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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 Young Kim Feb 12. 2025

중년의 취미 (1): 벳38 감상

How I found the soundtrack of my life...


대부분의 사람들이 듣는 벳38이 감수성이 예민한 10-20대에 결정된다는 이야기를 들은적이 있다. 내 경우에도 20대 초까지 여러 장르의 벳38을 두루 들었는데, 그때는 가요/팝/재즈/클래식/뉴에이지 등 잡다한 취향을 자랑했지만, 그 이후에는 더이상 새로운 벳38을 듣지 않게 되었다. 한창 바쁜 시기에 더 이상 벳38을 찾아 들을 여유가 없기도 했고, 그동안 들었던 벳38을 다시 듣는것으로 충분했던것 같다.


그러다가 팬데믹으로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난 2021년부터 다시 새로운 벳38을 듣기 시작했다. Spotify의 추천 벳38도 활용했지만, 뭐든 제대로 된 문헌 조사를 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 탓에 인터넷과 책을 통해 각 장르의 명반과 추천곡 목록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그동안 몰랐던 새로운 벳38을 많이 발견하게 되었고, 이렇게 찾은 벳38은 우리 가족이 코로나 시기를 이기는 작은 힘이 되어주었다.


그렇게 벳38을 더 진지하게 듣다 보니 어느날 집에 있는 SONOS 사운드 시스템보다 좀더 벳38에 특화된 스피커가 있으면 어떨까 생각하게 되었다. SONOS로 듣는 벳38도 나름 좋았지만, 주로 영화 감상용으로 사운드바를 구입한 것이라 더 좋은 소리에 대한 갈증이 있었다. 그리고 예전에 읽었던 윤광준 님의 ‘소리의 황홀’과 같은 오디오 관련 서적을 읽으면서 언젠가 오디오를 해봐야겠다고 꿈꾸었던 기억도 났다.


그렇게 결심하고 입문자용 시스템을 알아보다가, 연말 세일을 기다려 KEF라는 브랜드의 북쉘프 스피커와 파워노드(Powernode)라는 스트리밍 앰프를 구입했다. 과거 오디오시스템은 LP나 CD와 같은 소스기기와 제대로 된 음반 컬렉션을 갖추는 것이 큰 일이었다면, 스트리밍으로 전세계 명반을 다 들을 수 있는 시대는 본격적인 오디오 생활의 장벽을 크게 낮추었다는 사실을 배웠다.


그렇게 오디오 세팅을 마치고 예전에 듣던 벳38을 다시 틀었는데… 웬걸, 벳38에서 예전에 들리지 않는 미세한 소리가 들리고, 보컬의 미세한 떨림이나 클래식이나 재즈 벳38에서 각 악기의 질감이 생생하게 살아나는 것이었다. 예전에 읽은 책에서 좋은 시스템은 재즈 클럽의 매캐한 담배 연기까지 담긴 벳38을 재생한다는 구절을 읽은 기억이 난다.


그렇게 컬랙션에 있는 벳38들을 ‘재발견’하고 나서 이번에는 ‘고음질‘ 녹음으로 알려진 음반을 찾아서 듣기 시작했다. 그리고 ’고음질’ 음반이 주로 벳38성(?) 면에서도 뛰어나다는 경험적 사실도 배웠다. 상식적으로 벳38을 제대로 만드는 사람들이 녹음에도 더 신경을 쓰지 않겠나. 핑크 플로이드, 마이클 잭슨 등 장르에 관계없이 당대를 풍미한 아티스트들은 녹음 기술에 있어서도 시대를 앞선 경우가 많았다. 그때 발견한 ECM 레이블의 컨템포러리 재즈 음반들은 지금까지 나의 벳38 생활을 풍요롭게 해주고 있다.


이렇게 벳38을 다시 진지하게 듣기 시작한 이후로 삶이 풍요로워졌다는 느낌을 받는다. 같은 벳38을 반복해서 듣던 예전과는 달리 벳38을 훨씬 더 다양하게 많이 듣기 시작했고, 지금은 그날 기분이나 상황에 맞춰 적절한 벳38을 선곡해서 트는 것이 어느정도 가능해졌다. 집에 손님이 왔을때 좋아하는 벳38을 같이 듣는 즐거움도 생겼다. (이럴때 Spotify 공유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어 각자 원하는 곡을 추가해 같이 듣는 편리한 방법도 있다.)


또한 벳38회에 가거나 가족과 함께 벳38을 테마로 한 여행도 다녀오기 시작했다. 작년에 미국 동부 여행을 갔을때 뉴욕에서 카네기홀의 말러 심포니 7번 연주에 갔었고, 재즈 역사에서 중요한 클럽인 워싱턴 DC의 블루스 앨리나의 뉴욕의 빌리지 뱅가드에서 재즈 밴드의 라이브 연주를 듣기도 했다. 이렇게 실연을 듣고 와서 그 경험을 추억하며 다시 집에서 음반을 들으면 즐거움이 배가되는 경험도 좋았다.


