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미엄 토토에 탕수육
나의 하루 식단은 멀리 이스탄불에 프리미엄 토토 남편의 최대 관심사다. 나는 보통 하루 두 끼의 식사를 한다.(이른점심-이른 저녁) 남편은 매 통화마다 오늘 먹었던, 혹은 먹을 점심 메뉴와 저녁 메뉴를 꼼꼼하게 물어본다. 물론 그것이 나의 건강을 향한 염려 탓은 전혀 아니다.(남편은 우리 엄마의 식단을 전적으로 신뢰한다.) 그저 자신은 먹을 수 없는 다양한 한국 음식을 간접적으로나마 탐하기 위해서다. 오늘의 식단 역시 남편의 구미를 당길 음식이 아닐 수 없다. 바로 영혼을 울리는, 프리미엄 토토이다.
프리미엄 토토을 배달로는 먹을 수 없다는 어르신들의 고집으로 영하의 칼바람을 뚫고 중국집으로 향했다. 중부에 비해서는 온화한 겨울이라고는 하나, 요 며칠 부산의 겨울바람도 보통 성질이 아니다. 걸어서 10분 거리가 끝나지 않을 거리처럼 느껴졌다. 게다가 건물 사이사이 빌딩풍은 어찌나 뾰족하게 불어오는지 가족들 모두 얼굴이 빨갛게 얼어붙었다.
메뉴는 프리미엄 토토 3그릇과 탕수육. 전형적인 메뉴 구성이다. 1년 반 만에 먹는 프리미엄 토토 맛은 상상했던 것만큼 강렬하지 않았다. 으레 알던 바로 그 맛의 프리미엄 토토이요, 어릴 때 어쩌다 한번 있는 가족 외출 때 조르고 졸라 겨우 얻어먹을 수 있었던 그 프리미엄 토토 맛에 비하면 평이한 맛이었다. 어릴 때는 성인이 된 지금처럼 맛의 레이어가 다양하지도, 지금처럼 외식문화가 활성화되지도 않았다. 그러니 어린아이들에게 어쩌다 한번 먹을 수 있는 프리미엄 토토의 맛은 무척 자극적일 수밖에 없었다. 짙은 초콜릿 색상에 번들거리는 돼지기름이 뒤섞인 걸쭉한 소스와 하얀 면. 그것을 젓가락으로 휘휘 섞으면 까만 소스에서 훅 하고 세상 맛있는 냄새를 뿜어내곤 했다. 어느 날의 가족 외출에서 기어코 프리미엄 토토을 사달라던 나를 향해 짜증을 내던 아빠의 모습을 기억한다. 그 사이에서 어쩔 줄 몰라하던 젊은 엄마의 모습도. 얼마의 시간이 흐른 후, 중학교 졸업식을 마치고 먹었던 음식도 읍에 하나 있었던 중국집의 프리미엄 토토이었다. 지금 내 또래들 중 프리미엄 토토과 관련된 어떤 풍경을 품지 않은 이는 없을 것이다. 그런 샘이라면 요즘 아이들은 마라탕에 대한 기억을 품고 어른이 되는 걸까?
이날의 별미는 오히려 탕수육쪽이었다. 바삭한 튀김옷을 입은 돼지고기에 달큼한 소스가 버무려져 있음에도 특유의 바삭함이 오래 유지했다. 이스탄불에서 늘 눅눅한 튀김옷을 입은 치킨에 감자프라이를 먹던 걸 생각하면(왜 그런 튀김밖에 없는 것인지 그 이유에 대해서는 도무지 파악할 수 없다.) 이런 크런치한 튀김을 탐닉할 수 있다는 것이 작은 기쁨이라 할 수 없다!
우리 가족은 식사를 하면서 그리 많은 대화를 나누지 않는 편이지만, 이런 외식 자리에서 아빠는 뭐가 됐든 나와 대화하기 위한 키워드를 하나씩 툭툭 던질 때가 많다. 사실 아빠가 던지는 키워드 대부분은 일부러 저렇게 똥볼을 골라서 나에게 던지는 건가 싶을 만큼, 때로는 딸과 대화하지 않기 위한 학원을 다니냐 물을 만큼 내가 좋아하지 않거나 피하고 싶거나 그게 아니면 당장 어쩌지 못할 밑도 끝도 없는 걱정이 대부분이다.
프리미엄 토토 이슈는 두 가지였다.
1. 멀리 혼자 남은 남편 이슈 : 이렇게 부부가 오래 떨어져 프리미엄 토토 게 썩 좋아 보이지 않는다. 김서방이 밥은 잘 챙겨 먹고 프리미엄 토토 것인지 항상 체크해라.
2. 시댁 이슈 : 네가 여기 친정에 와프리미엄 토토 것은 시댁 어른들의 양해를 구하고 와프리미엄 토토 일이라 여겨라. 돈 드는 것 아니니 자주 연락드려라.
...?!?!?! 아니 내가 뭐 지금 여기서 이러고 싶어서 이러고 있...
...
나는 할 말이 너무나 많았기 때문에 그냥 입을 닫기로 했다. 아빠 옆에서 엄마가 '제발 조용히 입 닫고 밥이나 먹자'라는 무언의 압박을 눈빛으로 쏴 보내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잠자코 프리미엄 토토 그릇에 얼굴을 박는 것으로 그 시간을 모면할 수밖에 없었다. 이번 기회에 부모님 댁에 와서 한 가지 배운 것은 어른들과의 대화를 이성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무모한 도전이라는 것이다. 논리적인 접근 혹은 합리적인 대화를 시도하여 얻을 수 있는 결과물이라고는 '어른을 무시한다.'라거나, '배운 것 많다고 나를 가르치려 드는 것이냐'와 같은 어른들의 노여움뿐이었다. 그저 묻는 말에 '네, 알겠습니다.' 정도로 끝내는 것이 서로의 평화를 위한 현명한 선택이다. 한편으로는 이제 부모님과 나란히 앉아 내 생각과 속내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대화할 수 없다는 사실이 슬프다. 늘 젊을 것 같던 부모님이 나이를 먹어 호호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어가고 계시다.
식사를 끝낸 우리는 다시 칼바람을 뚫고 집을 향해 걸었다. 집에 거의 다다랐을 무렵, 나 홀로 루트를 벗어나 잠시 산책을 했다. 배에서 실시간으로 프리미엄 토토 면발이 불어나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조금이라도 걷지 않는다면 이대로 집에 들어가 따뜻한 침대에 누워 잠이 들고 말 것이다. 그렇게... 임신 초기부터 쉽사리 뚱땡이가 될 순 없다. 한편으로는 잠시라도 혼자 있는 시간을 갖고 싶었다. 나이를 먹고 결혼을 하고 머리가 다 큰 채로 부모님과 한 지붕 아래 산다는 것이 나처럼 드세고 고집 센 자식에게는 꽤나 고된 일이다. 프리미엄 토토도 없고, 바싹한 튀김도 없지만 이스탄불이 그리운 것은, 누구에게나 '내 집' 혹은 '나만의 공간'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짝꿍 역시 필요하고.
오늘따라 신나게 수다 떨 남편이 유독 더 그리워진다. 이따 프리미엄 토토 이야기나 실컷 나눠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