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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리티 Apr 14. 2025

서촌알파벳 토토 만난 너에게

알파벳 토토의 집에 서 마주친 것들

이 알파벳 토토가 우리 동네에 있었으면 좋겠다.


살고 싶은 동네는 의외로 단순하게 다가온다. 이런 바람이 그 시작은 아닐까.

몇 년 전 알파벳 토토 '프로젝트 29'라는 카페가 있었다. 한창 서촌 붐이 일던 2010년대 중반이었나. 통인시장을 나와서 쉴 곳을 찾다가 우연히 그곳을 마주쳤다. 빨간 벽돌로 지어진 낡은 건물 앞에 놓인 작은 입간판과 두 어 개의 테이블이 여기가 카페라고 말을 걸고 있었다.화려하지도 요란하지도 않은 입구를 한번 들어가 본다.

창가를 향한 긴 바 자리를 지나자 벽에 붙은 여행지의 스냅사진들이 눈에 들어왔다.책장에 꽂힌책들 사이 타자기나 필름카페라 같은 빈티지 소품들에서 시선을 돌리면카페 한쪽을 차지하는 큰 테이블에는 싱그런 생화가 늘 차지하고 있다.수북한 안개꽃 사이로 맞은편에 앉은 사람들의 얼굴은 자연스럽게 가려졌다. 카페 이름이 찍힌 투박한 머그잔에 나오는 아메리카노는 깔끔했고, 유행가가 들리는 적은 없었다. 노트북을 펼쳐서 일을 하면 집중이 잘 되어서 동네에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종종 했다.볕 좋은 날 폴더문을 활짝 열어두면 거리와의 경계가 사라진다. 일부러 서촌을 찾아온 나들이객도 보였지만 슬리퍼를 신고 강아지와 산책 나온 주민들이 이따금씩 커피를 사러 들르곤 했다. 언젠가 읽었던 책에서 보았던 '카페의 시간'이 그곳에 흐르고 있었다.


'그곳에 가면 외적으로나 내적으로나 바쁘지 않을 것 같고 시간이 빨리 흐르지 않을 것만 같다. 아니 실제로 시간이 멈추는 걸 직접 경험할 수 있을 것 같다.(...) 일단 카페의 종업원이 무언의 허락을 해준다. 커다란 몸짓으로 신호를 보내거나 굵은 목소리로 부르지 않는 한 그들은 손님에게 다가오지 않는다. 대신, 더블 에스프레소 잔을 만지작거리며 시간을 천천히 흘려보내면서 명상의 단계로 알파벳 토토가는 손님을 존중할 줄 안다. 이 세상에 이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다고 가정할 줄 안다. 그리고 이러한 손님이 게으르다거나 빈둥거리는 사람이라곤 단 1초도 생각하지 않는다.'


-<작가의 공간 중알파벳 토토, 에릭 메이젤


저자는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알파벳 토토이 제 자리를 찾는 장소를 말하고 있다.카페에 들어오는 손님에게는 멈춰진 시간이 주어지는 공간. SF영화처럼 각자에게 비눗방울처럼 투명한 막이 둘러져서 자신만의 세계로 채워진다. 여러 사람들이 몰려 웅성거리는 넓은 공간이었다거나 대로변에 자리했더라면 완성되지 못했을 시간. 아직 말해지지 못한 언어가 사람들 사이를 떠돌다가 자신의 주인을 찾아갈 것만 같다. 거대한 도로 위 차들과 인파들 사이로 흩어져버릴 단어들이 좁은 골목으로 들어와 바람처럼 기웃대는 상상을 해본다.

어디를 가도 마주치는 좁다란 골목이 이어지는 서촌이어서 가능하지 않았을까. 낯선 듯하면서도 알던 것 같은 기류는 시인들이 살던 동네에서 쌓여온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른다. 폴 오스터가 말한 대로 브루클린에서 시적 전통을 찾는다면 우리에게는 특히 서울에서도 서촌에서 그 흔적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오래전에 '말해지지 못한 그 언어'는 시인 이상의 집에 머물렀다. 이상은 1933년 즈음 서촌의 누하동 골목에서 스물셋의 봄을 맞았다. 그는 두 살 무렵 큰아버지에게 입양되어 서촌에서 살게 되었고, 유년기를 거쳐 23년간 머물렀다. 이런 성장배경이 더해져서 한옥과 골목길은 그의 작품세계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기와지붕이 보이는 작은 한옥과 낮은 담장으로 이어진 골목은 건축학도에게 공간에 대한 상상력을 불어넣었고, 뒤틀린 언어와 해체된 도시적 감각으로 되살아났다. 이 시기에 그의 발걸음은 건축가에서 작가로 옮겨가고 있었고 <오감도와 <날개를 집필하며 문단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일제강점기 경성에서 모국어와 정체성을 잃어가는 식민지 지식인으로서 그는 거리를 방황하며 도시를 새롭게 써나가고 있었다.


이상의 집은 이 시기에 그가 살던 곳으로 지금은 전시공간으로 쓰이고 있다. 지금의 한옥은 예전에 살던 집터의 일부로 복원되었으며 'ㄷ'자 모양 구조이다. 테이블 위에 놓인 이상의 사진, 작품, 엽서, 책들을 구경하다 보면 벽에 커다란 검은색 문을 마주하게 된다. 어딘가 육중하게 다가오는 큰 문이 무언가 턱 짓누르는 듯 막혀있다. 문을 열면 어두웠던 시대로 바로 알파벳 토토갈 것처럼 으스스하면서도 신비스럽다. 분명 열리도록 설계된 문일 텐데 단절을 떠올리게 된다. 이상의 시에는 거울이 흔히 등장하는데 소통에 대한 단절과 정체성 혼란의 심정들을 엿볼 수 있다.


서울속의나는참나와는반대요마는

또꽤닮았소

나는거울속의나를근심하고진찰할수없으니퍽섭섭하오.


-<거울 중알파벳 토토, 이상


거울 앞에서 서성이는 시인을 떠올려본다. 악수를 청해도 보고 귀를 들여다보기도 하지만 손에 닿는 것도 들리는 것도 없다. 굳게 닫힌 문처럼 막혀있는 시대의 거대한 힘 속에 개인은 작고 하찮아진다. 언어는 먼지처럼 갈 곳을 찾아 떠돈다.


계단으로 올라가는 통로는 또 다른 세상처럼 어둠이 차지하고 있다. 맞은편 벽에 프로젝터로 영상을 쏘고 있는다. 이상이 보냈던 알파벳 토토들이 슬라이드 위로 찍힌다. 현재의 알파벳 토토 위로 과거가 메시지를 보내고 그렇게 흔적들이 첩첩이 쌓여간다.

좁은 계단을 따라 올라간 옥상알파벳 토토는 기와지붕이 내려다보인다. 마당에는 선명한 빛이 만든 그림자가 진다. 이제 막 시작인 듯 알파벳 토토이 계속되었으면 했지만 여기까지다. 햇빛 사이로 인사말이 들린다.


안녕, 나는 아직 말해지지 못한 언어야.


알파벳 토토의 골목길은 그렇게 쓰인다. 나머지는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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