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자와 죽은 자 위로 눈이 내린다."
미리 알아본 작품소개는, 이 영화가 말기암 환자의 ‘안락사’에 관한 이야기라는 것이었다.
실제로 그녀의 게임룸 토토가 이 과정에 동행하고 이후 경찰에 조사를 받기도 한다.
그러나 게임룸 토토를 다보고 나니, 삶과 우정에 관한 이야기였다.
소행성이 떨어지거나 핵전쟁이 일어나지 않아도, 사람은 늙거나 병에 걸리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해서 반드시 죽는다.
게임룸 토토는 죽는 방식의 문제가 아니라 누구나 맞는 죽음을 앞에 두고, 인생은 무엇인가와 누구와 마무리를 하고 싶은 가를 생각하게 한다.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잉그리드는 유명한 여성 작가이다. 그녀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고백하는 책을 발간하고, 그 책이 베스트셀러가 돼서 대형 서점에서 저자 사인회를 하다가 한 게임룸 토토를 만난다. 그녀에게서 종군기자를 했던 친한 게임룸 토토 마사 헌트가 말기암으로 병원에 입원해 있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녀를 찾아간 잉그리드는 마사에게 매일 병원에 문병 오겠다고 약속하고 그것을 지킨다. 둘은 집필이나 해외 파견 같은 일을 하느라 자주 만나게임룸 토토 못했지만 그들의 관계는 평생을 이어왔었다.
마사는 처음에 말기암을 선고받고 고칠 수는 없다고 생각해서 고통스러운 치료를 받지 않으려고 했지만 신약 실험을 권유받고 참여했었다. 그러나 약이 듣지 않고 결국 다른 곳까지 암세포가 전이되었다는 말을 듣자 절망하며, 직감을 따르지 않고 쓸데없이 시간만 낭비했다고 분노한다.
병원으로부터 새로운 항암제를 투여할 때까지 한 달간 집에서의 휴식 시간을 허락받은 마사는,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고려할 때 생의 마지막이 극심한 고통 때문에 비참해지고 차분한 생각도 할 수 없을 거라는 결론을 내린다.
그녀는 게임룸 토토 잉그리드에게 자신이 다크웹에서 안락사 약을 구했다고 고백하며, 자신의 마지막 길의 동행자가 돼 줄 것을 부탁한다. 그저 자신의 마지막 순간에 옆방에 머물러달라는 것이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잉그리드는 이 제안이 부담스러워서 다른 사람을 추천한다. 그러나 마사의 딸은 어릴 때 엄마가 기자 생활을 하며 자신을 홀로 내버려 둔 것 때문에 힘들었고 엄마와 남처럼 소원하게 지내와서 엄마의 진단을 듣고도 냉담했었다. 또 마사도 엄마 노릇도 못했으면서 딸에게 죽을 때 무거운 짐까지 줄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결국 잉그리드는 이 제안을 받아들인다.
마사는 우드스톡에 있는 숲이 보이고 개인 풀장이 있는 멋진 집을 한 달간 렌트한다.
안에는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 ‘People in the Sun’이 걸려있고 그 집의 수영장 테라스에도 녹색과 빨간색의 선베드가 놓여 있어 그림과 비슷한 분위기이다. 가장 넓고 전망 좋은 방을 마사가 쓰고 잉그리드는 아래층의 방을 선택한다. 마사는 늘 방문을 열어놓겠지만 거사를 치르게 되면 방문을 닫을 테니 그렇게 알라고 한다. 그곳에서 둘은 요리해 먹고, 좋아하는 비디오를 밤새워 같이 보고, 둘의 과거 연애사를 이야기하며 즐겁게 지낸다. 어느 날 아침, 문이 닫혀있는 것을 보고 잉그리드는 마사가 죽은 줄 알고 숨이 막히는 고통을 느끼지만 실은 바람에 문이 닫힌 것이었다. 울고 있는 게임룸 토토를 본 마사는 게임룸 토토가 자신의 죽음을 얼마나 슬퍼하는지를 느낀다.
잉그리드가 외출했을 때를 디데이로 잡은 마사는 한 장은 게임룸 토토에게, 한 장은 경찰에게 유서를 쓰고, 화장을 하며 립스틱을 짙게 바르고 노란 외출복을 입은 후 약을 먹고 테라스의 녹색 선베드에 누워, 지는 햇빛을 받으며 마지막을 맞는다. 돌아온 잉그리드는 닫힌 문을 보고 조용히 테라스에 나가 게임룸 토토의 모습을 확인하고 911에 신고한다.
