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보카지노 씨의 일기
세상에는 땅 위에 살고 있는 자와 땅 아래에 살고 있는 자가 존재한다. 어디에 살고 있는가에 따라 집으로 들어설 때 만날 수 있는 공간의 개수가 달라진다.
땅 위에 사는 사람에게는보통 두 개의공간이 주어진다. 하나는현관문을 열기 바로 전, 현관문앞에 존재하는 공간이고,두 번째 공간은 현관문을 열면 나타나는 신발을 벗어 놓을 수있는공간이다. 두 개의공간을 가진 이들은 첫 번째 공간을 지나 현관문을 열고, 두 번째 공간에 신을 벗어 놓은 후 자신의 방으로 들어갈 수 있다.
하지만 지하방은 현관문 안에신발을 벗어놓을 수 있는 공간이없다.이런 공간의 차이로지하방에 사는 이들은현관문 앞에 신발을 벗어 놓는다. 지하방에 살다 보면 문 앞에 가지런히 놓인 신발만으로 누가 집에 있는지 충분히 알 수 있다.
"누가 와 있나 보다."
금옥 씨는 현관 앞에 못 보던 신발이 놓여있는 것을 보며 현정이에게 말했다. 현정은 현관 앞에 놓인 민트색줄무늬가 가지런히 그려진 신발을 보고 종근이 오빠가 놀러 왔다는 것을 알았다. 매일 같이 종근이 형제와 함께 노는 현정에게는 종근 오빠 신발은 익숙했다.
브라보카지노 씨와 현정이가 문 앞에 신발을 벗어 놓은후 현관문을 열었다. 단 하나의 문이 열리자마자식탁에 둘러앉아 있는 연이, 종근이, 분선씨가 한눈에들어왔다. 문 하나만 열어젖혔을 뿐인데 사적인 공간이 적나라하게 보였다.
" 이야, 왔냐. 아직 밥 안 묵었지? 밥 묵으라. 현정이도 엄마랑 같이 왔구먼."
분선씨가 막 수저를 뜨다 말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막 일하고 들어오는 딸을 본 분선씨는 갑자기 분주해졌다.
"엄마아,언니~"
엄마와 브라보카지노을 보자마자 연이가 브라보카지노 씨에게 와락 안겼다. 연이는 엄마 어깨 뒤로 보이는 브라보카지노을 할 말이 많다는눈으로 바라보았다. 연이가 브라보카지노 씨에게 안기자금옥 씨 옷깃에 묻어 있는 초봄 냄새가 작은 방 안에 살포시 퍼져 나갔다. 연이는 브라보카지노 씨를꼭 안았다.동시에브라보카지노을아까보나 더 자세히응시하기 시작했다.
"야야, 어서 손 씻고 와서 밥묵자. 우리 이쟈 밥묵을 라 했지. 그러도 보름이라고 일찍 왔냐. 니도 참 먹을 복이 있다. 금옥아."
분선씨는 딸 금옥 씨가 배가 고플까 싶어 조바심이 난 것 같았다. 바로 뒤 돌아 그릇이 쌓여 있는 싱크대에서 금옥 씨와 현정이가 먹을 밥그릇과 국그릇을 재빠르게 찾았다. 비어 있었던 그릇에는 땅콩과 완두콩, 노랗게 삶은 밤이 가득 올라간 밥이 수북하게 들어찼다. 분선씨는 아직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국 냄비를 국자로 휘휘 저었다. 갈색 된장 국물 밑에 가라앉아 있던 익은 시금치가 국물 위로 덩실 떠올랐다. 김이 한껏 나는 따뜻한 국물과 건더기를 국그릇에 푸짐하게 담았다. 네 개의 빈 그릇 안에 보름에 먹는 오곡밥과 시금치 된장국이 금세 그득하게 채워졌다.
분선씨 옆에 앉아 있던 종근이가 브라보카지노 씨를 보고자리에서 일어나 인사했다. 예의 바른 종근이는 금옥 씨가 오리라 생각 못했는지 머쓱하게 웃어 보였다.
"어머~ 종근이 왔구나. 어서 밥 먹어. 아줌마도 손 씻고 와서 먹을 테니. 앉아서 많이 먹어."
어서 앉아 먹으라는 분 선씨의 성화에 금옥 씨와 현정은 싱크대 물로 손만 씻고 상 앞에 앉았다. 별거 없다며 손을 내저어 보이는 분 선씨 말과 다르게 식탁에는 진수성찬이 펼쳐져 있었다. 크지도 않은 상에 분선씨가 정월 대보름이라고 준비한 음식들로발 디딜 틈이 없었다. 호박나물, 연근나물, 고사리, 도라지, 무나물 이렇게 다섯 가지의 나물이 준비되어 있었다. 나물들은 그냥 참기름에 무쳐서 낸 것이 아니었다. 들깨를 믹서로 갈아 회색 빛 소스로 만든 후 팬에 나물과 함께 뜨뜻하게 데쳐 내었다. 그래서 나물에서는 유독 고소하고 짭짤한 냄새가 풍겨왔다. 거기에 밥 위에는 쌀보다 많은 잡곡들이 있었다. 생밤을 어찌나 많이 넣었는지 압력솥 안에서 곱게 익은 노란 밤이 찰밥이 주는 윤기를 먹어 반짝였다.
