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고 싶어서 킹무원이 되었습니다 Vs. 죽기 싫어서 좋무원을 때려칩니다
“악! 깜짝이야! 진짜 떨어질 뻔했네!”
박 벳위즈가 소리를 지르며 두 팔을 다급히 뻗어 옥상 난간을 움켜쥔다.
“벳위즈님! 뭐 하세요? 갑자기 또 쓰러지시는 줄 알고 옥상 문 열자마자 뛰어왔네요! 큰일 날 뻔했어요! 떨어지기라도 하면 어쩌시려고! 어휴.”
놀란 눈길로 고개를 돌린 박 벳위즈의 눈에 주 벳위즈가 서 있는 게 보였다.
“떨어지긴 왜 떨어져요~ 벳위즈님! 어휴! 벳위즈님 때문에 진짜 죽을 뻔했잖아요!”
박 벳위즈의 얼굴에 안도의 미소가 번진다.
“그나저나, 오늘 휴가 아니세요? 여긴 무슨 일로 오셨대요? 그것도 옥상에?”
박 벳위즈가 숨을 고르며 주 벳위즈에게 물었다.
“아, 오늘 저녁에 동기 모임이 있어서요. 회사는 안 나와도 회식은 나와야죠! 유부남에게 회식은 소중하거든요. 하하.”
그날의 일은 다 잊은 듯 주 벳위즈는 여전히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말한다.
"여기 시청 근처 식당에서 하는데 시간이 좀 남길래 잠깐 들렀어요. 나이가 사십 줄 되니 동기여도 어울리기가 쉽지 않아서.. 그리고 옛날 사기업 생각도 좀 나고요... 아, 한 캔 하실래요?"
주 벳위즈가 손에 들고 있던 검정 비닐에서 주섬주섬 무언가를 꺼내 박 벳위즈에게 건넨다. 캔 맥주다. 보기만 해도 시원해 보인다. 하지만 마실 수 없다.
"에이, 저 술 잘 안 먹잖아요. 아시면서. 근데 주 벳위즈님, 가끔 보면 엄청 특이한 거 같아요. 동기 모임 가면 술 잔뜩 드실 텐데 웬 캔맥주래요?"
박 벳위즈가 손으로 거절을 표시하며 물었다.
"아, 이건 비밀인데... 뭐랄까…. 그냥 제 루틴 같은 거죠. 회식 전 옥상에서 시원하게 캔맥주 하나 털고 회식 가는 거. 자동차 출발 전 시동 걸어 예열하듯이, 회식으로 달리기 전 뱃속에 맥주 칠을 좀 해주는 거죠. 그래야 회식 때 제대로 잘 달릴 수 있지 않겠습니까! 하하."
치익-
주 벳위즈가 손가락을 튕겨 캔맥주 뚜껑을 열더니 시원하게 목구멍으로 털어 넣는다.
"박 벳위즈님, 몸은 괜찮으세요? 제가 그때 그 소화기를 조폭한테 던져버렸어야 했는데! 사기업 다닐 때 나름 소화기 던지는 거에 자신 있었는데 뜻대로 잘 안되더라고요. 하하! 저는 그날 이후로 몸이 계속 뻐근하던데…. 나이는 못 속이는가 봐요. 참 살다 보니 별일 다 있죠, 벳위즈님? 하하.“
주 벳위즈가 그날의 안부를 박 벳위즈에게 묻는다.
"아쉽게도 입원할 정도는 아니라고 하더라고요 의사 선생님이. 그냥 파스나 붙였죠. 뭐.“
그날 일 때문인지 박 벳위즈는 주 벳위즈에게서 묘한 전우애가 느껴지는 것 같았다.
"주사님은 의자를 정확히 그 조폭한테 꽂아버리시던데요? 캬! 그 멋진 모습 저만 보기 아까웠는데! 솔직히 주사님한테 그런 박력 터지는 모습이 있는지 몰랐어요. 처음 저 아래 주차장에서 봤을 때 쫌생이 공무원 같았…. 앗! 아하, 아니 아니, 이건 아니고요. 이거 맥주 한 캔에 벌써 취했나? 하하!"
주 벳위즈가 당황한 듯 캔 맥주를 들이켰다. 박 벳위즈는 자신을 놀리는 듯한 주 벳위즈의 말이 예전 같았으면 불편하기만 했을 텐데 왜인지 기분 나쁘지 않다.
