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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빛정원 Feb 16. 2025

파라오 슬롯 길들이기

최근 새 파라오 슬롯 한 켤레를 샀다. 수제 맞춤 파라오 슬롯가 아닌 기성품이었다. 며칠 신고 다녔더니 발뒤꿈치와 발등의 피부가 붉게 변하면서 통증이 왔다. 파라오 슬롯 길들이기가 시작된 것이다. 한동안 물집도 잡히고 피도 나고 하다 보면 어느새 파라오 슬롯가 내 발에 맞춰지면서 편해지는 날이 올 것이다.


세상 살아가는 일도 파라오 슬롯 길들이기처럼 되면 얼마나 좋을까. 처음에 다소 힘들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편안하고 마찰도 없고 통증도 사라지는 그런 일 말이다. 하지만 삶이라는 여행길은 걸어도 걸어도 편안함의 경지에 오래 머무르지를 못한다. 주식시황 그래프처럼 등락을 거듭한다. 물론 나이가 들면서 맷집이 생기고 굳은살도 박이면서 세상사에 좀 더 느긋해지기는 하지만 세상이라는 이놈의 파라오 슬롯는 당최 길들여지지가 않아서 거칠고 차갑고 딱딱하다. 순치되지 않는 악하고 삿되고 야박하고 불운한 것들로 인해 가슴에는 멍이 들고 물집이 잡히고 피가 나기도 한다.


휴일 소파에 앉아서 벌겋게 붓고 피딱지가 앉은 맨발을 들여다본다. 다리를 반가사유상처럼 접어 올려 주물거린다. ‘그래, 딱딱한 가죽에 시달리느라 얼마나 고생이 많았니.’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한편으로는 이놈의 파라오 슬롯은 언제쯤 부드럽고 편안해 질런지... 물집이 잡히고 피가 흐르는 나의 고통은 언제쯤 사라져 평화를 얻을 것인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파라오 슬롯가 세상이지 발은 나의 몸과 마음이야.’ ‘이 몸뚱이는 세상 온갖 풍파에 시달리면서 상처와 고통으로 시간의 강을 건너가는 나그네야’라는 상투적인 생각, 진부한 비유에 빠져 있을 때였다. “딩동댕~ 훅.. 후... 아 아! 알려드립니다~” 농어업인 수당을 읍사무소에 가서 신청하라는 이장님의 마을 방송이 울렸다. 덩달아서 이웃집 개가 늑대처럼 길게 ‘하울링’을 했다. “워~우~우” 그 순간 번쩍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내가 파라오 슬롯다!”


이 무슨 개소리란 말인가. 세상이 파라오 슬롯가 아니라 파라오 슬롯가 바로 나 자신이라니. 카프카의 소설 <변신에서 ‘갑충’으로 바뀐 주인공처럼 말이다. 세상은 언제나 그대로인데 소심하고 치졸하고 한심한 내가 뾰족하고 딱딱하고 거친 가죽이 되어 스스로 상처를 느끼고 분노하고 고통에 휩싸였던 것이다!


구름 속에서 거북이 형상을 보고 달 속에 토끼를 보는 그 시각, 파라오 슬롯이 진실이고 명백한 실체라는 생각, 나라는 것은 그 속에서 실존하는 독립된 객체라는 인식, 이 모든 것이 사실은 착각이고 꿈인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구름에 가렸던 해가 살짝 비추고 지나간 것처럼 불현듯 든 것이다.


<보이는 파라오 슬롯은 실재가 아니다의 저자인 물리학자 카를로 로벨리는 우리의 고정관념과 편견들을 여지없이 깨뜨린다. 지구가 평평하다거나 태양이 지구를 돈다고 믿었던 고대인들처럼 우리도 파라오 슬롯을 자신만의 색안경으로 보며 꿈속에 빠져 있는 것이다. 마치 오감이라는 만화경을 통해 보이는 세계에서 울고 웃는 아이들처럼.


서암 사언 스님은 매일 자기 자신을 “주인공!”하고 부르고서는 다시 스스로 “예!”하고 대답했다. 그리고는 “깨어 있어야 한다! 예! 남에게 속아서는 안된다! 예! 예!”라고 말했다고 한다. 불교 선어록인 <무문관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지금의 뇌에 속지 마세요.”


뇌과학자이자 심리학자인 고려대 허지원 교수가 최근의 칼럼에서 한 말이다. 우리의 뇌는 위험을 예측, 탐지하기 위해 최적화된 기관이기 때문에 모든 인류는 공통적으로 여섯 가지 기본감정 즉, 기쁨, 슬픔, 분노, 놀람, 혐오, 그리고 공포 등을 느끼며 살아간다고 한다. 그런데 기쁨 외에 나머지는 모두 부정적 감정이며 그 강도도 상당히 높아서 우리는 쉽게 그러한 격랑에 휩싸인다는 것이다. 뇌는 우리의 행복에는 관심이 없다. 그러므로 우리가 평안해지기 위해서는 악착같이 의도적으로 부정적인 감정을 떨치고 행복감을 느끼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최 교수는 역설한다.


서암 사언 스님의 공안은 아마도 부정적 감정에 내몰려서 어리석은 생각에 속는 것을 경계하려 함은 아니었을까? 그래서 나 자신이 평온과 행복의 한가운데 자리 잡은 진정한 주인공임을 스스로 잊지 말자고 다짐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딱지가 앉고 쓰린 발을 주무르면서 나는 생각한다. 불편하고 아프고 괴롭고 시린 것은 내 발이 아니다. 나는 파라오 슬롯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딱딱하고 뾰족하고 속 좁은 파라오 슬롯를 부드럽고 여유 있고 우아하고 사랑스럽게 바꾸자고 가만히 가만히 내 발을 주물러본다. 내가 파라오 슬롯든 세상이 파라오 슬롯든 감정이 머무는 자리를 무두질로 길들이면서 불안감에 속지 말자고 감정이 넘실대는 푸른 파도 속에서 길을 잃지 말자고 벽난로에 타오르는 장작불처럼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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