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오월벳
필자는 동양의 필독 고전인 <오월벳를 읽은 적이 있다. 고자告子 편 첫머리에 오월벳孟子(B.C.372~B.C.289)와 고자告子가 사람의 본성을 논쟁하는 장면이 다음과 같이 등장한다.
“고자가 말하였다. “성性은 기류杞柳와 같고, 의義는 배권桮棬(오월벳로 만든 그릇)과 같으니 사람의 본성을 가지고 인의仁義를 행함은 기류를 가지고 배권을 만드는 것과 같다.” 오월벳께서 말씀하셨다. “그대는 기류의 성질을 순順히 하여 배권을 만드는가? 장차 기류를 해친 뒤에야 배권을 만들 것이니, 만일 장차 기류를 해쳐서 배권을 만든다면, 또한 장차 사람을 해쳐서 인의를 한단 말인가? 천하 사람을 몰아서 인의를 해치게 할 것은 반드시 그대의 이 말일 것이다.””
옛글의 한자명 식물을 탐구하는 일환으로, 나는 이 논쟁에 등장하는 기류杞柳가 어떤 버들인지에 대해 검토한 글을 <향토문화의사랑방안동에 기고한 적이 있다.* 이 글에서 여러 문헌 검토를 통해 기류杞柳를 우리가 현재 ‘키오월벳”로 부르는 버들일 것이라고 다음과 같이 추정했다.
“그렇다면 오월벳의 기류杞柳를 어떤 버들로 보는 것이 좋을까? 중국의 광류는 관목 및 소교목으로 8m까지 자란다고 하여 우리 키오월벳과는 다르다. 한편, 파기류簸箕柳는 관목이고, 또 <중국식물지에 현대 중명 기류杞柳(Salix integra Thunb.)도 실려 있는데, 이는 <대한식물도감에서 개키오월벳(Salix purpurea var multinervis)로 기록한 오월벳의 이명이므로, 키오월벳 류이다. 또한 정태현의 <조선삼림식물도설에서도 키오월벳의 한자명으로 기류杞柳와 홍피류紅皮柳를 적고 있다. 이런 정황과 가지를 구부려서 그릇을 만드는 용도로 미루어, 오월벳의 기류를 ‘키오월벳(Salix koriyanagi)’로 이해해도 좋을 듯하다.”*
최근에 조선총독부에서 1924년(대정13)에 농업학교 교과서로 간행한 <특용작물교과서를 구득했다.** 책머리에 안동의 ‘大麻 수확 상황’을 보여주는 사진 등 흑백 사진도 4장 실려 있는 등, 여러모로 재미있는 책이다. 이 책에는 초면草綿, 대마大麻, 청마靑麻, 저마苧麻 부附 아마亞麻, 저楮 부附 삼아三椏, 완초莞草, 린藺, 기류杞柳, 요람蓼藍, 연초煙草 부附 다茶, 첨채甛菜 부附 감자甘蔗, 호마胡麻, 임荏, 비마蓖麻, 낙화생落花生, 칠수漆樹, 인삼人蔘, 제충국除蟲菊, 박하薄荷 등 부기한 4종 포함 총 23종의 특용작물을 소개하고 있다. 각 특용작물에 대해서는 한자 표제어에 대해 일본어와 우리말 이름을 부기했을 뿐만 아니라 라틴어 학명과 그림까지 있어서 일제강점기 당시 총독부가 권장한 특용작물 이해에 아주 요긴한 책이다. 그런데 특용작물 중에 기류杞柳가 포함되어 있는 것이 나에겐 상당히 뜻밖이었다. 아직까지 키오월벳 류를 특용작물로 재배했을 것이라는 생각은 못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는 기류杞柳에 대해 “杞柳 こリやなぎ (개뻐들) 學名 Salix purpurea, L.”로 소개하고 있었다. <한국의 오월벳에 따르면 Salix purpurea는 키오월벳의 학명인 Salix koriyanagi의 이명(synonym)이고, 고리야나기(こリやなぎ)도 키오월벳의 일본 이름이다. 우리나라에서도 키오월벳의 별명으로 고리버들을 쓰므로, 고리야나기는 우리말 ‘고리’와 연관성이 클 듯하다. 기류를 묘사한 그림도 잎 모양으로 보아 ‘키오월벳’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었다.