“근데 주 벳위즈님, 그거 들으셨어요? 우리 보건소로 인사 발령 난 거. 나 참...”
박 벳위즈가 잊은 게 생각난 듯 주 벳위즈에게 물었다. 그 말에 주 벳위즈는 잠시 당황한 얼굴을 했지만, 이내 평소와 같은 넉살 웃음을 얼굴에 피운다.
“정말 어이없지 않아요? 전 너무 화가 나요. 그날 얻어터진 건 저희인데 징계위원회에서는 징계를 내릴 수 있다는 말도 들리고, 오늘은 감사실, 노조에서 그때 경위서를 써내라고 하고. 주변 공무원들은 다들 수군거리기나 하고, 끝도 없이 민원이나 퍼 날라주고요.”
말을 잇는 박 벳위즈의 얼굴을 주 벳위즈가 가만히 바라본다.
“이게 다 제가 공무원이어서 그런 것 같아요. 공무원이 된 제가 죄인이죠. 여긴 정말… 혼자인 것 같아요. 다들 함께인 것 같지만, 아무도 제 편은 없는 것 같아요. 그렇다고 누구처럼 죽지도 못해. 그럴 용기도 없죠. 저는….”
차가운 밤의 까만 공기가 둘 사이에 고요한 정적으로 남는다. 잠깐의 고요 안에 갇힌 두 사람이 무심한 어둠에 잡아먹힌 하늘을 멍하니 바라본다.
“죽을 바엔, 때려치우고. 때려치울 바엔, 견뎌보고. 견디기 힘들면….”
고요한 정적을 먼저 깬 건 주 벳위즈였다. 그가 차가운 밤하늘을 향해 고요한 강으로 자그마한 조약돌을 던지듯,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전 사기업에 다닐 때 존경하던 분이 그러더라구요. 죽을 바엔 때려치우고 때려치울 바엔 견뎌보고, 견디기 힘들면 잠시 쉬라고. 쉬어도 괜찮다고. 죽는 것보단 잠깐의 쉼이 낫다고. 사기업 다닐 때는 몰랐는데, 공무원이 되고 보니 왜 공무원이 죽음을 생각하는지 조금은 알겠더라구요. 공무원분들은 공무원을 너무 사랑하는 것 같아요. 공무원 아니면 다른 걸 생각하지 않죠. 마치 그게 전부라는 듯 말이죠. 그렇게 열심히 노력해서 공무원이 되었는데, 막상 공무원이 된 현실은 엉망진창인 걸 매일, 매 순간 보게 되니 구역질이 나고, 그러다 어느 순간 다 끝낼 수 있을 것 같은 달콤한 유혹을 풍기는 죽음과 맞닿게 되는 거죠. 견디기 힘드니까. 현실을 믿을 수 없고, 믿기 싫으니까 말이죠.
평소와 달리 굳은 얼굴로 주 벳위즈가 말을 이어갔다.
“저도 그런 순간이 있었어요. 죽고 싶었고, 때려치우고 싶었고, 견디기 힘들었던 순간들. 왜 나한테만 이런 일이 생길까. 왜 나만 이 모양일까. 왜 나만. 왜 나만... 그런 끝도 없는 자책과 원망과 분노, 그리고 남는 건 한숨뿐. 그때 저 말이 떠오르더라고요. 죽을 바엔 때려치우고, 때려치울 바엔 견뎌보고, 견디기 힘들면… 그때 저는 그 생각을 합니다.”
홀린 듯 주 벳위즈의 얼굴을 바라보던 박 벳위즈가 그의 다음 이야기를 기다린다. 잠시 숨을 고르던 주 벳위즈가 말을 잇는다.
“누군가가 나를 위해 기도하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으면 이 세상을 떠나면 안 된다는 생각. 견디기 힘들면, 그 한 사람을 생각하는 거죠. 물론, 나한테 그런 사람이 있나?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어요. 인간은 계속 불안해하고, 의심하니까. 그런데 분명히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당신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이, 분명 한 명, 아니 더 많이 있을 거예요. 지금의 당신은 이미 잊어버렸을지도 모르지만, 그 한 명은 당신을 위해 오늘도 기도하고 있어요.”
