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일에 참조인을 계속 추가하는 직장인의 심리, 정보 편향
여러분은 출근 후 컴퓨터를 켜면 가장 먼저 무엇을 하시나요?
저는 예스벳함을 엽니다. 그리고 예스벳을 세 가지로 분류하죠.
1. 중요 예스벳: 담당 업무와 직접 관련되었거나 반드시 회신이 필요한 예스벳
2. 삭제 예스벳: 비업무 예스벳, 스팸 예스벳
3.불필요 업무 예스벳: 업무 내용이지만,내 담당 업무와 직접 관련이 없고 몰라도 되는 정보
그런데 저는 수신인과 제목만 봐도 열지 않고 넘기는 예스벳이 있습니다. 제가 아는 분 중 한 분은 자주 이런 예스벳을 보냅니다.
제목: 업무 공유
참조: 조직 전원
본문: 업무에 참고하세요.
첨부파일: [250415] XXX팀 XXX안건 회의록
어떤 내용인지 설명도 없습니다. 알아서 첨부파일 열어보고, 필요한지 판단해참고하라는 말이죠. 이 예스벳은 조직 전원에게 발송됩니다. 저는 어느 순간부터이런 예스벳은 열지 않게 되었습니다. 제 업무에 거의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죠. 분류하자면 불필요 업무 예스벳에 해당합니다.
메일함을 모두 정리하고 보면, 중요 표시된 메일은 전체의 10%도 되지 않습니다. 불필요 업무 예스벳이 지나치게 많고 대부분이런 말로 시작합니다.
"혹시 몰라서 공유드립니다."
"알고 계시면 좋을 것 같아 참조드립니다."
"일단 관련자 분들 모두 CC 했습니다."
이런 예스벳들은 누구를위해 보낸 건지의문이 생깁니다.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예스벳이 '참조'라는 이름으로 주고받아집니다. 하지만 정보가 많다고 소통이 깊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정보는 오히려 관계를 흐리고, 어떤 참조는 책임을 분산시키죠.
이런 과잉된 정보 뒤에는, 어쩌면 정보편향이라는 심리가 숨어 있을지도 모릅니다.
사람들은 정보가 많으면 더 나은 결정을 내릴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정보를 상대방에게 공유하는 것이 일종의 배려라고 여깁니다. 당신이 더 나은 결정을 할 수 있도록 내가 최대한 정보를 제공해 줬다는 마음인 것이죠.
이 믿음 뒤에는 정보 편향(Information Bias)이라는 심리적 함정이 숨어 있습니다. 정보 편향이란 어떤 정보가 실제로 결정이나 행동에 도움이 되지 않더라도, 단지 '많다'는 이유로 가치 있다고 여기는 경향을 말합니다.
하지만 과잉된 정보는 판단을 더 정밀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결정의 타이밍을 놓치게 만들고, 실행을 주저하게 만들며, 때로는 아무 행동도 하지 않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이 현상은 우리 일상 속에서도 자주 드러납니다.
1. 쇼핑할 때 후기 100개 읽는 사람
"가격도 괜찮고 디자인도 마음에 드는데, 혹시 문제 있는 건 아닐까?"
→ 살 마음은 굳었지만, 끝없이 후기와 비교 글을 뒤지다 더 혼란스러워지고 결국 아무것도 사지 못 합니다.
2. 넷플릭스에서 영화 고르다가 결국 아무것도 안 보는 사람
"이거 괜찮은가?", "평점은 좋은데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은 아닐 수도..."
→트레일러 보고, 리뷰 읽고, 비교하다가 결국 지쳐서 앱을 종료합니다.
3. 시험공부보다 자료 수집에 몰두하는 학생
"시험에 이런 부분까지 나올지도...", "혹시 빠뜨린 자료가 있을 수 있어."
→자료만 모으다가 공부할 시간은 사라졌습니다.
지나치게 많은 정보가 의사 결정을 어렵게 한다는 것은실험으로도 증명되었습니다.
콜롬비아대학교의 쉬나 아이옌가 교수는 슈퍼마켓에서 소비자 행동을 관찰했습니다. 시식대에 잼을 진열해 두고, 잼의 종류 수에 따라 소비자들의 반응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실험했죠.
조건 A: 6가지 종류의 잼 진열
조건 B: 24가지 종류의 잼 진열
24가지 잼을 진열했을 때는 더 많은 사람들이 시식에 참여했지만, 실제 구매율은 3%에 불과했습니다.
6가지 잼만 진열했을 때는 상대적으로 덜 주목받았지만, 구매율은 무려 30%에 달했습니다.
선택지는 많을수록 좋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결정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 됩니다. 너무 많은 선택지 앞에서 사람들은망설이게 되고, 판단이 흐려지며, 결국 아무것도 고르지 못한 채 떠나게 됩니다.
정보 편향은 발신자에게 정보를 많이 주는 것이 더 좋은 결정과 신뢰를 만든다는 착각을 심어줍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중요한 결정을 내리기보다, 정보를 쌓고 보내는 데 에너지를 씁니다. 메일을 보낸 순간, 나는 충분히 공유했다는 자기 위안으로 불확실성을 덜고자 하는 것이죠.
그러나 그 위안은 수신자에게서 혼란으로 바뀝니다.
맥락 없이 도착한 예스벳은 내용을 파악하는 데 불필요한 에너지를 쓰게 만듭니다.
CC에 포함된 수많은 이름 사이에서 누가 실제 책임자인지 모호해집니다.
'누군가는 대응하겠지'라는 심리 속에 아무도 움직이지 않게 됩니다.
결국, 정보는 모두에게 퍼졌지만 정작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상황이 만들어집니다.
정보의 양이 곧 소통의 질을 담보하지는 않습니다.
모두가 예스벳을 받았지만 정작 아무도 읽지 않는 조직이 되고, 보고된 일은 넘쳐나지만 실제로 해결된 일은 점점 사라지게 됩니다.
예스벳을 보낼 때는 반드시 스스로에게 물어야 합니다.
"이 예스벳의 핵심은 무엇인가?"
"그리고 왜 지금 이 사람이 이걸 알아야 하는가?"
쓸모 있는 한 줄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정확히 전해야 합니다. 그것이 없다면 굳이 보내지 않아도 됩니다.
명확한 목적과 요점을 담겨 있다면, 사람들은 그것을 '시간을 들여 읽을 가치가 있는 예스벳'로 받아들입니다. 예스벳을 보내는 사람의 신뢰감도 올라갑니다.
반대로 그 질문 없이 보내는 예스벳은 신뢰를 조금씩 갉아먹습니다. 의미 없는 예스벳을 반복해 보내는 사람은 '굳이 열어보지 않아도 되는 사람'으로 인식되기 시작합니다.
정보를 많이 보내는 사람이 아니라, 정확하게 보내는 사람이 신뢰를 얻습니다.
진짜 배려는, 때로는안 보내는 용기에서 비롯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