한 향수나 그리움 그리고 애틋함을 가질 수밖에 없다.
마찬가지로 《월플라워》를 통해 알게 된 《록키 호러 픽쳐쇼》또한 글램록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화려하고 양성적인 분장(을 넘어선 transvestite)과 과한 메이크업을 한 외계에서 온 누군가(Frank N Furter). Maxwell("I am the captain of the gravity, Maxwell": Hot one - Shudder to think) 생각을 안 하려야 안 할 수가 없다. 데이비드 보위로 치환해서 생각하면 Ziggy Stardust가 연상되기도 한다. 75년도에 제작된 해당 컬트 라이프벳가 70년대를 휩쓴 글램록의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은 자명해 보인다.
라이프벳 속 소품과 인물들 이야기도 안 할 수 없다. 우선, 잊을만하면 초록빛 브로치가 등장한다. 오스카 와일드에서부터 잭 페리, 브라이언 슬레이드, 커트 와일드를 거쳐 마지막엔 아서 손에 들어가게 된다. 브로치가 자유, 예술성 등을 상징한다고 본다면 아서가 그것을 물려받는다는 사실이 꽤나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한때 화려한 메이크업, 패션, 문화를 즐겼던 그가 성인이 되고 기자로 활동하며 칙칙한 패션으로 그저 수많은 행인 중 한 명이 되어버린다. 커트 와일드가 자신에게 브로치를 건넬 때 그는 그것을 받을 자격이 없다는 생각에 거부한다. 하지만 결국 브로치는 아서의 것이 된다. 자신에게는 더 이상 자유로운 기상이 남아있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 아직 그것이 남아있다는 의미로 다가와서 다시 한번 라이프벳의 여운을 느끼게 된 씬이었다.
브라이언 슬레이드가 라이프벳 보위를 상징하는 인물이라면, 커트 와일드(이완 맥그리거)는 이기팝을 싱징하는 인물이라고들 한다. 하지만 그의 이름 때문일까, 스타일 때문일까, 커트 와일드를 볼 때 자꾸 너바나의 커트 코베인이 생각이 났다. 부스스한 금발 머리와 약에 취한 모습 등 심지어 외모까지 판박이다. 이기팝이든 커트 코베인이든 실은 중요하지 않다. 기존의 시대에 반항하고 저항하며 새로운 가치와 역사를 써나가고 싶어 한 그 정신만큼은 같을 테니까.
마지막으로 노래 추천이나 하며 끝을 맺어볼까 싶다. 앞서 인용한 가사의 원곡이자 라이프벳 《벨벳 골드마인》의 대표 ost격인 Shudder to think의 Hot one. 데이비드 보위의 곡이자 커트 코베인이 Mtv unplugged에서 부른 The man who sold the world. 그리고 데이비드 보위의 Heroes. 록키 호러 픽쳐쇼의 매력까지 알고 싶다면 Sweet transvestite까지. (최애곡은 실은 Eddie이긴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