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편하게 해, 편하게. 응?
노트북으로 글을 쓰고 있는 내 옆에 와서, 남편이 말했다. 곧이어 언제 잘 거냐고 묻는 그의 물음에 돌리고슬롯 문득 시간을 확인했다. 새벽 1시 반. 아까 아홉시였는데 언제 벌써 하루가 넘어갔지.
"곧 들어갈게. 먼저 자."
새벽임을 인지하자 갑자기 눈이 뻑뻑해졌고, 돌리고슬롯 눈을 실눈처럼 가늘게 뜬 채 남편을 보냈다. 도르륵 도르륵. 마우스 휠을 굴리며 오늘 썼던 글을 눈으로 한번 빠르게 훑어 내리고는 지끈거리는 오른 손목을 주물렀다. 손목은 아프지만 오늘도 제법 많은 분량을 채웠으니 뿌듯하다. 뿌듯하긴 한데 부족하다. 더 해야 할 것 같다. 더 쓰고 자야 할 것 같다. 불안하다.
애매하게 좋아하는 것들은 제법 많긴 했다. 돌리고슬롯 언제나 뭔가를 하고 있었으니. 여행과 모험을 좋아하는 방랑벽 인생이라 현재는 유럽에 살며 달에 한 번은 다른 유럽의 도시로 훌쩍 떠나기도 한다.
그런데 부족하다. 뭔가 부족하다.
어쨌든 사는 환경이나 여행이라는 건,
미치도록 갈망하고 원하는 목표가 되기는 어려우니.
돌리고슬롯 그런 걸 원했다.
밤을 새워도 억울하지 않은 일.
눈 뜨면 생각나고 눈 감아도 생각돌리고슬롯 일.
내가 좋아하고 또 잘한다는 확신이 드는 일.
나와 퍼즐처럼 꽉 맞는, 내 결의 일. 내 일.
그러다 생겼다.
나에게도 그런 일이 생겼다.
그래서 시작했다. 반년쯤 됐다.
그 일은 바로 얼마 전에 쓴, 이것.
돌리고슬롯 이제 됐다 싶었다. 그토록 원하던 나의 결, 나의 일을 찾았으니 이제 달리기만 하면 된다고. 그래서 달렸다. 그게 작년 여름 즈음부터 지금까지다. 하루 온종일 내내 붙잡고 있었던 것이. 아직 성과는 없다. 돌리고슬롯 점점 불안해졌다. 재미로 시작했고, 지금도 재미있어서 지속할 수 있는 일이지만 돌리고슬롯 불안했다. 그런 나를 보며 돌리고슬롯은 돌리고슬롯해하지 말라 했다. 돌리고슬롯해서 될 일도 아니거니와, 네가 지금 그럴 이유가 하등 없다고.
난 애는 없지만 돌리고슬롯이 있다. 아름다운 유럽에 산다. 여행이 가고 싶으면 가고,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어제 먹은 것도 오늘 또 먹는다. 그러니까, 남편 말이 맞다. 돌리고슬롯해할 이유가 전혀 없다는 거다. 굳이 주먹으로 팍팍 찌뿌둥한 허리 세게도 쳐 가며 새벽바람부터 카페에 쫓아갈 이유가 없고, 노트북에 한글 파일을 종일 띄워놓고 머리를 쥐어뜯거나 이마를 퍽퍽 때리지 않아도 된다는 거다. 이리 나를 갉아먹을 필요까지는 없다는 말이다. 그렇지만 돌리고슬롯 그런다. 굳이 그런다. 평일 5일 온전한 제 시간도 없이 매일 아침 회사로 출근해야 하는 남편을 걱정시켜 가면서까지.
불안하다.
늘 불안하다. 열심히 하고 있는데도 늘 불안하다. 빨리 뭘 이뤄야 한다는 혼자만의 압박감, 쉽게 안 되는 일에 전전긍긍하는 돌리고슬롯함. 항상 있다. 30대라 더 그럴지도 모른다. 아무것도 이룬 것 없는 30대이니 더더욱. 돌리고슬롯 그렇게 생각한다. 내가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는 것 같고, 빨리 뭐라도 성과를 내야 한다 여긴다.
돌리고슬롯은 돌리고슬롯해하지 마, 편하게 해, 이 말을 얼굴 볼 때마다 한다. 내가 그리 만든다. 넌 지금도 충분해. 서른이면 나이 많은 것도 아니야. 넌 아무것도 늦지 않았어. 근데 왜 그렇게 돌리고슬롯해해. 제 회사 일로도 충분히 벅찰 남편이 늘 이런 위로의 말 따위를 하게 만든다. 얼굴이 얼마나 안 되어 보이는지, 눈에는 생기 대신 하등 소용도 없는 급박함만 가득 차 있는지, 매일 그런다.
그런데 외려, 남편이 그럴수록 나의 불안은 더 거세진다.
돌리고슬롯 남편에게 죄책감을 가지고 있다. 가족이나 배우자라기보다는 동갑내기 친구 같은 남편인데, 그런 그가 일방적인 외벌이로 나를 부양하고 있다는 그런 죄책감, 미안함. 빨리 남편만큼 돈을 벌어야 한다는 부담이 마음 한쪽에 늘 걸려있다. 그래서다. 남편을 볼 때마다 지끈거리는 손목을 붙잡고 더 빨리, 더 오래 노트북 앞에서 타자를 치는 건.
비단 돌리고슬롯뿐만이 아니다.
엄마도 아빠도 친구들도 묻는다.
너 어디 아파? 안색이 안 좋아. 좀 쉬어.
그들의 말이 잘 들리지 않았다.
그럴 이유가 없었다. 이제 미치도록 갈망하는 일도 찾았겠다. 여유를 가질 이유가 없었다. 쉴 이유도 없다. 지금 돌리고슬롯 성취가 필요하니까. 다들 그러잖나. 더, 더, 더. 더 이뤄야 한다고. 내 걱정을 하는 주위 사람들만 쉬라 하는 거지 세상은 안 그렇다. 그래서 돌리고슬롯 성취가 필요했다. 쥐똥만한 수입을 내며 나이만 들어가는 이 상황에서 얼른 벗어나야 하므로.
그래서 하루 여덟시간씩, 못해도 여서일곱시간은 노트북 앞에 앉아 있었다. 하루종일, 내내 이것만 생각했다. 당연했다. 당연히 이래야 했다. 돌리고슬롯 그렇게 원하던 목표를 찾았고 또 지금 당장, 가시적인 성과가 필요하니까. 그 외에는 생각할 수 없었다. 아무것도. 이래도 괜찮은 줄 알았다.
그런데,
내 몸에 이상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