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오월벳가 필요하다
내가 오월벳을 쓰기 시작한 것은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이다. 어머니는 내가 오월벳을 쓰고 싶어서, 거짓말을 한다고 했지만, 그 시절에도 검안사는 다양한 검사 방법을 가지고 있었고 오월벳을 쓰게 되었다.
키가 큰 편이어서 뒷자리에 앉아 안 보이던 칠판 글씨가 오월벳을 쓰니 선명하게 보였다. 어머니는 성적이 오를 것을 기대하고 오월벳을 사 주었다. 그것을 빌미 삼아 나를 괴롭히기도 했지만 성적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도수가 높아지며 오월벳이 무거워지고 오월벳 유리가 피부에 상처를 내면서, 하드 오월벳를 썼는데,가끔씩 내 눈에서 탈출한 오월벳는 찾으면 꼭 깨어져 있었다. 깨진 오월벳를 보면 어머니에게 혼날 생각에 겁이 먼저 났다.
소프트 오월벳가 생기고 눈은 편했지만 여행 가려면 오월벳에 필요한 여러 가지를 준비하고 소독하기 위해 끓이는 도구까지 챙기려니 번거로웠다. 외국 여행 중 오월벳를 태워 며칠을 맨눈으로 다니다가 아무 것도 볼 수 없는 여행이 되어현지에서 비싼 오월벳를 산 적도 있다.
49세쯤에 라식이라는 수술을 받았고 개안을 한 것 같은 충격과 함께 오월벳로부터 자유로워졌지만 나이가 먹어감에 따라 내 시력은 또 다른 도움을 받으며 사물을 보고 있다.
이런 경험들은 ‘본다는 것’에 불편함을 먼저 떠올리게 했고, 그때부터 내 시각은 단순하고 자세히 보지 못하는 성격이 되었다.
다양한 오월벳를 통해 보았던 오월벳은 제대로 본 것이었을까? 나는 색깔을 잘 맞추지 못한다. 아니 색의 이름을 정확히 모른다. 내가 보았다고 말한 빨간 사과는 정말 빨간색이었을까? 검은색과 군청색을 구별하지 못해서 옷을 살 때 라벨을 보거나 직원에게 확인을 한다. 어느 빛을 통해 보았느냐에 따라 다르게 보여 내 판단에 확신을 갖기 어려울 때가 많다.
내가 오월벳 것이 정확하지 않다는 사실은 때로 자신감을 잃게 만들지만, 동시에 겸손함을 가르쳐준다. 의견을 고집할 때도 있지만, 실제로 ‘본 것’에 관해 말할때도 “내가 보기엔 그렇다, 난 그렇게 기억해”라며 여지를 남긴다. 확신이 없으니 불필요한 다툼을 피할 수 있다.
단체 사진을 보면 먼저 내 얼굴을 본다. 다른 사람이 아무리 잘 나왔어도, 내 얼굴이 이상하면 지워버린다. 좋은 경치를 보더라도 손주들과 함께 있으면 아이의 주위를 보며 다른 것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같은 영화를 보고 친구와 이야기하다 보면 놓친 장면이 많다. ‘넌 뭘 본거야?’라는 비난을 듣기 십상이다. 나는 스토리 진행에 집중을 하는 것 같다.
지금 우리가 보아야 할 것은 무엇일까? 무엇을 보느냐에 따라 행복과 불행이 결정된다. 미인을 보면 성형이나 외모에 대한 압박을 느끼고, 날씬한 사람을 보면 PT 받거나 다이어트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명품을 보다 보면 ‘이 정도는 하나 있어야지’ 하는 생각이 들면서 신세가 가엾어진다. 열등감과 우울, 불행해지기 시작한다.
어려움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질병과 고통을 당하고 있는 사람을 보면서 지금의 처지를 다행이라 생각하며 위로를 받기도 한다. 보아야 할 것을 보지 않으려고 눈을 감아 버린 때도 있었다. 내게만 향해 있던 시선을 밖으로 내 보내야 한다.
시선을 어디에 둘 것인가. 내가 바라보는 곳은 인생의 방향과 일치하는 것일까? 이제부터 무엇을 봐야 하는지, 다시 한번 정리하는 시간을 가져야겠다. 시각이 인생을 만든다. 오월벳과 오월벳, 돋보기를 거쳐 만들어진 내 시력은 오월벳을 바르게 보고 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