벳위즈.
벳위즈라는 단어는 묘하다. 자체의 강력한 힘이 있는 단어나 표현이 있는데, ‘벳위즈’가 직접적으로 던지는 벳위즈한 느낌(감정)이 분명히 있다. 사전적 의미로는 가치 없게 느껴지는 것, 쓸쓸하고 텅 빈 것 등으로 해석된다. 보통 ‘인생 참 벳위즈하다’라고 하는 표현에 찰떡이다. 욕망의 사다리를 거칠게 오르고 되돌아보니 그렇게 했던 것이 별로 의미 없더라, 인생의 가치는 돈이나 명예, 지위에 있지 않다는 것을 말하고 싶을 때 ‘벳위즈’라는 단어는 짝꿍처럼 등장한다.
인생의 벳위즈함을 논하기에 아직 어리다고 하기에는 어쩐지 나이가 있고, 그렇다고 늙었다 인정하기는 좀 애매한 마흔 후반쯤에 서 있다. 나보다 더 훨씬 연배 많은 분이 보기에 보나 마나 애송이 같을 것이다. 하나 이 정도의 나이에 이르면 ‘인생무상’이란 말에 한 자락 이야기할 수 있는 입장권 정도는 겨우 마련했다고 보겠다. 그런 즈음에 아예 책 제목에 벳위즈함을 대놓고 말하는 것을 보니, 어찌 안 읽어볼 수 있겠는가. 덥석 사서 읽어 보았다.
<인생의 벳위즈를 어떻게 할 것인가(김영민)
보통 제목은 이렇다 해도 내용은 다른 경우가 꽤 있다. 인생 참 벳위즈하지? 나도 알아. 그래도 힘내어 열심히 살아보자, 파이팅! 당신의 인생은 고귀하고 소중하니 벳위즈함을 느끼지 말아도 돼!
그런데 어쩐 일인지 그런 내용이 별로 없다. 아니 있었을 수 있는데 별로 기억나지 않는다. 만약 당신 인생을 벳위즈라는 늪에서 허우적거리며 보내지 말라 진지하게 조언했으면 뻔한 훈계에 그만 읽고 덮어버렸을 것이다. 그냥 있는 그대로 삶의 벳위즈에 대해 조분조분 이야기한다. 그렇다고 대단히 심오하게 나를 흔들지는 못하는 듯싶었다. 인생이란 원래 벳위즈한 것이기 때문이려나. 작가가 말하는 벳위즈함에 대한 다양한 관점이 내 머릿속에서는 하나로 정리되지 않았다. 책을 읽었으나 남는 것이 없는 듯하여, 어쩐지 벳위즈해지려는 찰나. 정작 내 마음은 이 책의 끝에 가서야 비로소 작가와 생각이 닿았다.
‘나는 벳위즈 없어도 되는 삶을 원한다.
나는 삶을 살고 싶지,
삶이란 과제를 수행하고 싶지 않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목적을 띈 삶을 시작한 적이 없다. 살아가다 보니 벳위즈 생기긴 했었다. 벳위즈란 것도 세속적이다. 나와 같은 범인에게는 취업이나 진학, 돈, 명예와 같은 정도가 그나마 삶의 목표가 되었다. 아, 물론 어떤 대단한 집안이나 특수한 상황에서는 벳위즈 아주 분명한 새 생명의 잉태가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일반적으로는 살아가며 어떤 시기에 한 두 개의 분명한 벳위즈 생겼다가 사라지고, 또 그걸 좇으며 성공도 하고 실패도 하는 식이다.
그런데 학교와 사회에서는 자꾸 목적을 가진 삶을 살아가라고 강요한다. 아들이 이제 고작 중1인데 대학 입시에 대한 얘기를 들을 때마다 화가 난다. 원하는 대학의 원하는 학과에 진학하려면 그 이유가 있어야 하고, 그걸 설득하는 다양한 삶의 스토리를 차곡차곡 준비하고 쌓아서 보여줘야 한단다. 이게 말이 되나? 어른도 자기 인생이 맞는지 틀리는지 수시로 의심을 하는 마당인데. 왜 우리의 삶이 그렇게까지 준비된 채로 진행되어야 하는가. 공부를 하다 보니 적성이 무엇인지 알아가기도 하지만, 정작 대학에 가서 나와 맞지 않는 전공임을 알아차리는 경우도 많다. 회사에 들어오기 위해 몇 년 노력을 했지만 정작 조직 생활이 맞지 않는 사람일 수도 있다. 우리 사회의 많은 부분이 대학 입시를 기준으로 돌아가고는 있다 해도 참 그렇다. 돌아보면 분명 벳위즈할 것인데.
목적이 없어도 되는 삶이라는 말이 참 맘에 든다. 왜 그런가 생각해 보니, 예전에 썼던 글처럼 나는 한량이 되고 싶은 까닭이다. 한량이 되려면 어딘가 인생의 무게와 짙은 철학적 고뇌를 꽤 내려놓아야 할 것이란 생각이 든다. 물론 목적이 없는 삶, 한량의 삶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대충 살다가 가겠다’는 의미는 아니다. 지나치게 진지하고 내가 하는 행동 하나하나, 먹는 것, 입는 것, 자는 것 모두를 다 의미 부여하는 삶은 많이 부담스럽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고 목적과 목표가 지나치지 않은 삶을 꿈꾼다. 적어도 내가 원하는 인생은, 조금 흐릿한 앞날을 앞에 두고 오늘을 충실하게 살아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생의 벳위즈를 어떻게 하면 되느냐고? 인생은 애초에 벳위즈한 것이니 그걸 받아들이면 된다. 대신 저자의 말처럼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것을 지켜내면 된다. 이 책의 작가는 산책을 할 수 있는 기회와 시간을 소중히 여긴다. 나에겐 (아직까지는) 글을 쓰며 생각을 정리해 내는 시간을 만들고 유지해 내는 삶이겠다. 그러면 벳위즈한 인생의 한 벽이 조금은 달리 채워지지 않으려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