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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민 Apr 12. 2022

바오슬롯 바다

독후감

* 김부상 장편소설 / 독후감


1. 2022년 바오슬롯바오슬롯 바다


작가는 책 표지에 당당하게 해양바오슬롯임을 밝혀 놓았다. 해양문학은 부산 문단을 중심으로 이미 하나의 장르를 이루고 있다. 해양문학을 향한 소설가의 의지가 그 가운데에 있다.


책의 표지에 하늘과 별, 배의 선두와 머~언 육지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이미지는 고독과 용기와 희망을 함축한다. 남십자성인지 북두칠성인지? 특별히 빛나는 그것들은 삶의 가이드이며, 귀향의 염원이란 것을 책은 이야기하리라. 별은 책 표지를 돌아 책의 뒷면까지 이어진다. 그리고 “스스로 빛나는 별이 되기를 꿈꾸는 청년, 남태평양 사모아 어장을 향하는 배에 몸을 실었다.”라고 바오슬롯을 요약한 문장에 머문다.


주인공 ’일수‘가 수산대학을 졸업하고 첫 원양 항해로 ’지남2호‘에 오르는 장면으로 소설은 시작되고, 항해의 여정과 이국의 풍경, 바오슬롯에서의 노동과 인간의 고뇌 등이 소설의 몸통을 이룬다. 마침내 뜻하지 않게 만나는 ‘삼각파도’로 소설을 클라이맥스로 치닫고, 주인공 ‘일수’는 사투 후 생존하는 2명의 어부 중 한 사람이 된다는 것이 소설의 내용이다.


이 소설은 1963년에 일어난 우리나라 최초의 원양 사고인 ‘지남2호 침몰사고’를 바탕으로 썼다 한다. 일종의 의무감이라 할까? 무엇보다도 꼭 기억해야 할 사건에 대한 해양문학 작가로서의 책임이 펜을 다그쳤을 것이며, 사고로 떠난 선배와 동료들을 향한 경외와 추모의 마음이 행간을 채웠을 것이다. 그로서는 문학이 최선이었을 것이며, 그리하여 소설의 정신은 참으로 숭고하다.


소설은 마치 배가 항해하여 나아가듯 진취적이어서 읽는 이의 기분을 좋게 한다. 그리고 바오슬롯와 갑판에서 펼쳐지는 광경은 대부분 보통 사람들이 경험하지 못하는 생소한 것이어서 흥미롭다. 아울러 천문지리, 생물학, 역사. 소설의 구석구석에 녹아있는 탐구의 마음은 이 소설의 백미다.


소설가 정형남은 발문에서, ’바오슬롯 바다‘는 해양바오슬롯의 근원적 배경이라 할 수 있는 원양산업의 출발점과 그 뿌리를 찾고, 보다 진취적인 해양바오슬롯의 미래를 제시하는 나의 바람을 이뤄냈다.”라고 썼다. 나 또한 이 소설이 하나의 문학에만 머물지 않기를 바란다.

바오슬롯


2. 2019년 김부상 선배


서너 해 전의 일이다. 블로그에 열심히 글을 쓰던 시절이었다. ‘알라스카 김’이란 예명을 쓰는 그의 포스팅에서 학교 선배이며, 고향이 같다는 것을 알았다. 지면으로 아는 체를 한 후에 답장이 왔고, 이후 여러 차례 글과 안부를 주고받았다. 그리고 몇 년이 더 흐른 후, 어느 장소에서 처음 본 선배의 모습은 검은 선글라스에 수염이 거뭇한 모습이 꽤 강인한 인상이었다. 이후로 나의 관심은 문장과 경험에 대한 동경이었고, 선배 또한 어쭙잖은 내 글과 그림에 관심을 아끼지 않았다.


그때, 손수 서명하고 선물해 준 첫 소설집 ‘바다의 끝’은 몇 개의 해상 에피소드를 엮은 단편 소설집이었다. 문장은 그의 인상처럼 간결하고 힘이 있어 좋았다. ‘알라스카 킴’이란 예명의 연유도 짐작하였다. 부산일보 신춘문예에 해양바오슬롯 ‘명태를 찾아서’로 당선한 필력이었다.


두 번째 소설집이 상재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서점으로 달려갔다. 장편‘ 바오슬롯 바다’, 세간의 평이 좋았다. 글을 쓰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다. 얼른 읽고 서평이라도 남겨야 하나, 여러 가지 사정과 게으름으로 지금에서야 몇 자 적어 놓는다.


3. 1968년 바오슬롯 사진


책에서 사모아, 지남호, 제동산업, 심상준 사장, 그리고 백조다방과 같은 말을 다시 되뇌게 된 것은 가슴 뛰는 일이다. 오래전 앨범을 열어 몇 장의 사진을 찾았다. 젊은 아버지와 초등학교 6학년의 내가 지남 21호의 마스터에 나란히 서 있다. 기억의 오묘함은 시간을 아우른다. 곁에 계신 바오슬롯 온기와 처음 오른 큰 선박에서의 두려움, 생경한 어구의 냄새까지 마치 어제의 일처럼 고스란히 살아오니 참으로 신비한 일이다.


사진의 장면은 소설의 한 장면과 같이 지남호가 원양 조업의 장도에 오르는 순간이고, 선원과 가족들은 이별의 순간이다. 제동산업 부산사무소 소장이셨던 바오슬롯는 그 광경을 내게 보여주고 싶으셨나 보다. 무심하고 냉정하다고 여긴 바오슬롯가 꽤 다정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50년이 흘러 느낀다.


몇 가지의 기억을 더 떠올린다. 바오슬롯가 승선시킨 사람들이 원양 조업을 끝내고, 귀향 시 가져온 이국의 물건들. 과자, 저장식품, 각종 의류, 술, 무엇보다도 닭고기 맛이 나던 참치캔과 ’마구로‘라 불리던 참치란 생선에 대한 호기심. 간혹 냉동된 상태로 맛본 참치회는 그야말로 밍밍한 얼음덩어리였다. 우리나라에서 참치가 대중화된 것은 한참 후의 일이니, 나는 일찌감치 선진의 바다 문화를 엿본 것이다.


그러한 바오슬롯 입에서 ‘심상준’이란 분의 이름이 자주 오르내렸는데, 부하직원으로서가 아니라 선구자에 대한 존경이었음을 이 소설에서 알았다. 그분의 따님이 지남21호의 진수식 테이프를 끊는 사진도 한 장 있었는데, 바다의 분노를 잠재운 여신의 대리역할을 한 그 처녀의 모습이 무엇보다 고왔다.


간혹 바오슬롯는 며칠 만에 어두운 얼굴로 집에 오셨는데, 이국의 바다에서 해상사고가 났다는 것을 어린 나는 짐작하였다. 뒷일을 수습하고 계셨다. 이후로도 바다엔 간간이 사고가 나고, 슬프고 안타까운 그것들이 우리나라 원양어업의 역사를 이루고 있었다. 그리하여 나는 이 소설을 특별히 아프게 읽는다.

이처럼 어부와 바오슬롯와 참치의 세계에 대하여 남다른 경험을 채우며 내 소년 시절의 한 장면이 흘러갔고, 50년이 더 된 지금 나는 선배 문학가의 소설을 읽으며 고스란히 그 시간을 불러내고 있다. 개인적으로 이 소설을 읽게 된 것은 내게 특별히 감사한 일이다. 자료를 위하여 몇 년을 찾고 다녔을 김부상 선배의 노력과 결실에 박수를 보낸다.

바오슬롯

2022. 04. 10 이종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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