말을 마친 주 주사가 맥주를 입에 털어 넣는다. 그의 말이 박 주사의 마음속에 묵직하게 울려 퍼졌다. 그 순간 박 주사는 예전 이곳에서 같이 맥주를 마신 그 공무원이 떠올랐다. 자신을 위해 기도해 주는 한 명이 있다면, 분명 그녀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캬- 시원하네요. 그나저나, 여기 옥상에서 보는 풍경이 정말 좋네요! 논밭이 쫙 펼쳐져 있는 논밭 뷰라니. 사기업 옥상에선 늘 칙칙한 서울 밤거리만 보였는데 말이죠. 휘황찬란해 보이지만, 실상은 쓸쓸한 적막만 있는 거리. 그것보단 이렇게 풀벌레 소리도 나고, 밤공기도 좋은 여기 논밭 뷰가 짱인데요? 아, 짱은 너무 아재 단어랬죠? 하하!”
주 벳위즈가 심각해진 분위기를 바꿔보려는 듯, 평소의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주사님, 근데 정말… 사기업 어때요? 공무원보다 훨씬 좋지 않아요? 주사님은 그 좋은 사기업 냅두고 왜 공무원 되셨어요?”
박 벳위즈가 물었다. 그 목소리에 짙은 쓸쓸함이 묻어있었다.
“살고 싶어서 킹무원이 되었습니다. 벳위즈님, 혹시 이 말 들어본 적 있으세요?”
주 주사가 맥주캔을 옥상 난간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주 주사의 말에 박 주사는 깜짝 놀랐다. 분명 똑같은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예전 그 공무원도 정확히 이곳에서, 저 주 주사처럼 캔 맥주를 한 모금 마시고 똑같은 말을 했었다.
“살고 싶어서 킹무원이 되었습니다, 라고요...?”
박 벳위즈는 그때의 기억이 떠오르자, 심장이 쿵쾅거렸다.
"맞아요. 살고 싶어서 킹무원이 되었습니다. 제가 여기 처음 출근하던 날, 라디오에서 그 말이 나오더라고요. 무슨 내용이었는지 끝까지 듣진 못했는데, 그 말이 참 좋더라고요. 사기업을 오래 다녔는데, 그곳이 첫 직장이어서 몸과 영혼, 그렇게 제 모든 걸 갈고 갈아서 정말 열심히 일했거든요. 그런데 그 끝은, 비참하더라고요. 제 발로 나가거나, 나가게 하거나. 그리고 그 순간에는 처절하게 혼자더라고요. 뭐, 하고 싶은 이야기는 많지만 말 많으면 너무 아재 같으니까... 음, 사기업이 어떠냐고요? 딱 잘라서, 저는 사기업과 공무원, 둘 중 선택하라면 무조건 공무원입니다. 백번 천 번 생각해도 말이죠. 저는 정말 인간답게 살고 싶어서 공무원이 되었거든요….”
"살고 싶어서 공무원이 되었다고 말했던 공무원이 있었어요."
주 벳위즈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박 벳위즈가 끊어진 쇳소리처럼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 그래요? 그분이 그날 라디오에 사연을 보냈을 수도 있겠네요. 여기서 일하세요? 그럼, 제가 아는 분일 수도 있겠... “
"죽었어요. 여기서요."
주 벳위즈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 차가운 목소리의 박 벳위즈가 대답했다.
"아니, 정확히는 저 아래서요. 주사님 기억나세요? 주사님 임용식 그날 처음 왔을 때 저기다 주차하셨잖아요. 저 자리. 사실, 여기 다니는 공무원들은 저 자리에다 절대 주차 안 해요. 그 공무원이 여기서 몸을 날려 바로 저 자리에 떨어졌거든요. 즉사했죠. 그냥, 뭐 동료에 대한 애도 같은 거 아닐까요. 아무것도 도움이 되지 못했던 자책 같은 거. 이미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짓이지만."
박 벳위즈의 말에 주 벳위즈가 옥상 난간 넘어 주차장으로 눈길을 던졌다. 그동안 몰랐는데 정말 유독 그 자리만 주차선을 새로 칠한 것처럼 하얗게 보였다. 그날 박 벳위즈가 자신에게 그렇게 화를 낸 이유가 이제야 이해되었다.
"죄송해요… 저는 그것도 모르고…."