경찰에서는 잉그리드가 죽음을 방조한 것이 아닌가 의심해서 조사하지만, 마사가 미리 치밀하게 준비한 덕에 밝히게임룸 토토 못한다. 그녀가 편지에서 부탁한 대로 딸에게 연락하자 마사를 꼭 닮은 딸 미셸이 오고, 그녀는 엄마의 냄새를 맡으며 엄마가 쓰던 침대에서 하룻밤을 보낸다.
다음날 아침, 딸은 엄마가 누웠던 초록색 선베드에 눕고 잉그리드도 옆의 빨간 선베드에 누워 서로를 바라본다. 이때 눈이 내린다. 제임스 조이스가 ‘The Dead’에서 눈을 보며 “모든 산 자와 죽은 자 위로 눈이 내린다.”라고 했던 것처럼, 수영장 위로, 함께 걷던 숲길 위로, 마사의 딸과 잉그리드 위로 눈이 내린다.
누구나 죽음은 두렵다.
그러나 우리는 생명은 유한하며 모두 죽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순서가 다르고 조금 나중일 뿐 자신에게도 어김없이 죽음은 찾아온다. 그러니 가족이나 게임룸 토토의 죽음을 보며 멀찍이 떨어져서 슬퍼하는 것은 우스운 짓이다. 얼마 뒤 나의 차례가 올 것이기 때문이다.
마사는 열정을 불태우며 인생을 산 사람이어서 여한은 없지만, 마지막 순간에 고통이 자신을 무너트리는 것을 두려워한다. 마지막 단계가 되니 체력도 약해져서 글을 쓰는 것도 책을 읽는 것도 음악을 듣는 것도 여의치 않다. 그녀의 귀를 괴롭히지 않는 소리는 자연에 사는 새의 노래뿐이다. 그래서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명료한 의식으로 즐겁게 지내다가, 죽음이 그녀를 덮치기 전에 스스로 자기의 삶을 마감하고 싶어한다. 아름다웠던 삶을 오랜 게임룸 토토와 이야기하며 떠나고 싶어서, 영혼을 나눌 수 있는 게임룸 토토 잉그리드에게 동행을 부탁한다.
잉그리드는 존재가 사라지는 것을 유난히 무서워하는 사람이지만 게임룸 토토의 마지막 길을배웅하기로 한다.
영화에서 제일 부러웠던 것은, 마지막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나눌 수 있는 게임룸 토토가 옆에 있다는 것이었다. 그것이 배우자일 수도 있고 자식일 수도 있지만, 특히 인생을 관통하는 게임룸 토토가 긴 여행을 배웅해 준다면 외롭지 않게 떠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의 마지막 순간에 부르고 싶은 게임룸 토토, 또는 마지막 순간에 내가 같이 있어줄 수 있는 게임룸 토토가 있는가, 있다면 누구인가를 생각하게 했다.
영혼의 단짝인 두 게임룸 토토 마사와 잉그리드는 서로를 보완할 수 있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기자와 작가란, 사실을 바탕으로 글을 쓰는 사람과 허구를 바탕으로 글을 쓰는 사람, 직접 경험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과 조용히 감정을 키우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아마도 두 게임룸 토토는 자신의 내면에 억압한 측면을 상대방에게서 발견하고 진정한 자기를 통합해 나갔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둘은 같은 방에 머물지는 않는다. 자기만의 방에서 지내며 옆방에 존재하는 사랑하는 게임룸 토토를 느끼고 자기를 확장한다.
마사는 자신이 위험을 무릅쓰고 취재한 종군일기를 게임룸 토토에게 주며 소설로 완성해 주기를 바란다.
잉그리드는 마사가 품지 못했던 딸을 남겼을 때 게임룸 토토와 꼭 닮은 그녀를 받아들이기까지 한다.
마사가 햇빛 아래 누워 저녁 바람을 맞으며 삶을 끝냈을 때, 잉그리드는 게임룸 토토의 영혼을 자신의 내면에 받아들인다. 그녀의 마음의 은유인 집에는 마사가 가득하다.
제임스 조이스의 글처럼, 눈은 산 자에게도 죽은 자에게도 내리며 둘의 영혼을 감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