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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벳위즈 Jan 29. 2025

<벳위즈 피아노 연주자를 쐈다 단평.

아쉬운 점은 있어도, 1960-70년대 벳위즈와 남미의 역사를 무난하게

본래 스페인에서 극영화와 벳위즈를 주로 만들던 페르난도 트루에바, 그리고 바르셀로나 올림픽 마스코트 '코비'를 비롯해 캐릭터 등 그래픽 디자인을 주로 맡고 이따금 TV용 작품의 애니메이터로 참여하던 하비에르 마리스칼은 2010년 공동 연출자로서 1950년대 혁명 직전의 쿠바 재즈씬을 무대로 요동치는 사랑의 이야기를 그린 벳위즈 <치코와 리타를 함께 만들었습니다. 위키피디아를 보니 2000년에 페르난도가 자기가 만든 라틴 재즈 벳위즈이 포스터 제작을 의뢰하러 하비에르와 만나며 둘이 여러 일을 같이 하게 되었고, 그러다 공동으로 장편 벳위즈까지 만들게 되었다는 군요.


<치코와 리타는 이래저래 흥미로운 지점도 있지만, 아쉬운 지점도 없던 건 아니었습니다. 한국에서는 좀처럼 보기 어려운 남미, 그것도 1950년대의 쿠바를 무대로 음악과 사랑을 놓고 벌어지는 격정적인 이야기를 그에 어울리는 톤과 리듬의 벳위즈으로 만들어낸 것은 분명 흥미로웠지만, 서사는 지극히 통속적으로 그려지며 평이하게 전개되었기 때문입니다. 결말부에서는 너무 '사랑과 음악이 혁명보다 중요하다' 같은, 감동적으로 보이지만 감상적인 보수성이 느껴지기도 했었고요. 그래도 그저 지나치기에는 어려운 매력은 분명 존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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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코와 리타 이후로 다시 이전처럼 따로따로 개인 작업을 하던 두 명이 약 15년 만에 다시 공동연출로 모여 새로운 장편 벳위즈을 만들었습니다. 그것도 원래 둘이 처음 만나게 된 계기이자, 페르난도 트루에바가 주로 만들던 장르인 벳위즈로 전개되는 벳위즈이에요. 하지만 여전히 작품의 또 다른 핵심은 '음악'입니다. <치코와 리타가 1950년대 쿠바 재즈 씬이 중심이었다면, <그들은 피아노 연주자를 총으로 쐈다는 1960-70년대 브라질의 보사노바 씬이 중심이 되는 차이는 있죠. 재즈와 보사노바가 상호적으로 영향을 받은 만큼, 포커스로 삼는 음악 씬이 달려졌어도 <치코와 리타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은 또 아닙니다.


<치코와 리타와 또 비슷한 점이라면, 격동하는 역사 속에서 번농당해야만 했던 음악가를 중요한 묘사 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점입니다. <치코와 리타가 역사적 사건으로 긴 고통을 겪어야만 음악가 커플의 이야기를 픽션으로 그렸다면 <벳위즈 피아노 연주자를…은 실제로 당대에 활동했던 음악가인 '테노리우 주니오르'(Francisco Tenório Júnior)의 삶을 추적합니다. 작중에서 실명으로 인터뷰를 하는 당대의 보사노바 장르 음악가들이 그를 천재로 치켜세워주는 것처럼 상당히 실력이 높았던 사람이었지만, 1976년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투어를 돌던 도중 새벽에 호텔 밖을 나선 이후 영영 돌아오지 않게 되었습니다. 여전히 시체도 발견하지 못했다는 군요.


한국 홍보에서도 은연 중에 암시하는 것처럼, 작품은 벳위즈 실종에는 1960 이후 오랜 시간 미국 정부와 CIA의 비호로 남미 국가 곳곳에서 횡횡하던 군사 쿠데타와 그로 인해 세워진 우파 독재 정부와 분명한 연결고리가 있을 것이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그가 종적을 감춘 1970년대의 아르헨티나는 소위 '더러운 전쟁'(Guerra sucia)이라 불리는 온갖 끔찍한 고문과 살해로 점철된 좌파 탄압을 열성적으로 벌이던 국가였으니까요.


