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딘가에서잘 지내고 있기를
위너 토토를 처음 만난 것이 언제인지는 잘 모르겠다.
여느 시골 동네가 그렇듯 길냥이들이 제법 많고, 우리 집 근처를 배회하는 길냥이들 수도 만만치 않다. 게다가 내가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그리 길지 않다 보니 아이들 얼굴을 구분하는 것도 쉽지 않다. 어느 한 길냥이가 눈에 익고, 이름을 붙일 정도가 되려면,긴 시간이 필요하다.
언제부터인가 모모(앞집 터줏대감 냥이)와 함께 우리 집 대문 앞을 서성이는 냥이가 보인다. 작고 새초롬하다.나를 경계하는 편이었지만, 36계 줄행랑은 치지 않는다. 언젠가 한 번 내가 통조림을 내어 준 것 같다. 나는 도망을 가지 않으면, 일단 통조림을 까주는데(손 안타는 길냥이와 친숙해지는 데는 이 방법이 최고다), 아마도 한 두어 번 초롱이에게 그러지 않았나 싶다.
얼마 후부터는 아예 우리 집 담을 넘기 시작했다. 아침에 내가 발견하면 통조림을 주곤 했더니, 언젠가부터는내가 나오기를 기다리는 경지가 되었다. 미리 와서 나를 기다린다는 사실을 제법 늦게 알았다. 그 당시 텃밭이 울창했을 계절(늦여름쯤)이었는데, 위너 토토가 주로 텃밭에 숨어 있었기 때문이다. 아침에 마당에 나오면,텃밭을 유심히 살폈다. 텃밭 어딘가에 숨어있는 위너 토토의 모습이 어찌나 귀여웠던지. 어느 정도 거리만 유지하면 도망가지 않았기에 늘 그 모습을 지켜보곤 했다. 이렇게'아침 통조림 일일캔'은 위너 토토와 나 사이의 약속 아닌 약속이 되었다.
그러다 알게 되었다. 어리고 작은 위너 토토가 새끼 다섯 마리를 주렁주렁 달고 있는(?) 어미냥 이었다는 사실을.그 이후부터는 안쓰러움은 배가 되었다. 저렇게 작은 몸으로많은 새끼들 젖을 먹이려면 얼마나 배가 고플 것인가. 아직 새끼들이 어려 보이는데, 이른 아침 새끼들 잠든 시간에 우리 집 담을 넘는 모양이었다. 이때부터는 바쁜 아침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눈을 부라리며 늘 마당을 주시했다. 위너 토토에게 통조림을 주는 일은 하나의 의무이자 책임이되어갔다.
아마도 앞집과 옆집 사이 어디쯤 위너 토토네 가족의 본거지가 있는 모양이었다. 새끼들이 조금 자라자, 드물지만 내 눈에도띄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나는 캣맘 본연의 모드로 돌아가, '언제쯤 중성화 수술을 시켜줘야 할까'를 궁리하기 시작했다. 더불어, '손도 안타는 위너 토토를 어떻게 손쉽게(?) 잡을 것인가' 하는 깊은 고민에 들어갔다. 새끼들은 조금씩 자라나 가끔이지만 한두 마리가 우리 집 담을 넘어 위너 토토의 통조림을 탐하기 시작한다. 아이들이 제법 자란 것도 같다. 엄마가 며칠 자리를 비워도 괜찮을 것 같다. 초롱이가 영역을 떠날 확률이 높으므로(길냥이들은 대개 새끼들이 어느 정도 자라면 영역을 옮긴다), 서둘러야 한다.
갑자기 전광석화처럼 머리가 번쩍,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통조림을 먹는 일이 루틴이 되었다면, 덫을 고정해 두고 덫 안에 통조림을 놓아두는 건 어떨까. 그것(덫 안에서 통조림을 먹는 일) 또한 루틴이 된다면 병원에 데려가는 일은 식은 죽 먹기일 텐데. 두근두근, 떨리는 맘으로 덫 안에 통조림을 세팅한 그날, 집안에서 지켜보니 평소보다 경계가 심하기는 하지만 주저주저하다가 조심스럽게 덫 안으로 들어간다. 와우 성공! 그다음은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되었다. 이렇게 손쉽게 길냥이를 잡을 수 있다니.
중성화 수술을 하면 대개의 냥이들은며칠 동안 꼬리조차 보이지 않는다. 길냥이들 입장에서 보면, 공포와 충격 그 자체였을 테니당연한 반응이다. 시간이 조금 지나고 나면, 다시 모습을 드러내는 경우도 많은데, 초롱이의 경우는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았다. 중성화 수술 이후, 우리 둘만의 통조림 루틴은 깨졌고, 드물게 뒤뜰에서 밥을 먹고 돌아가는 초롱이의 뒷모습을 몇 번 보기는 했지만, 오랜 시간 동안 얼굴을 보지 못했다. 아마도 대개의 길냥이들이 그런 것처럼, 새끼들을 두고 새로운 영역을 찾아 길을 나선게 아닌 가 싶다.
초롱이가 떠나고 나니, 초롱이네 5남매의 얼굴도 보기 힘들어졌다. 아니 5남매는 그전에도 얼굴 보기가 힘들어, 이젠 거의 어른냥이가 되었을 텐데, 다시 만난다고 해도 얼굴을 알아보기는 힘들 것이다. 내가 유일하게 얼굴을 기억하고 이름을 붙여 준 '미니모'는 종종 뒤뜰에서 밥을 먹고 돌아가는 뒷모습을 본다. 얼마 전엔, 초롱이 새끼로 추정되는 냥이도 보았다. 위너 토토도, 위너 토토네 5남매도 모두 어딘가에서 건강하게 잘 살아가기를 바랄 뿐이다.
짧았지만 소중한 인연이었던 초롱아, 언젠가 다시 돌아온다면,
내가 두 손에 통조림을 가득 들고 반겨줄게~