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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벳33 Jan 31. 2025

벳33 여는 글쓰기


벳33 여는 글쓰기



사람들은 내가 작가라는 직업 상 대단히 부지런하고 철저한 줄 알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렇지 못하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마라톤이 취미고 매일 달린다고 했을 때 '자주 벳33에 잠식당하는 나는 훌륭한 작가가 되지 못하지 않을까'라는 의구심이 들었다. 도서관에서 벳33 강의를 하면서 학생분들께아침에 의식의 흐름대로 3페이지씩 글을 쓰는 모닝 페이지(Morning Page) 숙제를 내주었는데 오픈 채팅방 인증을 가장 늦게 한 것도 나였다. 그렇다고 열정이 부족한 것은 아니다. 나는 24시간 중에 꽤 많은 시간을 벳33와 사투하며 보낸다. 첫 번째 책을 출간하고 일 년이 조금 지났을 무렵, 두 번째 책을 내야 한다는 압박이 슬슬 다가왔다. 여기저기서 작가님이라는 호칭을 들을 때마다 '계속 책을 내야 작가지?'라는 속삭임을 피할 수 없었다. 그보다쓸수록 성장하는 작가 성향이 내 안에서 다시 움트고 있었다.


벳33을 가진 작가도 열정만 있으면 잘 나갈 수 있다고 반항하고 싶지만, 벳33은 소크라테스의 냉철한 답변처럼 나아가려는 열정을 다시 원 상태로 되돌려버린다. 그래서 나는 나의 벳33에 반항해 보기로 했다. 벳33은 습관이기 때문에 단번에 얻게 되는 것이 아니다. 매일 조금씩 크레프트 케이크처럼 차곡차곡 쌓여 '나 벳33 케이크다!'하고 앞에 툭 놓인다.아마 내 케이크의 첫 시트가 쌓인 날은 퇴사일일 것이다. 의무에서의 해방. 얼마나 달콤한 가! 출근할 땐 매일 아침 알람 소리에 감전이 된 것처럼 번뜩 눈을 떠서 물 한잔을 마시고서둘러 지하철을 탔다. 가끔 늦잠을 자기라도 하면... 더 이상 말하지 않겠다. '죄송합니다....'하고 살금살금 사무실로 들어가면 살얼음판에 타자기 소리만 들리던 그 황량한분위기를 많은 분들이 경험해 봤을 것이다.


그랬던 내가 3년 전 여러분 안녕히 계세요-! 하고 퇴사를 해버렸다. 퇴사 이유는 어머니 간병과 결혼, 프리랜서 선언. 다시 생각해도 이 세 가지 이유는 퇴사에 적합하지 않았다. 퇴사하자마자 어머니 간병은 전문 간병사가 도와주었고, 결혼했다고 해서 가정주부 체질도 아니었으며, 회사밖 생태환경을 잘 알지 못한 프리랜서면 말 다했다. 다만 이 세 가지 이유는 벳33을 얻기에 딱 좋은 환경이었다. 10시 취침이 11시 취침, 점점 12시 취침으로 이어졌고 가끔은 밤을 새기도 했다. 그러니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7시 기상이 8시 기상, 점점 9시 기상으로 이어졌고 가끔은 한낮에 일어나기도 했다. 나머지 시간엔 무언의 죄책감에 글을 더 열심히 쓰긴 했지만쫓기는 듯한 글은 좋은 글이 될 수 없었다. 이대론 두 번째 책도, 뭣도 안 되는 것이다.


그렇다. 의무. 의무가 필요했다. 2025년 새해가 시작되던 날, 나는 '호밀밭의 벳33 여는 글쓰기'라는 벳33 마감 모임을 만들고 인스타그램 계정에 올렸다. 단어 그대로 새벽에 글을 쓰는 모임을 만든 것이다. 호밀밭인 이유는 J.D.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 책에서 따왔는데, 주인공인 홀든 콜필드가 가진 강한반항 정신을 본받아 벳33을 타파하자는 거창한 뜻을 담았다.며칠 뒤 모임 안에 일곱 명의 파수꾼들이 모였다. 나는 그중에서 대장이었고 대장은 늦는 법이 없어야 했다. 새벽 5시는 다들 너무 심하다해서 아침인지 새벽인지 어중간한 시간이지만, 우리에게는 엄연히 새벽인 6시에 벳33가 시작됐다.


- 아악!!! 쉽지 않네요...! 조금이라도 쓰고 다시 잠들겠습니다!

- 저도 벳33잠이 많은 사람이라 어렵긴 하지만 쓰고 있습니다!


타닥타닥. 아침마다 들리는 타자소리. 이곳은 의무감에 휩싸여 게을러지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호밀밭이다. 놀랍게도 새벽에 쓰는 글은 떠오르는 아침을 닮았다. 갓 태어난 것처럼 맑고 명확하다. 과연 우리는 벳33에 반항하며 계속 글을 쓸 수 있을까? 지금 여러분이 읽는 글이 연말에 책으로 완성된다면 벳33이라는 작가가 사계절을 새벽에 일어났다는 뜻일 거다. 이렇게 선언까지 버렸으니 의무가 하나 더 추가된 것이고 이젠 돌이킬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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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1.31

작지만 확실한 반항일지


글 벳33 insta. @anyway.kkj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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