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래서 슬롯사이트에 오려는 건가
슬롯사이트으로 가기를 결정하고 슬롯사이트에서 일하는 슬롯사이트에 대한 여러 가지 정보를 찾아보면서, 한국과는 꽤 많은 다른 점들을 이미 알고 있었지만 실제 일하면서 정말 그렇구나 했던 업무들과 아는 줄 알았지만 의외로 또 새로웠던 것들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내가 현재 근무 중인 슬롯사이트의 급성기 대형병원이 기준이며 같은 주에 있다고 해도 다른 병원은 어떤지 경험하거나 들어보지 않아서 아직 비교는 어렵다는 것을 전제로 하겠다.
우선, 슬롯사이트가 맡는 환자의 수가 5명 이하이다. 데이근무에는 4명을 맡고, 나이트에는 5명을 맡는다. 인력이 부족할 때는 더 맡기도 한다는 말도 들었지만 지금까지는 이 비율을 유지하고 있다. 아마도 코비드 시즌에는 원하지 않았지만 무지막지한 비율의 환자를 감당했을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그렇게까지 슬롯사이트들을 혹사시키는 분위기라면 인력들이 남아있지 않는다. 같은 병원이어도 부서에 따라 비율은 달라지는데, 내가 있는 내과병동이 최대인원을 맡는 것으로 알고 있다. 중환자실이나 다른 특수병동에 가면 훨씬 담당환자의 수가 적은데 내가 근무하는 병원은 이 지역에서 가장 위중한 환자들을 맡는 편에 속하기 때문에 이 정도의 비율을 지키고 있다. 당연히 재활병원이나 널싱홈으로 갈수록 중증도가 낮아지기 때문에 슬롯사이트 한 명당 맡는 환자의 수는 늘어난다.
한국에서는 슬롯사이트간병통합병동에서 일할 때 15명이 최소였고 대부분 20명 이상의 환자를 봤던 것에 비하면 일단 인원수만으로는 한국과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 되는 것이다. (이전에 썼던 '누가 편하게 일한다고 했니?'편에서 인원수가 다가 아닌 이야기를 좀 더 자세히 다뤄놓았으니 참고 바란다.)
둘째, 출근하는 시간과 퇴근하는 시간은 칼 같다. 자신의 업무를 잘하고자 조금 일찍 와서 환자파악하고 업무준비를 하는 슬롯사이트들도 있다(사실 나도 거기에 속한다). 하지만 대부분 7시까지 출근이면 6:55부터는 출근을 찍을 수 있기 때문에 그 이전에 출근하는 경우는 드물다. 간혹 7시 정각에 세이프로 출근 찍는 슬롯사이트도 있으나 문제 되지 않는다. 한국처럼 암묵적으로 30분-1시간, 또는 그 이상 일찍 출근해서 업무 준비를 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다. 퇴근하는 것도 인계를 끝내고 혹시나 바빠서 정리해야 하는 업무가 남아있는 경우-특히 차팅-가 아니라면 다들 돌아서서 퇴근 찍고 안녕이다. 차팅이 밀린 경우에는 인계 후에 마무리를 하고 오버타임일지에 작성 후 퇴근을 찍고 간다. 물론 업무가 늦어진 것이기에 돈으로 다 계산해 준다.
셋째, 물품카운트 안 한다. 한국에서도 세상 불만족했던 업무인데, 슬롯사이트에서 슬롯사이트는 물품관리자가 아니다. 있는 물품은 사용하고 없으면 채워 넣고 쓰면 되는 것이 당연하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는 아껴도 너무너무 아낀다. 아끼다 못해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사람을 쥐어짠다. 비용절감이 기업에 중요한 부분이라는 것은 나도 알지만, 슬롯사이트는 환자를 간호하고 건강을 책임지는 사람이지 청소하고 물품관리하는 인력은 절대 아니다. 그럼에도 매번 듀티 때마다 물품을 세고, 없어진 물품을 찾고, 찾지 못하면 자기 돈을 들여 채워 넣어야 하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우리나라병원에서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이런 부분이 슬롯사이트에 와서 너무나 시원하게 해결되어 정말 만족스럽다. 이곳에서는 청소하는 인력과 떨어진 물품을 채워 넣는 인력이 따로 존재한다. 대부분 필요한 물품은 떨어지기 전에 채워진다. 그래도 사용량이 많아 일찍 떨어진 때에는 차지널스가 그 부서에 연락을 해준다. 그러면 알아서 와서 채워놓고 간다. 슬롯사이트는 필요한 물품을 환자에게 사용할 수 있도록 이용하는 입장이지, 그 물품의 비용을 절약하고 아끼기 위해 관리하는 사람은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낭비할 이유도 없다. 써야 하는 물품이니까 쓰는 것이다. 땅덩어리가 크고 여러 인종과 민족이 함께 사는 나라인지라 다양하고 엄청나게 많은 감염에 대한 주의가 필요하기에 대부분의 물품을 일회용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서 때로는 여러 번 사용하는 물품이 낯설지경이다.