주 벳위즈가 무거워진 목소리로 말했다.
"에이, 주사님이 왜 죄송해요? 아무도 알려주지 않은 여기 사람들이 죄송해야지. 아니지. 저기서 죽은 그 공무원이 죄송해야 하는 거죠. 만약, 여기 있었다면 분명 죄송하다고 했을 거예요. 그런 사람이었거든요. 뭐가 그렇게 늘 죄송한지, 왜 그렇게 늘 친절하기만 했는지. 주사님처럼요. 참…. 한심한 공무원이었어요. 아아, 주사님이 한심하다는 건 아니고요."
애써 담담하게 말을 잇던 박 벳위즈가 화들짝 놀라며 말을 멈춘다.
"음…. 영광인걸요? 그렇다면 그분도 저처럼 엄청 훈남이었겠군요?"
무거워진 분위기를 바꾸려는 듯 주 벳위즈가 일부러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네? 훈남이요? 아, 그분은 여자였어요. 뭐…. 그랬죠. 후."
박 벳위즈의 입에서 작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손에서 땀이 계속 나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움켜쥔다.
"그러고 보니. 이 손수건도 그녀가 준 거네요. 에이, 안 되겠다. 벳위즈님 맥주 남았어요? 저 한 모금만 마실게요!"
박 벳위즈가 난간 위에 올려져 있던 주 벳위즈의 맥주를 향해 자신의 손을 뻗는다.
"네? 안 돼요, 안돼! 왜 제 걸 뺏어 드시려는 거죠?"
주 벳위즈가 갑자기 정색하며 박 벳위즈의 손길을 막아낸다. 평소와 다른 그의 모습에 박 벳위즈가 서운하다는 눈길로 주 벳위즈를 째려본다.
“여기 한 캔 더 있답니다. 하하. 원 플러스 원이더라고요. 새것 드시면 되지, 더럽게 제 걸 왜 드십니까? 하하.”
주 주사가 능글맞은 목소리로 맥주 캔을 꺼내 건넨다. 치익- 뚜껑을 여는 경쾌한 소리와 함께 박 주사가 맥주를 들이마신다. 오랜만에 마셔서 그런지 취기가 확 올라오는 것 같다. 박 주사는 뭔가 큰 결심을 한 듯 한숨을 크게 뱉고는 말을 잇는다.
“이 손수건, 그녀가 준거예요. 그녀가 여기서 몸을 던지기 며칠 전, 저한테 고백을 했거든요. 맞아요. 젊은 남녀 사이에 흔히 벌어지는 사귀자는 그 고백. 사실 저도 그녀에게 마음이 있었죠. 제 후임으로 들어와서 고생하는 모습을 누구보다 가까이서 봐서 늘 측은했고, 늘 챙겨주고 싶었죠. 그게 좋아하는 마음인지는 그땐 몰랐지만요. 그래서 저는 그녀에게….”
"좋아한다고 답해주셨군요?"
주 벳위즈가 기다리지 못하고 박 벳위즈의 말을 끊으며 물었다.
"네? 아니요. 아무런 답도 해주지 못했어요. 그녀의 고백에 뭐라 말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일주일만 시간을 달라고 했어요. 저는 공무원과 공무원이 사귀고, 결혼하고. 이런 거 정말 싫어했거든요. 월급 백따리 공무원 둘이 결혼하면, 월급 이백따리 가난뱅이 부부 공무원이 될 뿐이고. 그 부부 사이에서 자란 아이는 평생 부모를 원망하며 살 것 같았거든요. 그래서 저는 늘 공무원은 절대 안 사귀겠다고 다짐했었죠. 그리고 며칠 후… 그녀가 죽었죠."
박 벳위즈는 못 참겠다는 듯 다시 한번 목을 젖혀 맥주를 들이켰다.
"그날도 그녀는 초과근무를 했어요. 이미 매달 제한된 초과근무 시간을 이미 넘겼죠. 그만큼 열심히 했어요. 공무원으로서 자신이 하는 일에, 자신이 이 사회의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에 행복해했죠. 그녀의 그 업무는 인계 전에 제 업무였으니 그 업무가 얼마나 힘든지, 그 민원들이 얼마나 지독한지 잘 알고 있었지만 애써 외면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결국 그녀의 고백을 거절할 거라고 결정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정을 끊으려고 했는지 그날은 야근한다는 그녀를 혼자 두고 퇴근해 버렸죠. 그리고 다음날, 뉴스가 말해주더군요. 그녀가 죽었다고.”
