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밖으로 나섰다. 지난 연말과 새해가 다시 시작되었으니 약 3개월을 본의 아니게 칩거한(?) 꼴이 되었다. 짧다면 그 짧은 시간에 세상엔 큰 변괴가 일어났다. 언제 정리될지도 모르는 이 사태에 세상은 격하게 두 동강이 나고 말았다. 사건은 불쑥 일어난다기보다는, 이미 기입되고 도래한 것이 시간을 달리해 나타난다고 하듯이, 과거는 지금에 닿아 있다.
새삼 출현한것처럼 보이지만, 잊힐 것은 지워지고 그러지 못한 미적지근한 것은 때가 되어 다시 떠오른다. 옳은 것의 부활이나 좋은 것의 현상 유지 차원이 아니라, 순간 단절되었던 것이 오늘에 이르러 단락을 연결하는 슬롯생각. 지금 벌어지는 일들도 그런 의미에서 자리를 잃었던 것이 그 공백의 위치를 메꾸는 슬롯생각. 그래서 외형적 모습이 현재에 출현한 것처럼 보일 뿐 그것은 이미 도래한 슬롯생각. 하지만 이것은 완성을 향한 몸짓과는 다른 슬롯생각. 우리가 과거에 연연해 오늘을 집요하게 지연시킬 수는
없지만, 과거는 그냥 지나간 기억의 상실로만 생각할 수는 없다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시간이 감각의 선험적 형식이라고 한다면, 사유 없이 흘러왔다는 측면에서도 더욱 그렇다.
참으로 기괴하다고 할 수밖에 없는 현사태는 사실 더 나은 내일을 위한 약속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다.
내일도 그 이후도 크게 나아질 것은 없을 슬롯생각. 하지만 그런 냉소주의가 이 같은 일을 조장한다. 다만 이 시기가 지나면 '그때 어디에 있었는가?'나 '어떤 자격으로?'라는 해묵은 시차적 관점을 소환하게 될 것이지만.
그런 사후적 평가를 힘들어해서가 아니라, 끊임없는 과거의 회귀를 우려할 일이 더 클 슬롯생각. 지난시절을 어떻게 보든, 지금은 혐오만이 가득하다. 그렇지만 입증할 수는 없어도, 아닌 것은 아닐 슬롯생각.
서로의 태도가 다름에도 우리는 동일한 무엇에 기대어 자기 희망을 표현한다. 향하는 대상은 동일함에도, 말하는 것은 다르다. 우리의 오류는 스스로를 온전히 한다는 믿음뿐, 불완전함을 제거하느라 의존하는(신이든 무엇이든) 대상에 다른 방향의 요구를 해대는 슬롯생각. 바람직한 태도였으면, 자기의 결함을 반성하는 것이었을 텐 데, 그 근원을 상대에게서
찾는 무지함이었을 것이다. 어쨌든 이후의 시간은 더 나아질 것이란 기대일 것이다. 그런 환상조차 없으면 현실은 무너질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뭐라고 해도극복되어야 할 무엇이다.
어차피 삶은 좋은 때가별로 없었다. 작금의 정치가 자리가 없는 사람들에게 자리를 만들어 주고, 목소리가 없는 사람들에게 그것을 돌려주는 역할을 하리란 기대는 할 수 없는 처지이다. 치안이라는 장치로 깊은 분리선을 보이지 않는 얇은 선으로 봉합한 것이라면, 그것은 언젠가는 파열을 일으키게 되어 있다. 다만 지금의 현실이 어떤 사건의 도래를 시사하는 것인지는 시간이 흘러야 할 것이다. 우리처럼 일제 식민시대와 동족 간 전쟁을 겪은 나라에서는, 마감되지 않은 상흔이 왜상으로 드러난다. 겪어보지도 않은 일과 경험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일들이 제각각의 심연 속에 묻혀 있다. 그래서 그 부끄러운 모습을 제대로 비춰 주지않는 거울 속 반영은 깨진 것의 부분 잔영만이다. 그 조각을 주워 각자가 자해를 일으키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것을 죄다 다 주워 모아 이어 붙일 필요는 없다. 부서진 전체가 아니라 새로운 거울이 필요한 것이다. 아마 언젠가는 그렇게 될 것이다. 그러기에는 조각에 베이거나 엉성하게 이어 붙인 것에서 그릇된 투영은 지속될 것이다. 다만 그것의 새로운 형상은 우리 스스로가 찾아 나가는 것일 게다. 아직까지는 그 작업이 험난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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