넷째, 환자를 위해 의사소통을 하는 의사, 약사, 이외 전문가들과의 동등한 지위를 가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슬롯사이트의 인식이나 실제 업무에서의 권한이 너무나 낮다. 전문직으로 교육받고 면허를 취득했음에도, 특히 의사와는 상하관계로 이루어져 있고 슬롯사이트는 업무에서의 의무와 책임은 있지만 권한과 자율성이 거의 없다는 점에서 무척 불만이 많았다. 의사와 슬롯사이트는 환자를 치료하고 건강을 회복하는 과정에서 담당하는 업무의 분야가 다른 것인데 의사가 시키는 일만 하고, 슬롯사이트인 내가 어떤 상황이나 결정에 의문을 가지거나 의논을 한다는 것 자체가 하극상이 되어버리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적어도 슬롯사이트에서는 언제나 의사들과 환자의 건강문제에 대해 의논할 수 있고, 나의 의견을 피력할 수 있으며, 모르는 것이 있을 때에도 질문을 하거나 의문을 제시했다고 해서 멍청하다는 비난을 받지 않는다. 슬롯사이트라는 슬롯사이트에 따른 업무의 제한은 있겠지만, (예를 들면, 처방) 내 환자를 내가 지킨다는 마인드로 일할 수 있다는 것이 슬롯사이트로서의 자존감을 가지게 한다. 물론 사람에 따라서는 한국보다 더 꼰대들도 있지만 그건 어디나 있는 예외라는 것.
다섯째, 쉬는 날 무조건 나와서 교육받는 일정은 없다. 교육을 받는 것조차 여러 날짜가 있어서 자기가 선호하는 날짜를 선택해서 받을 수 있고, 만일 쉬는 날 교육이 있다면 그날은 결국 출근을 한 거라서 급여를 받는다. 나는 한국에서는 병동슬롯사이트로 경력이 거의 없는 편이기 때문에 동기들이나 다른 슬롯사이트들에게 이야기를 들은 것이지만, 컨퍼런스나 여타 교육등에 참석해야 하는 경우는 쉬는 날이 대부분이라고 했다. 근무가 있는 날 일하다 중간에 교육을 받으러 가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고, 쉬는 날 교육을 받지만 그에 대한 수당이나 급여는 없다. 지금은 달라져서 급여를 주는지 궁금하다. 적어도 내가 일하던 시절에는 그런 생각을 하는 건 말도 안 되는 망상에 해당했다. 슬롯사이트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이미 알고 왔기 때문에, 당연히 돈으로 내 시간에 대한 대가를 받는다. 그리고 교육의 종류에 따라서는 근무 중에 가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도 요즘은 돈 줘도 교육가기 싫을 때가 있다. 배가 불렀다.
여섯째, 사람이 고생하지 않고 가능하면 도구와 기구를 이용한다. 이 부분은 비단 슬롯사이트의 영역에만 해당하진 않지만 슬롯사이트가 경험하는 환경에서 다른 점을 말해보려 한다. 동네 작은 종합병원에서 잠시 일했을 때, 내과병동이었기 때문에 수많은 항생제와 구토방지제, 위장보호제등의 주사약을 수십 개씩 준비하며 달았던 경험이 있었다. 정맥주사제가 잘 들어갈 수 있는지 환자의 정맥주사를 확인하기 위해 식염수(NS)를 먼저 통과시키고 난 이후에 수액을 달아주게 되는데, 요즘은 제품화되어 나오는 것이 있고 사용하는 곳도 많다고는 하지만 역시나 한국에서는 그 모든 것이 다 돈이다. 그래서 큰 식염수 수액에서 5cc, 10cc 등 주사기로 빼서 담는 일이 업무 중 가장 먼저 하는 일이었다. 보통 한 번에 50-100개의 주사기에 식염수를 담는 준비를 하게 되는데 일일이 손으로 해야 하는 것이라 손이 정말 아팠다. 그래도 막상 환자방에 드나들며 사용하기 시작하면 준비해 둔 것도 모자라 그 자리에서 작은 식염수 통을 또 따고 새로 만들어 쓰는 일도 다반사였다.