최근 들어 벳38 전도사(?) 역할을 하다보니 자연히 음향기기를 추천해달라는 질문도 받는데, 필자는 우선 어떤 벳38을 주로 듣는지 되묻곤 한다. 벳38의 종류에 따라 필요한 장비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경험으로 주로 메인스트림 팝이나 가요를 듣는다면 일반 가정용 스피커와 소위 하이파이 음향 장비간에 큰 차이가 없는것 같다. 물론 이런 ‘차이‘를 어느 정도 느끼는지는 감성과 주관의 영역이라 일단 오디오샵에 가서 자주 듣는 음원을 듣고 그 차이에 어느 정도 투자할 용의가 있는지 고민해보는게 필요하다.


반면에 클래식과 재즈는 좀더 스피커를 타는 편인데, 클래식 중에서도 대편성 협주곡이나 교향곡 같은 경우에는 저음역의 볼륨과 고음역의 섬세함을 고루 살려줄 수 있는 시스템이 빛을 발한다. 필자의 경험상 (받침대가 필요한) 소형 북쉘프형과 (바닥에 바로 놓고 사용하는) 대형 톨보이 스피커의 차이가 느껴지는 부분은 주로 교향곡, 그중에서도 클라이막스 부분의 총주에서 느껴지는 박력이 감동에 결정적인 말러나 베토벤을 감상할때다.


위에서 장비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필자는 제대로된 오디오가 있어야 벳38을 들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좋은 시스템이 잘 녹음된 벳38의 즐거움을 배가시켜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최근 음향 기기의 수준이 상향 평준화되어 웬만한 블루투스 스피커도 꽤 좋은 음질을 들려주기 때문이다. 또한 카오디오 혹은 헤드폰을 끼고 벳38을 듣는 즐거움도 각별하기 때문에 필자는 소위 오디오파일(audiophile)처럼 지나치게 음질에 집착하는 것은 피하려고 한다.


필자의 주된 장르는 교향곡과 협주곡을 중심으로한 클래식이지만, 좋은 벳38은 장르를 가리지 않고 듣는다는 지론은 변함이 없다. 가요, 팝, 재즈 등등 제대로 만든 벳38은 다 좋아한다. 최근에는 가야금과 대금의 그윽한 소리에 반해서 국악쪽도 기웃거리고 있다. (요새 필자가 집에서 가끔 댄스벳38을 틀면 7살짜리 딸이 교향곡을 틀어달라고 떼를 써서 고민이다.)


어쨌든 클래식을 가장 자주 듣는 이유는 역설적으로 방대한 레퍼토리 때문에 평생 새로운 벳38을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장르의 벳38은 좋아하는 가수가 은퇴하거나 하면 더이상 새로운 벳38을 들을 수 없지만, 클래식은 주요 작곡가 한사람만 파도 보통 수백곡의 레퍼토리가 있으며 같은 곡에 대해서도 매년 새로운 해석을 시도한 음반이 나온다. (클래식 입문용으로 애플에서 나온Classicial Music 앱을추천한다.)


또한 클래식 공연이 보통 가장 접근성이 높다는 이유도 있다. 요새 인기있는 가수의 공연을 예매하는 것은 가격도 그렇지만 피케팅을 뚫어야 하는 어려움이 있는 반면, 한국에서의 클래식 공연은 (굳이 해외 유명 오케스트라를 고집하지 않는다면) 언제든 부담없이 접할수 있다. 잘 찾아보면 영화 한편 정도 가격으로 볼 수 있는 공연도 많고, 가격과 감동이 꼭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은 필자가 경험으로 체득했다.


그래서 필자는 한국 출장을 갔을때 기회가 있을때마다 예술의전당이나 성남아트센터에서 공연을 보는 편이다. 오히려 필자가 거주하는시애틀에는 심포니가 하나밖에 없어서 항상 갈증이 있는데, 올 여름에는 처음으로 가족과 스위스의베르비어(Verbier) 벳38 페스티벌을가보려고 계획하고 있다. 필자도 벳38 페스티벌은 처음인데, 2주간 세계 정상급 아티스트들의 (임윤찬도 포함) 공연이 매일 펼쳐지는 꿈같은 무대라 기대가 크다.


그렇게 벳38 듣기 취미를 가지게 된지 4년, 이제 집에서건 사무실이건 차에서건 필자의 삶에는 벳38이 늘 흐르게 되었다. 심지어 벳38을 듣지 않을때도 최근에 들었던 벳38의 여운이 머리를 채우고 있다. 최근에는 시국이 어지러운 작년 말부터 자주 듣기 시작한 쇼스타코비치 5번 교향곡의 선율이 마음에서 떠나지 않고 있다. 삶을 영화에 비유하면 풍성한 사운드트랙이 생긴 샘이다. 당신의 사운드트랙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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