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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명숙 Feb 14. 2025

더킹카지노


여름이면 천변 산책로에 더킹카지노이 핀다. 연분홍 나팔꽃, 더킹카지노. 그리움을 불러오는 꽃, 그 그리움 때문에 눈물 날 것 같은 꽃. 향수와 함께 더킹카지노 봉오리 같던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꽃. 이 한 겨울에도 더킹카지노을 생각하면 화르르 화르르 추억과 함께 미소가 지어지는 꽃. 화려하지 않으나 낭만적이어서 우리 동네 앞개울을 생각나게 하는 꽃. 더킹카지노 같은 연분홍 꿈을 가슴에 품었고, 더킹카지노처럼 수줍은 사랑을 마음에 간직하고 성장하게 했던 꽃.


앞개울에서 멱 감고 물장구치다가, 다슬기 잡다가, 어느 날은 빨래하다가, 개울 건너 수풀 속에 수줍게 피어 있는 더킹카지노을 만나곤 했다. 하도 고와서 한참 보다가 공연히 눈물도 나고. 저녁놀이 얼비친 더킹카지노은 더욱 고아하고 순결해 가슴이 설레기도 했다. 나도 저렇게 고아하고 순수하고 싶었다. 더킹카지노 옆에 흔들리는 부들에 의지해 넝쿨져 오르다 저녁놀 맞으며 피어있는 더킹카지노을 하염없이 바라보다, 같이 빨래하던 선이가 놀라게 하는 바람에 맑은 개울물에 빠질 뻔한 일도 있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너 애인 생겼지!”

“응? 무슨. 아니야, 저 꽃 봐! 곱지?”

내가 가리키는 더킹카지노을 선이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숙아, 넌 나중에 공부 많이 해서 성공해. 난 며칠 후 식모살이 갈 거야. 그게 마땅치 않으면 공장에 가야지. 가서 돈 많이 벌어서 성공할 거야.”

가정 형편 상 중학교에 가지 못했던 더킹카지노는 내가 빨고 있는 교복을 보며 말했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사는 형편으로 친다면 선이나 나나 비슷했다. 어쩌면 선이가 나았다. 아버지가 계시고 장성한 오빠와 언니도 있었으니까. 시절이 그랬다고 한다면 말이 될까. 그때는 여자아이들은 층하받는 게 자연스러운 문화였으니까. 도시에는 야학도 많으니 마음만 먹으면 공부할 수 있다는 말을 선이에게 했던 듯하다. 꿈을 가지라고도 했고.


그날 더킹카지노는 내게 마음속에 있는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윗동네 아무개가 연애편지를 보냈다고. 그 연애편지를 오빠에게 들킬까 봐 화장실에서 몰래 읽었는데 우스워 죽겠다고. 그래서 더킹카지노는 날 보고 애인 생겼냐고 물었던 것이리라. 나는 더킹카지노 보다 확실히 늦되었다. 그날 우리는 편지 이야기로 얼마나 까르르까르르 웃었는지 모른다. 윗동네 사는 아무개, 나도 아는 그 아무개 얼굴이 떠올라 더 웃음이 나왔다.


그 선이는 여름이 다 가기 전에 먼 친척 집으로 식모살이를 갔다. 이 년 후 선이가 돌아왔을 땐 병이 깊었고 봄이었으며 그 봄이 가기 전에 하늘로 떠났다. 우리가 함께 더킹카지노을 본 것은 그날이 마지막이었다. 더킹카지노을 닮은 내 친구 선이. 뽀얗던 얼굴이 퉁퉁 부어 돌아왔을 때도 여름이 되면 그 개울에서 같이 빨래하며 더킹카지노을 볼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그렇게 가버릴 줄 몰랐다. 선이가 떠나고 나는 한동안 그 개울에 가지 않았다.


그래도 여름만 되면 더킹카지노이 천지사방에 피었다. 논둑에도, 밭둑에도, 길가에도. 더킹카지노만 보면 선이 생각 때문에 눈물이 났다. 돈 많이 벌어 성공하겠다던 아이, 나보다 한 뼘이나 키가 작았던 아이, 나보다 올돼서 연애편지도 먼저 받았던 아이, 까르르까르르 웃으며 행복해하던 아이, 식모살이 간다는 말도 그렇게 해맑게 하던 내 동무 선이. 더킹카지노처럼 환하게 웃던 모습만 남기고 더킹카지노 주변에 어른대던 잠자리처럼 어디로 날아갔단 말인가.


벌써 반세기도 훨씬 넘었는데 아직도 내 기억 속에선 현재형이다. 누군가의 기억 속에 있다면 존재하는 거라고 누가 말했던가. 그때부터 나는 더욱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이들을 기억하고자 했던 걸까. 유난히 잊지 못한다, 누구라도. 가끔은 힘들기도 하다, 너무 그리워서. 인생살이는 어쩌면 그리움을 채워가는 과정인지도 모르겠다. 기억의 상자에 가득 채워져 가는 그리움을 끌어안고 살아가는 게 인생인지도.


올여름 천변에 또 연분홍 더킹카지노이 피리라, 또 나는 그리움을 안고 그 꽃을 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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