슬롯사이트은 프리필드시린지(Pre-filled syringe)가 제품화되어 있고, 어떤 슬롯사이트도 큰 수액팩에서 식염수를 만들지 않는다. 그에 더해 찔림 방지를 위해서 모든 정맥주사가 바늘이 없는 상태로 사용할 수 있게 되어있다. 처음 정맥주사를 환자에게 심어줄 때를 제외하고는 수액이나 여러 치료제들을 연결할 때 전혀 바늘이 없는 도구를 사용하고 있다. 그럼에도 근육주사나 피하주사 등을 주다가도 찔릴 수 있어서 찔림 주의 교육을 철저하게 한다.
이외에도 환자가 상지의 힘은 있으나 하지를 움직이기 힘들거나 힘이 없는 경우에 환자의 이동을 위해 사용슬롯사이트 기구가 병동마다 있다. 워커나 지팡이 등도 사용할 수 있지만, 환자의 걸음이 불안정한 경우 자칫 낙상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충분히 안전한 기구를 이용해서 환자를 옮기도록 한다. 내가 사용슬롯사이트 기구는 우리나라에서는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것이었기에 아마도 우리나라에서는 오로지 사람의 힘을 이용해서만 환자를 병실 내 변기(BSC;bedside commode)나 침상에서 의자로 옮기는 일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마지막으로, 이건 업무는 아니지만 업무와 관련된 것이라 언급하고 싶은데, 슬롯사이트은 아플 때 무조건 참고 일하는 문화가 아니다. 한국에서는 오늘 근무를 하는 날인데 갑자기 두통이 심하다거나 배가 아프다거나 또는 아이가 아파서 근무를 하기 곤란한 상황이 생겼다면? 그건 니 사정이다. 무조건 출근해야 하는 일일 뿐이고, 특히 내가 아픈 경우라면 내 근무지가 병원이기 때문에 가서 해결해야 한다. 심지어 출근해서 일하다 쓰러져서 응급실에 가서 수액 꽂고 돌아와 일하는 경우도 들었다.
나도 경험이 있는데, 상급종합병원에서 일했을 때 일하던 중 너무 어지럽고 복통이 심한 나머지 잠시 화장실에 다녀오겠다고 했다가 탈의실에서 정신을 잃었는데, 함께 일하던 의사가 수액을 놔줘서 급한 불만 끄고 폴대를 끌고 다니며 일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다들 그렇게 일슬롯사이트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슬롯사이트에서는 씩콜(sick call, or call in sick)을 쓴다. 1년에 정해진 기준시간까지 쓸 수 있고 내가 아플 때는 당연하고 나의 가족이 아플 때에도 쓸 수 있다. 나의 경우에는 스태핑오피스에 오늘 콜씩을 쓰겠다고 말하고, 차지널스에게 연락해 줘야 나를 대신할 슬롯사이트를 배정받을 수 있기 때문에 두 곳에 전화해야 한다. 그리고 어느 누구도 어디가 아프냐, 그 정도면 일해도 되는 거 아니냐 등의 말을 절대 하지 않는다. 그런 말을 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는 직장도 있고 다들 상식선에서 정말 필요할 때만 쓰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만일 아픈데도 불구하고 출근을 해서 일하고 그러다 쓰러지거나 업무에 지장을 준다면 결국 같은 날 근무하는 다른 동료들과 담당한 환자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 되기 때문에 절대 그런 일은 있어서는 안 되는 곳이 슬롯사이트이다.
이외에도 사소하지만 한국에서는 상상해 본 적도 없는 여러 가지 것들이, 슬롯사이트에서는 매우 상식적이며 일반적인 경우가 있지만 오늘은 대표적인 것이라 생각되는 것들만 나눠보았다. 슬롯사이트이 완벽한 나라인 것도 아니고 무조건 우리나라보다 좋은 나라라는 말도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슬롯사이트로 일하면서 겪어본 두 나라의 차이점을 몸소 느끼며 이런 것은 슬롯사이트이 월등히 만족스럽다는 말은 할 수 있을 것 같다.
만일 슬롯사이트에서 슬롯사이트로 일하며 살아보고자 고민해 보는 분이 계시다면 이곳은 이런 상황이라는 것을 아는 것이 도움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