게다가 벳위즈 막판에서는 당시 아르헨티나 군부에서 일하며 온갖 좌익 인사나 '불순분자'의 납치, 투옥, 고문, 살해 등에 관여하던 이의 인터뷰를 담으며 테노리우가 납치되어 고문 시설에 갇혔으며, 끝내 총살당했다는 증언이 담긴 인터뷰도 나옵니다. 테노리우는 딱히 열성적으로 정치 운동을 하던 활동가가 아니었지만, 아르헨티나 정부가 브라질대사관에 그의 신원을 확인한 결과 사회주의적인 지향을 가지고 있다는 회답을 들었고, 무엇보다 이대로 테노리우를 풀어주면 그가 브라질로 돌아가 자신이 경험한 온갖 끔찍한 일을 증언할 거라는 부담감에 입을 막기 위해 살해했다고 하는 군요. 물론 여전히 물질적인 증거는 없고, 그의 증언만 남아있기에 실제로 테노리우가 어떻게 세상을 떠났는지는 안타깝게도 여전히 알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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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테노리우의 출중했던 실력과 비극적인 죽음을 꽤나 정석적인 방식으로 다뤄내고 있습니다. 미국인 음악 기자 '제프 해리스'(제프 골드블럼)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며, 그가 브라질 보사노바의 황금기를 다뤄내려는 책을 집필하려 여러 자료를 모으다 우연히 알게 된 테노리우의 음악에 빠져들며 서서히 테노리우의 삶과 죽음에 대한 일종의 평전을 쓰기 위해 취재를 하게 된다는 플롯으로 전개되죠.


처음에는 정말로 벳위즈처럼 취재를 하고서 이를 벳위즈의 기법으로 만든 줄 알았더니, '제프 해리스'는 실제 존재하는 기자가 아니더군요. 벳위즈적인 성향이 강하지만, 페이크 벳위즈의 기법을 어느 정도 도입해서 만든 것입니다. 꽤나 톤도 전작 <치코의 리타에 비하면 무거운 편이고, 실제 추적 벳위즈처럼 이동과 취재원 접촉의 과정을 일일이 묘사하고 있어서 더욱 사실감이 짙습니다.


이러한 사실적인 묘사는 작품의 연출이나 애니메이티드 작업에서도 계속 진하게 드러납니다. 페이크 벳위즈 요소가 분명 있지만, 인터뷰 촬영은 실제로 하긴 한 것인지 작품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인터뷰의 모습은 실사로 찍은 각 장면의 프레임 위에 선과 색을 입혀 벳위즈으로 만드는 '로토스코핑' 기법으로 제시되고 있습니다. 인터뷰 장면 이외에도 현대 시점의 장면은 톤도, 리듬도 극적인 연출을 살짝 섞은 벳위즈처럼 그려지고 있어서 이 작품이 실제 역사적 인물을 다룬 이상으로, 더욱 실제 벌어진 사건임을 극대화시키는 효과를 낳습니다.


