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환오 Apr 24. 2025

돌리고슬롯은 사장님의 아빠였다.

돌리고슬롯까지 계신 줄 모르고 들어간 회사.

면접 볼 때도 그랬고 돌리고슬롯에 대한 전반적인 수입구조만 알고 입사했다.

입사하고 나서 인수인계받는 동안 이 돌리고슬롯에는 사장 위에 돌리고슬롯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돌리고슬롯은 사장의 아버지.


그렇다. 이 돌리고슬롯는 돌리고슬롯의 지분이 상당히 컸던 가족경영이었다.

당시 돌리고슬롯 할아버지는 매일 출근을 하지는 않으셨지만

출근할 때마다 그 넘치는 카리스마가 가히 압도적이었다.

언제나 진한 스킨향을 품기고 멋진 슈트로 나이 듦을 잊게 만드는 그를 보면

역시 나이 많아서 돈이 있어야 하는구나를 느꼈다.

가끔 그의 방에서 방귀 소리도 크게 들렸는데 처음에는 당황스러웠지만,

그래, 내 돌리고슬롯서 내가 방귀 뀌는데 네가 무슨 상관이냐!

방귀까지위풍당당하게 느껴졌다.


늙으면 사람이 초라해 보이는데, 돈이 있으면 초라해 보이지가 않다.

슬프지만 그래서 우리는 돈을 벌어야 한다.


2억 가까이 되는 벤츠를 수행기사도 딸린 채로 그가 사무실로 출근할 때면

나는 할아버지 뒤를 쫓아 재빠르게 무슨 차를 드실 건지 여쭤본다.

점심은 소화가 잘 되는 죽 종류를 드셨었다.

그가 오면 차와 점심을 챙기는 게 내 업무였다.


돌리고슬롯 할아버지가 출근하는 날에는 내 전화기가 불이 날 정도로 바쁘다.

돌리고슬롯에 걸려오는 대표전화를 받는 것보다 할아버지의 잔주문이 많기 때문이다.

차부터, 점심 메뉴, 그리고 구둣방까지.

그의 요구를 들어줘야 하기에 나는 내 일을 정작 못할 때도 많았다.

구인란에 돌리고슬롯 비서 겸용이란 말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래, 일일이 그런 것까지 나열하면 누가 이 돌리고슬롯에 들어오겠누.


아직도 기억나는 에피소드 하나가 있다.

손님이 와 있어서 차를 내드리고 나가는데 찻잔이 심하게 부딪혀서 내려졌나 보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었는데 돌리고슬롯 할아버지는 순간 급발진을 하며 나를 다그쳤다.

왜 그렇게 세게 내려놓냐며 버럭 하는 할아버지께 그저 죄송하다는 말만 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는 내가 나갈 때 천천히 뒤로 나가라고 요청을 했다.


응? 등을 보이게 하고 나가지 말라고?

사극드라마에 나오는 하녀들이 문 앞에까지 뒷걸음치듯이 가란 말인가.

그 말을 듣고 마이클 잭슨처럼 문워크를 하면서 후진을 할까 생각했었다.

그럼 할아버지도 빵 터지지 않을까 나의 상상력이 저 우주 끝까지 날아간다.

그 뒤로는 할아버지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지 않기 위해 최대한 잔도 사뿐히 내려놓고 나갈 때도 두세 걸음은 후진을 하고 등을 돌리고 나갔다.


그런 할아버지와 사장은 부자 관계이지만 돌리고슬롯에서는 철저하게 각자의 직함을 씌운 채로 나에게 서로의 지시를 했다.

굳이 서로에게 직접 연락을 안 하고 나를 통해서 연락을 한다.


“미스 최, 돌리고슬롯 방에 있나?”

“최대리, 돌리고슬롯 방에 계셔?”


그럴 때면 속으로 그냥 당신들 둘이서 통화하면 되지 않아요?라는 물음표가 백만 개쯤 올라오지만

그래, 여긴 돌리고슬롯잖아 라며 애써 합리화를 시켰다.

누가 보면 대기업인줄.

나도 모르게 썩소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일주일에 두세 번 출근하는 할아버지는 내가 10년 기간을 채우고 퇴사를 앞두자나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다.

“미스최, 우리는 가족이야. 알지?”

아무래도 내가 당신들의 개인정보를 너무 많이 알고 있기에 노파심이 들었나 보다.

우스갯소리로 큰 돌리고슬롯들은 비서가 관두면 따로 천만 원씩은 챙겨둔다더니 괜히 나온 말이 아닌가 보네 했다.

나는 돌리고슬롯를 퇴사함과 동시에 그들의 개인정보는 머릿속에서 바로 삭제했다.

그걸 기억해서 어디에 쓰겠는가.


걱정하지 마세요 할아버지.

그리고 가족이 아니라 저는 당신들 돌리고슬롯에서 그냥 소모품이었던 걸요.

그걸 깨닫는데 10년이란 세월이 걸렸답니다.


돌리고슬롯에서 뼈 묻을 각오로 일했었는데 이 글을 읽으시는 독자분들은 그러지 마시길.

결국 돌리고슬롯는 나에게 주는 돈만큼 아니, 그 이상 뽕을 뺄 정도로 일을 시킨다.

그러니 돌리고슬롯에 헌신 대신, 내가 숨 쉴 수 있을 정도만 일을 하는 걸 추천드린다.

헌신하면 헌신짝 된다는 명언은 비단 연애 관계에만 통하는 것은 아니기에.




[환오 연재]


월요일 오전7: [주부지만 요리를 못하는 요똥입니다]

화요일 오전7: [!나랑 친구 해줄래?]

수요일 오전7: [환오의 도전, 엄마의 유산 2]

목요일 오전7: [공대생이지만 경리만 10년 했습니다]

금요일 오전7: [거북이 탈출기 두번째 이야기]

토요일 오전7: [구순구개열 아이를 낳았습니다]

일요일 오전 7시 : [환오의 도전, 엄마의 유산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