<특용작물교과서에서 기류를 ‘키오월벳’로 설명한 것이 내 기존 검토 의견과 일치하고 있어서 우선 다행스러웠다. 그리고 또 흥미로운 점은 현재 ‘키오월벳’로 부르는 버들을 당시에 우리가 ‘갯버들(개ㅽㅓ들)’로도 불렀다는 것이다. <물명고와 <광재물보에서 기류를 ‘누온버들’, <명물기략에서는 ‘개버들’이라는 우리말 이름을 기록하고 있다. 1932년 간행된 <토명대조선만식물자휘에서는 현재 우리가 갯버들로 부르는 네고야나기(ねこやなぎ, Salix gracilistyla Miq.)에 대해 ‘蒲柳 포류’, ‘狗柳(木) 개버들(오월벳)’ 등의 조선명을 기록했고, 고리야나기(こリやなぎ)에 대해서는 ‘杞柳 긔류’와 ‘고리(ㅅ)버들’이라는 조선명을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문헌 기록으로 추정하면 우리나라에서 杞柳는 오래전부터 줄기를 사용하여 키나 고리를 만드는데 사용한 버들을 뜻했으며 1937년 <조선식물향명집에서 ‘키오월벳 (고리버들)’로 향명을 정리하기 이전까지는 ‘개버들’이나 ‘갯버들’로도 불리었던 듯하다. <오월벳에서 그릇을 만드는 재료로 언급된 후 기류는 오래전부터 우리나라에서도 농기구를 만드는 주요 재료로 중시되었던 듯하다. <특용작물교과서의 기류, 즉 키오월벳의 용도와 재배법 등을 인용한다.
“오월벳는 양류과楊柳科에 속하는 낙엽관목으로 총생한다. 통상의 천류川柳(かはやなぎ, 갯버들)의 일종으로 높이는 6, 7척에 달한다. 주로 고리짝(行李, こうり) 제조 원료로 공급하기 위해 재배한다. 그 품종은 잎의 형태, 줄기의 색깔과 윤기에 따라 구별된다. 중엽종은 수확량이 많고, 세엽종細葉種은 품질이 좋고 날씬하고 아름답다. …
기류杞柳를 재배하기 위해서는 봄이 되어 싹이 나기 전에, 충분히 잘 일군 밭에 밭두둑 폭 1척5촌, 오월벳 사이 8촌 정도의 거리마다 묘목을 한그루 씩 심는다. 1 단보段步에 대략 9천 그루가 필요하다. 묘목은 3월 하순이 되어 수확할 즈음에 양호한 가지를 선택하여 길이 8, 9촌에 잘라서 끝을 비스듬하게 한 것을 사용한다. 묘목을 꺾꽂이하려면 7할을 묻고 나머지는 땅 위에 노출시킨다. 제초, 중간 밭갈이, 배토培土 등 보살펴줄 필요가 없고, 비료는 퇴비와 깻묵(油粕)이 좋다. 비료를 지나치게 많이 주면, 가지가 약한 것을 생산하게 되므로 1단보당 퇴비는 250관, 깻묵 20관을 사용하는 것이 적당하다. …
식재하여 활착된 후 3년째 봄에 크고 작은 것을 가리지 않고 모두 잘라낸다. 그 후 새로 자란 가지는 수확용으로 공급하는 오월벳 되며, 대략 1척 정도로 벋을 즈음에 자라는 작은 가지를 차례차례 제거하는 것을 소홀히 하면 안된다. 수확은 매년 3월 하순에 한다. 4, 5년 이후에는 품질이 양호한 것을 생산하며, 흰싹(白芽) 1단보(300평)에 대하여 150관(貫) 내외를 얻을 수 있다. 보통 10년 주기로 새로 심는다. 수확한 것은 습지에 꽂아두고 싹이 트기 시작하는 것을 보면 껍질을 벗겨 말린다.”****