"야~ 별거 없다. 어서들 묵으라."
금옥 씨와 현정이는 분선씨가 준비한 다채로운 오곡 음식에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 분선씨는 입을 쩍 벌리고 있는 이들에게 구경만 말고 어서 먹으라고 손짓했다. 이미 점심도 거르고 일하다가 돌아온 금옥 씨 수저가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예전 고창에서 먹던 그 맛들이 음식에서 묻어났다. 엄마 분선씨 손맛은 여전했다. 그런데 현정은 무엇이 불편하지 젓가락만 깨작깨작 할 뿐 그릇에 놓인 밥이 줄지 않았다.
"현정아, 많이 먹어."
잘 먹지 못하는 현정이가 신경 쓰였는지 금옥 씨가 한마디 던졌다.
'네. 엄마."
현정이는 엄마 이야기에 더 힘을 내서 먹어 보려 했지만 밥이 영 목구멍 안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계속 아까 일어났던 쥐불 사건이 현정이를 사로잡았다. 현정이는 여전히 자신이 저지른 쥐불 사건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마치 그 사건이 가져올 후 폭풍을 예상이라도 하고 있듯.
"쾅쾅."
모두들 분선씨가 차려준 밥을 거의 다 비울 때쯤이었다. 시간은 저녁 9시를 향해가고 있었다. 갑자기 현관문 두드리는 소리가 밤공기를 갈랐다. 모두들 동시에 문쪽으로 눈을 돌렸다.
'누구지?'
분선씨가 아범이 온 거 아니냐고 브라보카지노 씨에게 물었다. 하지만 아빠 철이는 저 아래 서산에서 발생한 살인 사건 때문에 2주 넘게 잠복근무를 간 상태였다. 철이라면 저렇게 문을 세차게 두드릴 이유도 없었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금옥 씨가 자리에 일어서서 현관문을 열었다.
"어이쿠, 안녕하십니까. 아직 저녁 드시고 계셨네요. 형수님, 접니다. 저."
문을 열자 시커먼 옷을 입은 남자 둘이 헤벌쭉 웃고 있었다. 철이와 힘께 일하는 김형사와 박형사였다.
"어머, 이 밤에 무슨 일이에요. 형님은 서산에 사건이 있어서 갔는데."
금옥은 김형사와 박형사의 갑작스러운 방문에 놀라 물었다.
"에이~ 형수님도. 지나가다가 들렸어요. 오늘 저녁에 형수님네 집 앞 빌라 지하에서 불이 났거든요. 아~ 그것 때문에 말입니다. 신고가 들어와서 잠깐 순찰 왔습니다.
"네에? 불이요?"
빌라 지하 화재 사건을 모르는 금옥 씨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물었다.
"형수님, 모르셨어요? 아까 소방차 오고 난리도 아니었답니다. 그것 때문에 빌라 지하 집주인이큰 불이 날 뻔했다는 신고를 했어요. 오늘 정월 대보름 아니었습니까. 아이들이 신나서 쥐불놀이 하다가 모르고 거기로 쥐불을 던졌는가, 아무튼 쥐불 때문에 지하에 살짝 불똥이 튀었나 봅니다. 아까 가서 살펴보니 누가 깔끔하게 꺼서 문제없어 보이던데.거기 사는 사람이 경찰서로 달려와 난리도 아니었습니다."
현정은 고개 숙여 밥을 먹다 말고 금옥 씨와 김형사가 나누는 대화를 엿듣고 있었다. 쥐불이라는 이야기에 현정은 살짝 고개를 숙여 엄마 어깨너머로 보이는 김형사 아저씨 얼굴을 슬쩍 바라보았다. 그 순간 김형사와 눈이 마주쳤다. 형사가 가지고 있는 특유의 날카로운 눈빛이 현정이의 눈빛을 강하게 강타했다. 거기다 김형사 얼굴에 새겨진긴 흉터 때문이었을까, 현정은 소스라치게 놀라 다시 고개를 푹 숙여 허겁지겁 밥을 먹기 시작했다.
'어떡하지... 어떡하지...'
분선씨가 밥을 먹다가 일어나
"어이구, 선상님들. 밥은 드셨는가요?"
헤 웃으며 말했다.
"이리 들어와 오곡밥 한 끼 해요. 밥 묵고 배가 뜨심 해야 범인을 잡든, 뭐시라도 하든 할 거 아니유."
분선씨가 현관문 앞으로 달려가 김형사와 박형사 손을 잡아끌었다.
문 안으로 들어오는 김형사와 박형사 뒤로 검은 하늘 위해 떠 있는 노란색 둥근달이 유난히 밝게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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