박 벳위즈의 어깨가 떨려온다. 손에 움켜쥔 손수건은 눈물처럼 쏟아진 땀에 젖을 대로 젖어있었다.
"악성 민원이었죠. 공원 진입하는 도로 아스팔트가 꺼져서 싱크홀처럼 구멍이 생겼나 봐요. 평소라면 그녀와 같이 일하는 공무직 어르신께 부탁하고 말았을 텐데, 그분이 이미 다른 도로를 처리하러 가셔서 그녀가 직접 현장에 아스팔트가 담긴 봉지를 갖고 나갔나 봅니다. 그녀답게 능숙하게 최대한 빨리 처리는 했지만, 도로를 막고 있어 차가 막힌다는 민원이 시청에 폭주했죠. 그리고 민원인 중 누군가가 담당자인 그녀의 신상을 털어 지역 커뮤니티에 뿌렸고, 선량한 시민이었던 사람들이 순식간에 악성 민원인이 되어 한 공무원을 싸잡아 욕하기 시작했죠. 그리고 재수 없게도 그 커뮤니티 안엔 그 공무원의 어머님이 계셨고, 마녀사냥 당하듯 적나라하게 욕의 창살이 자신의 딸에게 날아와 박히는 그 처참한 글자들을 딸에게 전했죠. 물론 그 끝에는 우리 딸 힘내라는 말과 함께요. 그 딸은 그 후로도 몇 시간 동안 주변 도로의 싱크홀을 메꿨고, 시청으로 밤늦게 복귀했어요. 그리고 <사랑하는 엄마라고 적힌 카톡 창을 아무 생각 없이 열었죠. 그리고…."
박 벳위즈의 눈가에 어느샌가 물방울들이 고여 있었다. 그렇게 그의 어깨가 한번 들썩이자, 눈이 한번 깜박였고, 그 한 번을 시작으로 간신히 눈가에 매달려있던 물방울들이 아래로, 그렇게 하염없이 아래로 쏟아져 내렸다.
“그리고, 뭐 달라진 건 없었어요.
이 세상도, 이 사회도, 이 공무원 조직도, 같이 일하던 동료들도, 그리고 저 역시도…. 모두가 알지만, 아무도 아는 척하지 않는 묘한 일이었죠. 이럴 줄 알았으면 고백에 대한 답이라도 해줄 걸, 내 대답이라도 듣고 가지…. 지금도 가끔 생각해요. 물론, 제 대답이 뭐였을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요. 이 손수건도 그녀가 줬죠. 그녀도 손에 다한증이 있었거든요. 저보다 심했는지 늘 손수건을 두 개씩 들고 다니더군요. 제가 다한증이 있는 걸 알더니 자신의 주머니에서 꺼내 줬어요. 잘 갖고 있다가 꼭 직접 다시 돌려달라는 말과 함께. 남자가 쓰기엔 좀 여성스럽죠? 그래도 여전히 놓지를 못하고 있네요. 돌려줄 용기가 없어서. 저답죠, 참….”
박 벳위즈가 손에 쥐고 있던 손수건을 들어 밤하늘을 배경으로 활짝 펼친다.
두 손바닥을 펼친 크기 정도의 분홍빛 면에 아름다운 벚꽃잎들이 수놓아져 있다. 어디선가 불어온 작은 바람에 손수건이 살며시 휘날리기 시작한다. 펼쳐진 분홍빛 손수건 뒤로 <시청 두 글자가 찬란한 빛을 뿜어내고 있다. 손수건이 봄날의 벚꽃처럼 살랑살랑 박 주사의 손 끝에서 흩날린다.
"어? 벳위즈님! 저 아까 저기서 그거랑 똑같은 손수건 봤는데. 저기! 저거 아니에요?"
흩날리는 손수건을 가만 올려다보던 주 벳위즈가 다급한 목소리로 옥상 구석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곳엔 작은 화분이 있었고, 분명 박 벳위즈의 그것과 똑같이 생긴 분홍빛의 손수건이 화분의 작은 꽃 위에서 마치 손짓이라도 하듯 흩날리고 있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