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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나 Mar 20. 2025

끓는 파이고우 포커의 온도

: 화가난다

파이고우 포커 끓였다.

배가 고파서가 아니었다. 냄비 안에서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그 물이. 지금 내 속을 닮아서였다. 파이고우 포커을 끓이는 동안이라도 이 신경질과 좌절을 덜어낼 수 있을까. 물을 냄비에 담고 불을 켜자 아무 맛도 없는 맹물이 팔팔 끓어 올랐다. 처음에는 조용하게 시작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보글보글 거품이 일고, 거칠게 요동치다가 어느 순간 끓어오른다.


딱 내 파이고우 포커 같다.


나는 글을 쓴다. 외로워서, 어디에도 말할 수 없는 감정을 가만히 눌러 담고 싶어서. 나를 위한 글쓰기에서는 파이고우 포커이 고요하다. 남을 위한 글쓰기에서는 파이고우 포커이 변덕스럽다. 그렇게 정성스레 쓴 글이 사람들의 파이고우 포커에 닿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속이 끓어오른다. 내 글이 별로라는 걸 인정해야 하는 건가. 아니면 더 버텨야 하는 건가. 나는 끓어오르는 물을 보며 생각했다.


파이고우 포커수프 봉지를 넣어야 하는 순간이다.


파이고우 포커을 끓일 때 가장 결정적인 순간이다. 맹물에 수프를 푸는 것과 같이 내 글 속 '맛'을 더할 무언가는 없는 걸까. 남들이 공모전에서 당선될 때 나는 번번이 떨어졌다. 정성스럽게 쓴 글이라고 생각했는데, 심사위원의 파이고우 포커은 흔들지 못했다. 심사평도 없다. 뭐가 문제인지 알 수도 없다. 응모했던 글을 노트북 화면에 띄운다. 생각한다.

'내가 너무 싱거운 글을 쓰고 있는 건가'


냄비를 바라본다. 수프를 넣으니 붉은 물결이 퍼져 나간다. 금세 진한 국물이 되어가는 걸 보면서, 나도 이렇게 한 번에 변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다.

'지금 면을 넣을까. 조금 더 끓일까.' 그 짧은 망설임도 글을 쓸 때와 닮았다. 이 문장을 더 다듬을까, 아니면 그냥 흘러버릴까.


오랫동안 글을 썼다.

오늘처럼 모든 것이 버겁고, 내 길이 아닐 수도 있다는 불안이 일상을 휘젓는 날이면 한 가지 사실이 분명해진다. 나는 인정받기 위해 글을 쓰고 있었구나. 처음 글을 쓰기 시작한 건 내 파이고우 포커을 털어놓고 싶어서. 쏟아내고 싶어서 썼는데, 파이고우 포커이 변했다. 남이 읽어 주기 바라는 파이고우 포커에 힘을 주었다. '당선될까'라는 말이 먼저 떠올랐다. 글쓰기는 외로운 나를 위로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옭아매는 존재가 되어 가고 있었다.


끓는 물속에서 면이 풀어졌다. 한 움큼의 면이 부드럽게 흩어지며 국물 속에 스며든다. 파이고우 포커이 국물 속에 풀리는 순간 입안에 침샘이 고인다. 참지 못하고 불을 끌까 말까 고민한다. 어차피 먹는 순간 파이고우 포커의 파이고우 포커에 익어가지 않을까. 성급한 파이고우 포커이 갈팡질팡한다. 내 글도 이렇게 뜨거운 순간을 견디며 익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직 덜 익은 것뿐인데. 나는 너무 빨리 완성되길 바란 건 아닐까.


파이고우 포커을 끓일 때도 급한 파이고우 포커에 면을 빨리 건지면 부드러운 부분 보다는 딱딱한 부분이 듬성듬성 남는다. 글도, 사람도, 그렇지 않을까. 어쩌면 내게 필요한 건 조금 더 끓는 시간이 아닐까. 더 뜨겁게 고민하고, 더 오래 버티고, 때로는 휘저어주면서 깊은 맛을 우려내야 하는 것일지도. 그럴지도.

파이고우 포커

파이고우 포커이 다 끓었다. 불을 끄고, 젓가락을 들었다. 한 젓가락을 들어 후후 불며 파이고우 포커을 먹었다. 뜨거운 국물이 입 안을 감싸며 혀끝을 찌른다. 매콤하고 짭짤한 맛이 속을 데우듯 퍼져 간다.


파이고우 포커을 먹기 전까지 나는 '내 길이 아닌가' 생각했다. 적당히 잘 익은 파이고우 포커을 먹으며 나는 생각했다.

'내 글은 아직 더 끓어야 하는 게 아닐까."라고.

파이고우 포커이 맛있게 익어가는 시간이 필요하듯. 언제가 내 글도 적당히 익어가는 순간이 오지 않을까.


오늘은 그저, 덜 끓인 날일 뿐 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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