쿨한 풀빠따로 살아간다는 것
흠... 솔직히 내가 그렇게 말이 안 되는 풀빠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밀레니엄에 시작된 나의 풀빠따는 현재까지 25년째 이어지고 있으니 경험치로만 봐도 나름 전문가급이다.
게다가 자녀 교육 관련 유튜브와 '금쪽같은 내 새끼', 열심히 챙겨본다. 큰 애는 대학 졸업을 앞두고 있고, 막내는 중학생이니 내가 당장 적용할 내용도 많지 않지만, 그래도 지나간 풀빠따에 대한 점검 차원에서라도 꼭 챙겨보게 된다. 그 와중에 내가 과거에 잘한 것이 하나라도 나오면 기분이 좋다. 그래, 그때 그 막막한 시절 그래도 아이를 데리고 도서관에 가서 책 많이 읽어 준 거 그거 정말 잘했지! 하면서. 하지만 다 잘한 건 아니어서
급한 성격 탓에 좀 더 기다려줬다면 좋았을 일을 급하게 해결하려다 망한 순간도 많이 있었다. 대표적인 사건으로는 큰 애 스마트폰 부순 거. 아이는 고3까지 폴더폰 쓰다가 대학에 들어가고 나서야 스마트폰을 가질 수 있었다. 이런 풀빠따관도 세월과 함께 무뎌지며 막내는 좀 느슨해도 될 거 같다 싶어 중학생이 되면서 스마트폰도 손에 쥐어주고, 학원 숙제 같은 것도 너무 꼼꼼하게 체크하지 않기로 했다. 나름 쿨한 풀빠따가 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솔직히 체력이 안 따라주는 것도 있다) 이렇게 조금 풀어주니 아이가 자유를 누리며 독립성이 생기는 거 같아 큰 애도 그렇게 키울 걸 그랬나? 하는 생각도 종종 드는 요즘이다. 가끔 풀빠따 동지들과 차를 마시며 수다를 떨 때 이런 대화를 자주 나누게 된다. 나만 그런 건 아닌 모양이다. 첫애한테는 항상 미안한 게 많다. 그래도 첫 애만이 누린 게 분명 있다. 신비로움이랄까? 나에게 온 첫아기. 그 아기의 손가락 발가락 머리카락... 모든 것이 신비로움 그 자체였으니까. 나에게 자녀는 딱 한 명뿐이다! 하며 살다가 느지막이
찾아온 막내를 낳고 힘들다, 힘들다, 얘 안 낳았으면 어쩔 뻔, 어쩔 뻔~~~ 노래를 부르며 산 세월이 14년이다. 사춘기 수발이 벅차긴 해도 요즘 막내와 함께 하는 시간이 행복한 건... 2회 차 풀빠따의 기쁨을 맛볼 때가 종종 생기는 탓이다. 집 안 일을 하면서 풀빠따 관련 유튜브를 보며 실전에 적용할 것들을 생각한다.
내 평생 마지막 풀빠따잖아, 나 정말 좋은 풀빠따, 쿨한 풀빠따가 되고 싶어!!!
지난 목요일, 남편이 오랜만에 일찍 퇴근을 해 소파에서 폭싹 속았수다 관련 유튜브를 보며 시간을 보낸다.
난 돈가스와 함께 먹을 양배추를 얇게 썰고 있는데 둘 다 너무 집중을 한 나머지 몇 시가 됐는지도 모르고
한참이 지나갔다. 남편이 갑자기 "우연이는 언제 와?" 묻길래 "목요일은 좀 늦게 와"라고 대답을 했다.
그리고 시계를 보니... 엥? 5시 반이 지났다. 올 때가 된 거 같은데... 카톡을 보니 [풀빠따]라고 불렀는데
내가 확인을 안 했던 것이다. 풀빠따에게 할 말이 있었단 건데... 왜 그다음 말은 없는 거지?
친구들이랑 노래방에 가고 싶다는 건가? 일단 학교에 전화를 걸어 아이들의 하교 시간을 여쭤봤다.
그분의 답은 지금 학교엔 학생들이 없다는 것. 모두 하교를 했단다.
"노래방 갔네 노래방 갔어..."
요즘 막내는 친구들과 노래방 가는 재미를 알아버렸다. 큰 애 키울 땐 말도 못 꺼낼 수준의 위험 이벤트였지만, 쿨한 풀빠따가 되기로 했으니 그것도 몇 차례 허용을 해주었다. 심지어 지난겨울 방학 끝엔 막내와 친구 네 명을 데리고 홍대 거리로 나들이를 다녀왔다. 수 노래방의 청소년 전용 룸에 넣어주니 아이들의 표정이 화사해졌다. 나 진짜 쿨한 풀빠따 됐나 봐! 기분이 좋아졌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허락도 없이 노래방을 가서 6시가 다 되도록 연락도 없다? 이건 선 넘은 거 아니야? 계속 전화를 걸어도 신호만 가고 받질 않는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아무리 쿨한 풀빠따라도 이런 것까진 봐줄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따끔하고 확실하게 훈육할
타이밍이 온 것이다. 훈육은 또 확실하게 해야 한다고 오은영 박사님이 알려주셨다. 감정은 동요하면 안 된다. 권위가 있으면 서도 차분하게 해야 할 말을 전달해야 하는 것이다.