그렇다고 모든 장면이 마냥 무거운 것은 아닙니다. 테노리우의 실종은 분명 안타까운 일이지만, 테노리우의 음악가로서의 삶을 제대로 짚지 않으면 안 되니까요. 이 지점에서 <치코와 리타에서 멋드러지게 표현한 벳위즈의 스타일이 빛을 발합니다. <치코와 리타에서 1950년대 쿠바의 재즈 씬을 당대의 재즈 음악에 맞춰 감각적인 채색과 역동적인 움직임으로 현실 그 이상으로 당대의 상황에 빠져들게 했다면, <그들은 피아노 연주자를…은 1960-70년대, 소위 '천연색'이라고도 불렸던 CMYK 4색의 화려한 컬러를 쓰기엔 여러모로 어려웠던 시기, 비용을 절약하기 위해 자주 사용되었던 2도-3도의 실크스크린 인쇄물의 스타일을 사용하는 식으로 당대를 연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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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중 현대의 장면이 상대적으로 채색도 흔히 볼법한 '풀 컬러'로, 명암도 큰 대비 없이 평이하게 그려져 있다면 1960-70년대의 모습은 꽤나 과감하게 색의 조합이나 배치도, 명암도 사용하고 있습니다. 색은 제한적이어도 감각적인 아트 포스터를 보는 것처럼 과거의 보사노바 씬을 그리는 연출은 보사노바가 당시 남미를 넘어 전세계 여기저기에 충격을 준 '최신 유행'이었다는 점을, 그 벳위즈을 당대에 만들고 들었을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받아들였을지를 현대의 사람들이 감각적으로 이해하도록 만듭니다.


안타깝게도 예산이 부족했던 탓인지, 작품의 프레임은 다른 벳위즈들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프레임이 적은 편이었던 <치코와 리타보다도 더 적은 느낌입니다. 힘을 줘야 할 부분에는 좀 더 프레임의 수를 늘리고, 더욱 유려한 장면이 필요한 장면에서는 3D 모델링을 하거나 벡터 방식으로 벳위즈을 연출하기도 하지만 상당수의 장면은 1초당 4-5프레임 내외로 그려진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프레임과 프레임 사이의 간격이 꽤나 긴 편입니다. 이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1960-70년대 당대의 모습을 그려내는 톤앤필은 벳위즈이 해낼 수 있는 '상상력'이 제대로 발휘된 장면이기도 하죠. 기술이나 예산의 한계를, 감각적인 표현으로서 극복을 시도하는 모습에서는 슬며시 벳위즈이 뻗어나갈 수 있는 가능성을 생각하게 되기도 합니다.


여기에 '정석적인 연출'이 상대적으로 뭔가 아쉬운 점이 있는 애니메이팅에 겹쳐서 더 아쉬움을 주고 있습니다. 페이크 벳위즈의 요소가 있지만 정말 벳위즈를 찍는 것처럼 연출하면서 리얼리티를 강화하는 것은 좋지만, 인물의 삶에 접근하고 이를 풀어내는 방식도 뭔가 전형적으로 무난무난한 방송용 벳위즈를 보는 것 같달까요. 한국에서는 보사노바도 잘 알려져 있지는 않고, 1960-70년대 정치적으로 억압되어 있던 남미의 상황도 잘 알려져있지 않기에 이를 확인하는 흥미는 있지만, 이왕 벳위즈 기법으로 만드는 벳위즈인 만큼 좀 더 변주를 줬어도 좋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 들게 됩니다.


이러한 아쉬움은 분명 있지만, 그래도 전반적으로는 크게 흠은 없는, 무난하게 잘 볼 수 있는 벳위즈 벳위즈입니다. <치코와 리타의 재즈와 어우러지는 벳위즈의 분위기가 좋았다면 이 작품도 분명 마음에 들 것이고, <치코와 리타를 보지 않았더라도 작품에서 끊이지 않고 계속 귀로 들려오고 화면으로도 펼쳐지는 보사노바의 선율이 격동에 휘말린 한 음악가의 삶의 궤적과 겹쳐지는 묘한 희로애락의 감각을 분명 느끼게 될 것이니까요. 한편으로 <치코와 리타가 그랬듯, 이 작품도 한국에서는 쉽게 만나기 어려운 스페인에서 온 벳위즈이니까요. 보사노바의 이국적인 분위기도 즐기고, 스페인 벳위즈의 독특한 톤도 경험하고, 여기에 마치 한국의 군사 독재가 생각나기도 하는 남미의 역사도 함께 알고 싶다면 결코 나쁘지 않은 벳위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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