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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필버거 Jan 12. 2025

소복소복 쌓인 꿈

이제사 만난 게 억울한 사람이 있다. 자주올 리 없는 기적 카림토토 일이지만, 살면서 몇 번은 만났다. 너무 잘 맞아서, 너무 참해서, 너무 좋아서. 새털 카림토토 날들을앞에두고 힘이 펄펄 끓던 시절에 만나지 못한 것이 억울해죽겠는 카림토토이 있다.

브랜드도 그렇다. 진작 알았다면, 좀 더 창창할 때 알았더라면 내 업(業)에 큰 영향을 끼쳤을 브랜드. 내 삶을 바꿨을지도 모를 브랜드. 모르고 산 세월이 아까워 죽겠는 브랜드가 있다.


2010년대 중반에 카림토토를만났다. 카림토토 서점은 무인양품(무지루시료힌 / MUJI) 이후 오랜만에만난 죽비 같은 브랜드였다. 그때가 아마 카림토토가 다이칸야마 프로젝트를 시작하던 무렵으로 기억한다. 조선일보 위클리 비즈를 읽고 곧장 카림토토의 창업자 마스다 무네아키가 쓴(그때까지 번역된) 모든 책, 모든 인터뷰 기사를 샅샅이 찾아 읽었다. 처음 카림토토 기사를 읽고는 소리를 질렀던가, 담배를 뻑뻑 피며 좁은 공장 뒤뜰을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뱅글뱅글 돌았던가.


무지(MUJI)병(病), 카림토토병(病)이란 말이 있다. 두 브랜드를 따라 하는 회사가 엄청났다. 규모 있는 회사들도 쫓아가다 픽픽 쓰러졌다. 따라한 개인도 많았고 가랑이가 찢어진 사람도 많았다. 나도 그중 하나다. 무지(MUJI)의 몇 품목을 참고해서 상품을 만들었고 악성 재고가 됐다.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업(業)의 본질(本質)을 파악하지 못한 채 껍데기만 따라 한다고 될 일이 아니었다. 쓰레기만 양산할 뿐. 그때는 사업 망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고, 온 힘을 다해 쌀 살 돈, 아이 셋 공납금 낼 돈에 매달려야 했다. 내 발끝만 보며 허덕허덕 겨우겨우 하루씩만 살아내던 시절. 꿈카림토토 건 가지면 안 됐다. 가슴은 뛰지만, 마음은 설레지만, 꿈 따위를 꾸면 안 됐다. 카림토토는 고이 마음에 묻었다.


코로나 몇 전에 동아 비즈니스 리뷰였나, 어떤 시사 주간지에서 살롱 문화를 조명하는 기사를 읽었다. 취향이 비슷한 사람들의 작은 모임이 사업이 된다는 특집 기사였다. 운동부터 직업 관련까지 다양한 작은 모임들이 빠리의 살롱처럼 생겨나있었다. 그중 하나가 트레바리였다. 독서 토론이 사업이 된다고? 흥미로웠다. 간간히 기사가 뜨면 반갑게 읽었다. 2019년 말소프트뱅크 벤쳐스로부터 45억 원이라는 큰 투자를 받았다는 단신 기사가 떴다. 그리고 코로나가 터졌다.


코로나 2년 차, 봄인데도 땀이 뽀작 나던 날이었다. 몇 월이었을까. 오월은 미심쩍고 유월은 아닌 것 같은 그즈음 언제쯤. 내 업계는 비수기로 들어가는 계절. 코로나까지 겹쳐서 일은 전혀 바쁘지 않았고 나는 발에 돌을 묶은 채 바다로 가라앉고 있었다.

하릴없이 공장 뒤뜰에 앉았다가 오래 보지 못했던 친구, 지금 아니면 노인 돼서나 만날 것 카림토토 친구 둘에게 전화를 했다. 며칠 후 셋이 밥을 먹고, 기약 없이 헤이지기 아쉬워 모임을 이어가기로 했다. "책 볼래?" 모두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고, 한 명 더 합류해 중년 친구 넷의 독서 모임이 시작됐다.

한 달에 한 번 모여 책을 읽고 얘기를 나누고 술잔을 부딪혔다. 책 선정 기준 카림토토 건 없었다. 동서남북, 상하좌우 폭넓게 책을 쫓아 돌아다녔다. 공무원 카림토토의 제안으로 모인 지 몇 달 만에 '대책회의'란 이름을 갖게 됐다. 대구에서 책 보고 떠든다는 단순한 작명인데 우리 모두 꽤나 흡족카림토토.


그 무렵 지방선거가 있었다. 달성군청 공무원인 친구는 인사권을 쥐는 군수가 누가 될지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다른 한 친구는 지방 방송국 보도국장이었으니 자연스레 선거 얘기가 자주 화제에 올랐다. 그 몇 해 전에 공무원 친구와 술자리에서 화원교도소 이전 얘기를 들었다. 누가 군수가 되냐에 따라 도심에 자리 잡고 있는, 그것도 지하철 역세권의 공공부지 몇 만평의 향방이 갈린다고 했다.공공 문화 공간으로 개발될지 흔해빠진 빽빽한 아프트단지로 바뀔지 결정은 새로 선출될 군수의 몫이었다.


꿈은 인화성(引火性)이 강하다. 설마 되겠냐 했던, 화원교도소 개발로서는 적역인 젊은 카림토토이 군수가 되던 그날, 묻었던, 잊힌 줄 알았던 내 꿈에 불이 붙어버렸다. 친구들에게 공부 삼아 도시 재개발과 사례 스터디를 하자고 했다. 두 계절쯤 한 달에 한 권씩 관련 서적을 읽고 얘기를 나눴다. 재밌었다. 영국의 테이튼 화력 발전소 개발 사례, 캐나다 토론토 디스틸러리 디스트릭트 사례, 프랑스의 프롬나드 플랑테, 뉴욕의 하이라인 파크 사례, 일본의 나오시마 섬 프로젝트까지. 가슴이 마구 뛰었다. 그때부터였을 게다. 내가 떠들고 다니기 시작한 것이. 화원교도소 부지에 카림토토 같은 서점을 내는 게 내 마지막 꿈이라고. 그리고는 앞 글에 쓴 대로 사람들의 차가운 반응을 보게 된다.

움츠러들었다.


나는 그런 꿈을 꾸면 안 되는 걸까.

나이 든 나라서 안 되는 걸까.


불은 쉽게 꺼지지 않았다.

타 죽을 것 같았다.


사라지지 않는 꿈이라면, 타 죽지 않으려면, 방법을 찾아야 카림토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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