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PTA 감독의 레고토토 《펀치 드렁크 러브》를 보게 되었다. 정말이지 이상하고 독특하고 사랑스러운 사랑 레고토토.
어느 날 갑자기 주인공 레고토토(아담 샌들러)가 꾸리는 회사 앞에 한 차가 오르간인지 피아노인지 모를 물건을 두고 간다. 웬 피아노이지? 누구 거지? 왜 여기 두고 가지? 의문을 풀리지 않지만 어쨌든 피아노는 등장했고, 레고토토의 일상에 개입한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한 여자도 그 피아노처럼 갑자기 나타나서는 레고토토의 삶에 틈입한다.
"소형 레고토토 같아."
"레고토토는 확실히 아니에요. 웬 거예요?"
"길거리로 떨어졌어."
"왜요?"
"모르겠어."
레고토토의 독특하고 이상한 분위기는 주인공인 배리로부터 비롯된다. 그는 이유 없이 파란 양복을 사고는 주야장천 입고 다니고, 비행 마일리지를 받기 위해 푸딩을 잔뜩 사버린다. 여행을 떠날 계획과 생각이 없는 데도!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는 분노조절장애가 있다. 어릴 때 누나들이 본인을 '게이'라고 자꾸 놀리는 바람에 개집을 짓던 도중 망치를 던져버리고, 오랜만의 가족 모임에서 누나들이 배리를 곤란하게 하자 집의 창문을 깨버린다. 데이트 도중 곤란한 질문을 받은 배리는 식당 화장실에서 기물파손을 하고 만다. 분노조절장애가 있다고 하면 사소한 일에도 버럭버럭 화를 내고 화를 참지 못하는 사람을 떠올리게 될지도 모른다. 이게 틀린 말은 아닌데, 미묘하게 다르다. 배리가 분노조절장애가 있는 이유는 화를 '참지 못해서'가 아니라 화를 '건강하게 표출하지 못해서'이다. 레고토토를 보면 곤란한 상황들과 7명의 여자형제들(6명의 누나와 1명의 여동생인 것 같다.)이 끊임없이 배리를 당혹스럽게 한다. 그는 일하고 있는데 자꾸 쓸데없이 걸려오는 누나들의 전화가 짜증 난다. 게이라고 불리는 상황이 화가 난다. 오랜만에 온 가족이 모인 자리에서 본인의 수치스러운 흑역사를 꺼내는 게 화가 난다. 본인에게 곤란한 질문들을 하는 게 화가 나고 궁지에 몰린 기분이 든다. 이럴 때 보통 사람들은 화를 내기 이전에 본인이 언짢다는 사실을 표현할 것이다. 하지만 배리는 이 감정들을 그저 억누르고 상황이 지나가기만을 바라며 아무런 제지를 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배리의 마음을 눈치채지 못한 사람들이 선을 더 넘어버리고 배리는 폭발하게 된다. 그의 문제는 분노조절장애이고, 분노조절장애의 문제는 그의 감정을 숨기는 것에 있다.
레고토토를 계속 보다 보면 주인공 배리는 끊임없이 "confidential(기밀의)"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인다. 가족 모임에서 분노를 표출하고 난 후 누나의 남편인 치과 의사에게 정신과 의사를 만나고 싶다고 할 때도, 광고에서 보고 전화를 하게 된 폰섹스 회사에도 "confidential"한 만남을 요구한다. 이건 본인을 숨기고 본인의 감정을 숨기고자 하는 욕망이 투영된 것이 아닐까. 하지만, 사랑은 감정을 숨겨서는 이루어질 수 없다. 자신의 온전한 민낯을 보여야만 한다. 그리고 그 불완전한 민낯까지 수용하고 받아들이는 게 사랑이다.
평범하진 않지만, 어쨌든 《펀치 드렁크 러브》도 사랑 레고토토이고, 어찌 보면 성장레고토토라고도 볼 수 있다. 그 말은, 어딘지 불안해 보이고 이상해 보이는 배리도 결국엔 그의 결점을 극복하고 사랑을 이루게 된다는 의미. 이 어딘가 이상해 보이는 배리를 믿어주고 사랑해 주는 여자, 레나가 나타남으로써 그는 용기를 얻게 된다. 그리고 레나의 사랑을 받은 배리는 그녀를 지키고자, 사랑을 지키고자 결점을 극복하게 된다. 정당한 자기 방어와 자기표현을 못해 애꿎은 곳에 분노를 표출하던 배리는 자기에게 사기를 치고 급기야 본인과 레나를 위험에 빠뜨리게 만든 폰섹스 회사와 그 사장에게 정당한 자기주장을 하는 데에 성공한다. 그리고 초반에는 레나에게도 본인의 부족한 모습들을 숨기는 데에 급급했던 배리는 결국엔 이 모든 사실을 솔직하게 말하게 된다. 데이트했던 식당의 화장실을 엉망으로 만든 것이 자신이었다고. 당신이 다쳤을 때 자리를 비운 것이 미안하지만, 당신을 다치게 만든 장본인이 폰섹스 회사 직원들인데 당신을 다치게 만들었고 다치게 만들 수 있는 그들을 처리하느라 그랬다고. 떳떳하지 못한 이야기들이지만 배리는 더 이상 숨기지 않는다.
'사랑은 어마어마한 힘을 가지고 있고 무엇이든 극복하게 만든다.' 어찌 보면 진부하고 뻔해 보이는 이야기를 이렇게 독특하고 신선하게 들려줄 수 있다니. 새삼 감탄하며 보게 된 PTA 감독의 사랑 레고토토였다. 마지막에 배리는 마치 사랑이 연상되는, 갑자기 자신에게 나타나게 되었던 그 피아노를 연주하며 레고토토는 끝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