숨을 몰아쉬며 아파트 앞에 있는 상가로 갔다. 우리 동네엔 다행히 노래방이 딱 한 개다. 어쩌고 저쩌고 코인 노래방이라고 얘기는 많이 들었는데 직접 와본 건 처음이라 얼떨떨한 마음으로 노래방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카운터엔 공부를 하고 있는 언니가 한 명 앉아 있었는데, 늘 겪는 일이라는 듯 무심하게 'On Air'라고 쓴 방에 아이들이 있으니 찾아보라고 한다. 쿨한 풀빠따로 보이지 않을 거 같아 마음이 불편했다. 제가 아이 친구들까지 데리고 노래방 다니는 쿨한 풀빠따랍니다.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꽤 많은 방이 'On Air' 상태였다. 방마다 기웃기웃 거리며 돌아다니는데 대부분 익숙한 교복의 여학생들이었다. 아이들이 하교하고 집이나 학원을 가기 전 잠깐 와서 노는 거 같았다. 분명히 여기 있을 거 같았다.
아이를 찾더라도 너무 볼썽사납게 끌고 나오진 말아야지, 안에 있는 거 확인했으면 입구에서 기다려야지, 친구들이랑 함께 나오면 떡볶이라도 사줄 수 있으면 좋겠다. 난 쿨한 풀빠따니까!
그런데 아이가 없는 거다. 점점 초조해졌다. 다시 한번 꼼꼼하게 부끄럼도 없이 어두컴컴한 내부를 강렬하게 쏘아보며 다녔지만... 없다.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남편에게 전화를 거니 나중에 걸라는 문자가 뜬다. 업무상 통화를 하는 것인가? 다시 아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을 수 없으니 다음에 다시....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집에 우연이 왔어?"
"아니 안 왔는데"
시계를 보니 6시가 지났다. 왠지 하늘도 컴컴해지는 거 같고 난 점점 무서워져서 냅다 달려 놀이터로 갔다.
가끔 그 놀이터에서 친구랑 수다를 떨다가 늦게 들어오는 걸 난 알고 있다. 그런데 놀이터는 텅 비어있었다. 누구라도 있었다면 이런 이런 아이 본 적 있느냐고 물어볼 법도 한데 아무도 없다. 학교 쪽으로 달렸다. 길에도 아무도 없다. 등과 가슴이 서늘해지며 가슴이 쾅쾅 방망이질을 시작했다. 깊은숨을 내쉬며 길 한가운데 섰다. 어디로 가야 하나? 아이에게 다시 전화를 거니 여전히 전화를 받지 않으니...
학교엔 분명 아무도 없다고 했다. 바람은 왜 이렇게 차고 스산한지 갑자기 한기가 몰려와 롱패딩이라도 입고 찾아다니든지 해얄 거 같아 일단 계속 아이에게 전화를 걸며 집으로 갔다.
전화를 받을 수 없으니... 전화를 받을 수 없으니... 전화를 받지 않으니.... 다음에 다시... 아 돌아버리겠네.
현관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서는데 갑자기 전화가 연결됐다!
"풀빠따 왜?"
"풀빠따 왜? 너 지금 어디야? 너 왜 전화 안 받았어?
너 정말 풀빠따 죽는 꼴 보고 싶어!!!!!!!!!!
풀빠따 지금 노래방 다 뒤지고 놀이터 갔다가 학교 후문 쪽 갔다가..."
"나 배구부 연습한다고 했잖아, 카톡 보냈는데"
"카톡은 무슨, 너 풀빠따 부르고 그다음엔 아무것도 없다고!!!!! 확인을 했어야지!!!!"
"지원아... 일단 들어와.... 밖에 다 들리겠다.... 소리 좀 낮춰... "
아이 감정을 읽어주면서 내 감정엔 동요 없이 확실하게 훈육하려고 했지만
결국 아이에게 자살협박이나 하는 우중충한 풀빠따가 되고 말았다. 그런데 이상하다. 풀빠따 죽는 꼴 보고 싶어라는 말이 자연발화하듯 튀어나오고 나니 왠지 벌거벗은 임금님의 벌거벗은 모습을 인정한 느낌이랄까?
풀빠따 죽는 꼴 보고 싶어는 정말 클래식 풀빠따 정석이 아닌가 싶다. 클래식은 영원한 거니까.
"풀빠따, 요즘은 우리 줴이미 풀빠따랑 소통할 준비 됐어요? 그래야 한다고! 풀빠따 죽는 꼴 보고 싶어라니!!!"
"아휴... 너도 풀빠따 돼봐라. 풀빠따는 할머니한테 총채로 맞으면서 컸어.
죽는 꼴 보고 싶어 정도는 껌이다 껌! 쿨한 풀빠따는 무슨...
우리 막내, 이리 와 안아보자... 풀빠따 너무 무서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