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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태현 Dec 29. 2024

나만 슬롯 꽁 머니 사람이 되고 있는 것 같아서..


사실, 게을렀던 건 아니야.

사실, 한글자도 쓸 자신이 없었던 건 맞지만.

사실, 그렇다고 하루도 글을 보지 않았던 건 아니야.


회사일도 잘해내고 싶고,

집안일도 잘해내고 싶고,

사실 무엇보다, 너에게 좋은 슬롯 꽁 머니로 남고만 싶지.


그렇게 매일,

내일은 너에게 화내지 말아야지. 소리치지 말아야지.

자상하게 알려줘야지. 인내심을 갖고 웃으며 그러면 안되는 이유를 알려줘야지.

매일 밤 너를 재우고 수면등에 살짝 반사된 너의 얼굴을 보며 슬롯 꽁 머니하고,

사실 그렇게 또 슬롯 꽁 머니고. 그렇게 말야.


그렇게 어렵사리 잠이 들고, 일어난 아침.

그때의 슬롯 꽁 머니을 아직 분명히 기억하건만,

나는 또 너에게 지나고 나면 별것도 아닐 일에, 화가 나고, 소리가 커지고.

그렇게 울상이 된 너와, 더 울적해져버린 인사를 나누고

어린이집에 들여보내고,

무거워진 발걸음으로 회사 사무실 의자에 앉아 9시 땡 업무 시간이 시작되지만,


내 마음은 내게 한마디 투욱.

"오늘도 너는 나쁜 슬롯 꽁 머니였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에게, 어른이라는 너는 또 그랬네.

어젯밤의, 아니 매일 밤의 슬롯 꽁 머니이었던 좋은 슬롯 꽁 머니가 되고 싶다던 그 바램들이,

하루도 지나지 않은 때에, 모두 사라져버렸네. 니 손으로 다 망쳤네.

넌 늘 그 모양이지. 넌 늘 나쁜 슬롯 꽁 머니가 되네. 넌 그것밖에 안되네."


사실, 한마디가 아니네.

공허해진 사무실 모니터를 멀뚱히 바라보지만,

마음에는 죄책감과 자책감과, 그래서 공허한 쓸쓸함이.


'후. 나는 왜 이것밖에 안될까. 매일 슬롯 꽁 머니하고, 매일 나쁜슬롯 꽁 머니가 되네...

나는 나쁜 사람이 아닌데, 왜 나는 자꾸만 나쁜 슬롯 꽁 머니가 되는 것 같을까.'


오늘도 죄책감과 자책감의 그 사이 언저리에서

길을 잃고 슬롯 꽁 머니 눈만 깜빡이고마는 나는,


이런 슬롯 꽁 머니 아빠에게도,

늘 빛보다 밝은 웃음을 지어주는 너에게,

내일은, 내일 하루 만큼이라도 제발 좋은 슬롯 꽁 머니로 남을 수 있는 하루가 되길.


오늘 밤도 슬롯 꽁 머니고, 또 슬롯 꽁 머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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