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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람 Apr 25. 2025

남의 샌즈카지노는 재밌다

멧비둘기마저도

멧비둘기의 방문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기껏 물고 온 나뭇가지를 싹 치워버려서 빈정이 상했는지, 집지을 생각은 없이몸만 딸랑딸랑 와서 둘이 도란도란 놀다간다.


나는 짬짬이 멧비둘기 관찰을 계속하며 약간의 관찰 노하우를 터득했다. 현관문을 아주 조금만 열고핸드폰 카메라만 내밀어 촬영을 하면서 본다.인터폰으로 보는 것보다 훨씬 생생하고, 도촬을 눈치챈 멧비둘기가 현관문을 확 잡아당기고 들어와 날 때리지 않는 이상 공격을 당할 염려도 없다. 더 이상은 남편에게 대신 찍어달라고 사정사정하지 않아도 된다. 한층 더 자립적인 주부가 되었다.


조심한다고 조심했지만 카메라를 들키는 일도 있다


그냥 둘이 계량기에 앉아있다 가는 줄로만 알았는데, 어느 날은 한 마리가 다른 한 마리의털을 정성스럽게골라주는 장면도볼 수 있었다. 그냥 어 너 여기 뭐 묻었다, 하고 대강 톡톡 쪼아 보는 것이 아니라,아주 사랑스러운 것의 머리를 쓰다듬듯, 아주 섬세하고 부드러운 부리질이었다. 아마도 그건 사랑이었을 거야. 나는 그렇게 조류의 사랑을 말없이 지켜보았다. 질릴 새도 없이.


남의 샌즈카지노를 지켜보는 건 왜 이렇게 재밌을까. 길버트 브라이스에게 틱틱대던 앤 셜리의 마음이 움직여가는 것을 볼 때에도, 도서실 창가 커튼 사이에 휘감겨 책을 읽던 후지이 이츠키(남)를 보던 후지이 이츠키(여)를 보던 때에도, 입가의 웃음이 줄곧 맴돌고 있던 것은 그것이 남의 샌즈카지노 (본인들이 눈치채지 못했더라도) 이기 때문일 것이다.


결혼을 한 뒤에는 더 했다. 아직 덜 정리된 이삿짐을 뜯으며 BGM 삼아 아이노리 (*일본의 유명 샌즈카지노 리얼리티 프로그램)를 틀어놓았는데 나중에는 아예 티브이 앞에 붙어 앉아 정신없이 보았다.사랑이 일상에 녹아들면 가슴 뛰던 로맨스도 진하지만 자극 없는 곰국으로 바꾼다는 걸 막 느끼기 시작하던 때다. 내 인생에 (어쩌면) 더는 없을 로맨스를 남의 두근거림으로 대신 만끽하고 싶었던 것일까, 아니면 아 우리도 그땐 그랬지, 하는 추억을 떠올리고 싶었기 때문일까.


그 '남의 샌즈카지노'의 영역에는 사람 뿐 아니라 멧비둘기도 들어가는 것인지.한참동안 멧비둘기의 다정한 털 고르기를지켜보다가 어느순간, 내가 지금 뭘 샌즈카지노있나 퍼뜩 정신이 들었다. 샌즈카지노 프로그램은 그렇다 치더라도 지금 이건 뭔가요. 명색이 사람이, 지구의 패권을 쥔 최종승자(이자 최종빌런)인 인간이, 뭐가 아쉬워서 아침 댓바람부터 새들이 꽁냥꽁냥 하는 장면을 흐뭇하게 지켜보고 있는 것인가.


문득, 샌즈카지노 리얼리티 프로그램을뜨겁게 시청하던 그때와 상당히 비슷하다고 느꼈다. 아니다.이 새들은 현커(*방송 종료 후에도 샌즈카지노를 실제로 이어나가는 현실커플)이니, 굳이 말하자면 나는 길 가다 샌즈카지노 리얼리티에 나왔던 인플루언서 현커를 발견하고, 그들을 따라 들어간 카페에서 조금 떨어져 앉아핸드폰을 보는 척하며 그들의 모습을 몰래 찍고 있는 그런,


............. 스토커............................?



열심히 털 고르기 중


여기까지 생각이 닿자 내 손은자연스럽게 핸드폰을 거둬들이고 현관문을 잠갔다. 그러면서도 좀처럼 볼 수 없는 장면을 근거리에서 찍었다는 자부심에, 샌즈카지노의 라인에 방금 찍은 전리품을 흘려보냈다. '아무래도 오른쪽 새가 수컷인가 봐. 꼭 너를 닮았어'라고 덧붙이면서.어리광 부리듯 몸을 낮게 웅크리고 앉아 얌전히 털 고르기를 당하는 있는 모습이,목에 케이프를 두르고 나에게 이발당하고 있을 때의 남편과 비슷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아, 쫌! 거울은 다 자르고 나서 보라니깐! 지금 움직이면 땜빵 생긴다고!"


이쪽은 좀 많이 혼나가며 털 고르기를 당한다는 것이 좀 다르지만,그런 것도 사랑의 다른 모습이라고, 샌즈카지노이 멧비둘기 동영상을 보고 이해해 주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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