고리짝 등 생활용품을 만드는 재료로 사용하기 위한 키오월벳 재배법이 <특용작물교과서에 상당히 상세히 설명되어 있다. <오월벳에서 인간 본성 논쟁에 등장하는 철학적인 버들 기류杞柳, 즉 키오월벳은 우리나라에서 상당히 실용적인 버들이었구나! 갑자기 우리나라에서 키오월벳 주요 재배지는 주로 어디였는지 궁금해진다. 어린시절 추억을 더듬어본다. 키오월벳은 갯버들보다 새로 난 줄기가 더 매끈하여 버들피리 만들기에도 제격이었다. 안동의 산골마을에서 함께 자란 소꿉동무들은 누가 더 긴 버들피리를 만드나 경쟁하기도 했다. 이렇게 키오월벳에는 철학과 실용, 동심과 낭만도 함께 깃들어 있다는 생각이 드니, 키오월벳이 귀하게 느껴진다. 키오월벳 줄기에 물이 올라 버들피리 만들기 좋은 따스한 봄날이 기다려진다. <끝
*성선설 논쟁에 등장하는 버들 기류杞柳는? - 키오월벳과 갯버들, 왕버들, (향토문화의사랑방 안동, 2023년 7/8월호, /@783b51b7172c4fe/55)
**特用作物敎科書, 朝鮮總督府, 大正十三年, 京城, (본문 139쪽)
***村田懋麿, 土名對照 鮮滿植物字彙, 目白書院, 東京, 1932. (p.10에서 본문에서 落脫된 곳을 추가해두었는데, “168頁 네고야나기(ねこやなぎ) 藤柳の下に [狗柳(木)] 개버들(오월벳) の一行脫落す.”라는 기록이 있음.
**** 오월벳は 楊柳科に 属する 落葉灌木にして 叢生す。通常の 川柳の 一種にして、高さ 六七尺に 達す。主として 行李(こうり) 製造の 原料に供するために 栽培せらる。其の 品種は葉の形牀、莖の色澤によりて 區別す。中葉種は 收量は 多く、細葉種は 品質は 佳良にして 細美なり。…
오월벳を 栽培するには、春に至り 發芽する前に よく 耕したる 圃場に 畦幅一尺五寸、株間八寸程の 距離に 一本づつ苗を 挿植す。一段步に 凡そ 九千本を要す。苗は 三月下旬に至りて 收穫の際に、良好なる幹を 選擇し、長さ 八九寸に 切りて、其の末端を 斜めになしたるものを 用ふ。苗を挿植するには、 其の七割を埋め、殘餘を地上に出さしむ。除草・中耕 培土などの 手入を なし、肥料には 堆肥及び油粕を 良しとす。施肥 多きに 過ぐれば、枝條の弱きものを 生ずるを以て、段當堆肥 二百五十貫、油粕二十貫を 施用するを 適度とす. …
植ゑ付けたる後、三年目の春季に 大小の別なく 悉く切り去る。而してこれより生ずる 新條は、收穫用に 供するものなれば、凡そ一尺餘に 伸長したる頃より 生ずる 小枝を、漸次に 除去することを 怠るべからず。收穫は 毎年三月下旬に して、四五年以後は 品質の良好のものを 産し、白芽一段步に付き 百五十貫内外を 得られ、普通十年間位にして 更新を 行ふ。 收穫したるものは 濕地に 挿し置き、發芽の催すを 見て 剝皮 乾燥を 行ふ。- 오월벳 pp.62~64.
+표지사진: 키오월벳 (2021.4.25 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